한국 천문학자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역시 그랬나?
제임스웹우주망원경(JWST)이 10월 31일에 발사된다고 미국은 언론 보도가 많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은 허블우주망원경을 대신하는 차세대 우주 망원경. 우주망원경은 지상이 아니라, 우주 공간에 올라가 천체를 관측한다. 우주에서는 지상에서보다 별빛을 훨씬 더 정확하게 관측할 수 있다. 지구 대기의 빛 산란이라는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허블 망원경은 놀라운 관측을 해냈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은 허블보다 성능이 100배라고 하니, 성공적으로 발사되고 예정된 자리(라그랑주 점 L2)에 자리를 잡으면 더 놀라운 관측 결과를 내놓을 걸로 기대된다. 그래서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을 갖고 연구하는 한국 연구자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NASA 사이트를 뒤지니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라그랑주점 L2(지구에서 보면 태양 쪽이 아닌, 반대 쪽에 있다)에 도달하면 그걸 이용해 관측할 수 있는 연구 과제 제안들을 받았고, 그걸 심사한 결과가 있다. 2020년 11월 24일 접수를 마감했고, 결과는 지난 3월 21일에 발표했다. 심사 결과는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STScI, Space Telescope Science Institute) 사이트에 나와 있다. ‘제임스웹 제1주기 일반 관측자/아카이브 연구 결과’(JWST Cycle 1 GO/AR Results)란 자료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은 발사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본격적인 과학 연구에 투입된다. 향후 5-10년 가동되는데, 시기별로 나눠 장비를 사용하게 된다. 우선 제1주기는 2022년 일정 시기까지 6000시간을 일반 관측자에게 배정할 예정이다. 시간을 배정받은 천문학자를 그가 속한 국가별로 분류한 표가 있다. ‘책임 연구자’(Principal Investigator, P.I.) 인구통계가 맨 먼저 나와 있다.
책임연구자는 특정 독립 프로젝트의 리더다. 책임연구자 전체 수는 258명이고, 국가별로 보면 미국이 180명이고, 영국이 22명, 독일이 14명, 캐나다와 네덜란드가 각각 10명 순으로 많다. 미국과 유럽, 캐나다가 프로젝트에 돈을 투자했으니, 그 나라 연구자가 많이 선정된 건 당연하다. 세 나라가 막대한 돈(100억 달러, 약 12조원)을 들여 우주망원경을 만든 건, 자국 천문학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은 어떨까? 4명이 책임연구자가 되겠다고 제안서를 냈으나, 유감스럽게도 한 명도 선정되지 않았다. 다른 동아시아 국가 천문학자는 얼마나 책임연구자가 되었을까? 일본이 역시 천문학 강국이다. 37명이 책임연구자로 제안서를 제출했고, 3명이 선정됐다. 눈에 띄는 건 대만이다. 대만은 8명이 신청해 2명이 뽑혔다. 이 밖에 중국이 5명이 신청해 1명 선정되었다.
책임연구자 말고, 공동 책임연구자(CoPI, Co-Principal Investigator) 자료도 있다. 공동 책임 연구자는 말 그대로 책임연구자와 프로젝트 진행의 책임을 나누는 사람이다. 공동책임연구자 명단에도 한국 천문학자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일본은 8명, 대만 1명이 이름을 올렸다.
그 다음은 공동연구자(Co-Investigator) 통계다. 공동연구자는 주 연구자를 도와 연구하는 사람. 한국인 11명이 들어가 있다. 일본은 104명, 중국 27명, 대만 10명 순이다. 미국은 2080명, 영국은 302명이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을 갖고 하는 연구에 책임연구자가 되어, 자신의 과학적 질문을 풀어보려고 했던 한국 천문학자는 누구였을까를 생각했다. 몇 년 전 취재한 적이 있는 경희대 우주과학과 이정은 교수가 떠올랐다. 이정은 교수는 원시별 탄생과 행성 생성을 연구한다. 지상 최대의 전파망원경 간섭계인 ALMA(칠레 아타카마 사막 소재)를 이용해 태어나고 있는 원시별의 행성 원반에서 유기분자를 2019년에 검출한 바 있다. 그에게 전화를 해서 물었다.
이 교수는 “내 이름으로 직접 신청을 하지는 않았고, 경희대 박사과정 학생과, 천문연구원의 박사후연구원을 PI로 하는 관측 프로젝트 2개를 신청했었다. 둘 다 탈락했다. 경희대 학생의 제안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안타깝게 탈락했다”라고 말했다. 내가 전화를 제대로 건 것이었다. 한국인이 책임연구자가 되겠다며 신청한 프로젝트 4건 중 2건의 내용은 파악했다. 다른 두 건은 누구일까? 이 교수도 모른다고 했다.
