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힘찬 이륙, 아쉬운 착륙…한재림 감독 '비상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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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2-08-0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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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 나의 경험이 영화의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최씨네 리뷰'는 필자의 경험과 시각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8월 3일 개봉하는 영화 '비상선언', 극 중 '재혁' 역을 연기한 이병헌[사진=쇼박스]


여름휴가를 맞아 떠나는 여행길. 기대와 설렘이 넘실거리는 여행객 사이로 테러범이 숨어든다면? 이미 이륙한 비행기에서 바이러스 테러가 벌어진다면? 영화 '비상선언'은 특수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최악의 상황과 현실적 공포를 녹여내 섬뜩한 순간을 연출한다. 코로나19 범유행으로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이 공포심은 관객들이 '비상선언'을 '관람' 아닌 '체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더는 무를 수도 없다. '비상선언'과 함께 이륙했으니 말이다.

한 남자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비행기 테러'를 예고하는 영상을 게재한다. 베테랑 형사팀장 '인호'(송강호 분)는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이를 추적하던 중 용의자가 실제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시간 하와이로 떠나는 KI501 항공편에는 여행객들로 가득하다.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이들부터 사업을 위해 떠나는 이들까지 좌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비행 공포증을 겪고 있는 '재혁'(이병헌 분) 또한 딸의 치료를 위해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는 공항에서부터 자신과 딸의 곁을 맴도는 낯선 남자를 보며 불편함을 느끼고 그를 수상쩍게 여긴다.

한편 인천에서 하와이로 이륙한 비행기 안에서 원인불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엄청난 고통을 호소하며 사망한 탑승객을 시작으로 여러 이상 증상이 발현되자 승객들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이미 비행기는 하와이를 향해 가고 누구도 탈출할 수가 없다.

'인호'는 비행기 안에서 벌어진 일이 테러범의 소행임을 알아챈다. 국토부 장관 '숙희'(전도연 분)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테러센터를 구성해 비행기를 착륙시키려 분투한다.

영화 '비상선언' 스틸컷[사진=쇼박스]


영화 '비상선언'은 상영 시간 140분 동안 영화관을 비행기로 만든다. 이륙한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재난 사태와 인간 군상을 체험하게끔 만든다. 비행기 내부의 공기와 온도, 조명까지 하나하나 구현해 관객 몰입도를 놉인다.

이륙한 비행기라는 특수한 공간은 '비상선언'의 가장 긴 무기다. 누구도 탈출할 수 없는 비행기는 모두를 공평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철저히 계급으로 나뉘게 한다. 이로 인한 갈등과 혼란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편견을 단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전작들을 통해 사회적 화두를 던지는 소재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다져온 한재림 감독인 만큼 '비상선언' 또한 범죄와 재난을 넘어 다양한 인간 군상과 사회 문제들을 짚어낸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였으나 누구보다 현실적인 현상들을 구현해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인다.

영화 '비상선언'에서 부기장 '현수' 역을 맡은 배우 김남길 [사진=쇼박스]


비행기를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지게 만든 건 제작진의 공이 컸다. 모든 게 '진짜'처럼 느껴질 수 있게끔 사실감에 중점을 두었다는 한 감독의 말은 영화로 증명됐다. 제작진은 해외에서 비행기 본체와 부품을 공수해 사실적이고 정교하게 제작했다. 비행기 세트는 360도 회전되는 짐벌로 회전하며 촬영했고 고공낙하 시퀀스, 무중력 시퀀스 등을 사실감 있게 찍을 수 있었다.

조명팀은 실제 비행기 내부의 빛들을 최대한 활용했다고. 인위적이거나 왜곡된 조명을 배제하고, 고감도 촬영을 통해 실제 상공의 빛들을 구현해 사실감을 더했다. 그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실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빛의 설계에 초점을 맞춰 해와 구름의 이동이 만들어내는 '플리커 효과'를 살렸다.

지상과 상공을 교차하며 긴박한 상황을 보여주는 흐름도 흥미롭다. 상공의 상황과 지상의 상황을 매끄럽게 연결하며 긴박감을 놓치지 않는다. 한 감독 역시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콘티를 더욱 디테일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영화 '비상선언'에서 형사 팀장 '인호' 역을 맡은 배우 송강호 [사진=쇼박스]


아쉬운 점도 있다. 극 중 하와이행 비행기가 겪는 사태처럼 '비상선언' 또한 힘찬 '이륙'에 비해 '착륙'은 위태롭다. 관객들을 순식간에 몰입하도록 만들고 정신없이 휘몰아치던 초중반과 달리 후반에 이를수록 지지부진해진다. 비행기 안 승객들의 관계성이나 인물들이 느끼는 공포 갈등과 화해 등을 영화 말미에 이르러서야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말도 많아지고 맥이 탁 풀릴 정도로 감정에 호소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도 힘찬 출발과 정신없이 관객을 휘두르는 힘은 올여름 영화 중 가장 뛰어나다. 영화 중후반까지 몰아치는 전개와 힘이 대단하다. 충무로 베테랑 배우들의 협업도 영화의 밀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형사팀장 '인호'를 연기한 송강호부터 탑승객 '재혁' 역의 이병헌, 국토부 장관 '숙희' 역의 전도연, 부기장 '현수' 역의 김남길, 사무장 '희잔' 역의 김소진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실장 '태수' 박해준까지 믿고 보는 배우들의 연기로 영화의 빈틈이 채워졌다. 배우들의 