이 교수는 공동연구자로는 하나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관측시간을 확보했다고 했다. 이 교수 말을 듣고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 사이트에 들어가 자료를 더 뒤졌다.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는 허블우주망원경 운영과 관리를 책임지는 기관이고,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의 운영 관리도 한다.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존스 홉킨스대학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인 관련 자료가 더 보였다. 공동연구자로 참여한 한국인 이름이 몇 개 더 나온다. 11명 모두의 이름을 다 확인할 수는 없었다. 경희대 이정은 교수와 김철환 학생, 그리고 고등과학원(KIAS) 물리학부 전현성 박사, 한국천문연구원 양유진 박사(광학천문본부 은하진화 그룹 그룹장), 한국천문연구원 김재영 박사(우주천문그룹) 이름이 보인다. 이들은 뭘 연구하려는 걸까?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은 1990년부터 가동되었던 허블우주망원경을 대체하게 된다. 허블우주망원경은 수없이 많은 성과를 거뒀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성과로 얘기되는 건 ‘허블 딥 필드‘(Hubble Deep Field) 발견이다. 허블 딥 필드는 북두칠성 근처에 있는, 100억 광년 이상 떨어진 은하들이 있는 작은 영역을 가리킨다. 연세대 천문학자 이석영 교수(은하 진화 연구)는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우주론’ 책에서 허블 딥 필드 이야기를 잘 들려준다. 이 교수 얘기를 옮겨본다.
제임스웹망원경의 목표는 무엇일까? NASA는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의 목표를 4가지라고 밝혀 놨다. 네 가지 목표는 ⓵빅뱅 이후 생겨난 최초의 은하 혹은 발광 물체를 찾는다, ⓶은하가 처음 만들어진 뒤 어떻게 지금까지 진화했는지를 알아낸다, ⓷별 형성을, 최초 단계에서부터 행성 시스템 형성까지 관찰한다, ⓸ 행성 시스템의 물리 및 화학 특성을 측정하며, 여기에는 우리의 태양계가 포함된다, 그리고 행성시스템들에서 생명이 있을 가능성을 조사한다 등이다.
제임스웹망원경은 허블망원경에 비해 주 거울도 크고 해서 성능이 100배 좋다. 망원경이 좋다는 건, 멀리 볼 수 있다는 걸 말한다. 멀리 본다는 건 더 먼 과거를 관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 사이트는 “허블망원경이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은하들(toddler galaxies)을 봤다면,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은 아기 우주들(baby galaxies)을 볼 수 있다”라며 “특히 최초의 별을 볼 수 있다”라고 말한다. 허블망원경이 우주 나이 30억-40억살일 때의 허블 딥 필드를 포함해 우주가 빅뱅 후 10억년일 때까지 모습을 보았다면,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은 빅뱅 후 3억-4억년까지 볼 수 있을 걸로 기대된다.
경희대 이정은 교수가 참여하는 연구는 NASA가 밝힌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의 목표 3번째(별 형성 관측)와 4번째 카테고리(행성 시스템의 물리 및 화학 특성 측정)에 속한다. 이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자신의 연구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까지는 원시별이 탄생할 때 나중에 행성이 될 원반에서 기체를 보았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은 뛰어난 장비이므로 더 볼 수 있다. 기체가 되기 전 얼음 상태로 있는 걸 보려고 한다. 몇 개의 환경이 다른 원시별들에 대해 그런 걸 관측해서, 유기 분자들의 성분이 별이 만들어지는 환경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연구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고등과학원 전현성 연구원(외부은하 관측 전공)은 세 개 프로젝트에 공동연구자로 참여하고 있다. 전현성 연구원은 초대형 블랙홀과 활동은하핵(Active galactic nucleus) 연구자. 그가 참여하는 연구 과제 중 하나는 ‘재이온화 시기에 있는 가장 먼 퀘이사를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을 통해 종합적으로 보기’다. 빅뱅 후 4억년 당시의 퀘이사라는 천체를 보겠다는 프로젝트다. 퀘이사는 초대형블랙홀이 만들어내는 거대 발광체. 전현성 연구원은 연구 내용을 묻는 이메일 질문에 대한 답에서 “초기 우주에서 활동은하의 블랙홀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꽤 무거웠다면 이들은 무거운 은하들이 모여 있는 환경을 선호하는지, 혹은 블랙홀의 성장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빛이 주변을 이온화 시키는지를 알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제임스웹우주망원경 이야기를 길게 했다. 그 이유는 한국 천문학의 현 주소 재점검이다. 한국 천문학은 일본에는 댈 수도 없고, 맹활약하는 대만에도 못 미치지 않나 싶다. 대만은 하와이에 SMA라는 전파망원경 간섭계를 가동하기 시작한 게 2003년이다, 그런 게 쌓였기에 2010년대 초 칠레의 세계 최대 전파망원경 간섭계 ALMA건설 때 적극 참여한 바 있다. 한국은 이제야 해외 천문대의 지분을 확보하고, 새로운 대규모 망원경 건설에 회원사로 참여하는 수준이다.
한국천문학회 류동수 회장(울산과학기술원 물리학과 교수)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에 기초과학분야에 걸쳐 연구단들이 31개 있으나 천문학 분야 연구단은 하나도 없다고. 천문학은 기초 중에서도 기초 과학에 속한다. 한국은 천문학에 쓰는 세금의 절대 액수가 적다. 한국천문학계는 또 후발주자 한국이 세계 천문학을 따라 잡을 수 있는 방법으로 중성미자 관측소 건립을 지난해 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제안한 바 있다. 제안에 당국이 어떤 반응을 보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조선 세종 때의 천문 관측이 세계적인 수준인 양 묘사하는 드라마를 본 적 있다. 그때는 그런지 모르겠지만 21세기 한국천문학은 딴판이다. 드라마에 취해있을 때가 아니다. 천문학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
최준석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 ▷뉴델리 특파원 ▷카이로특파원 ▷주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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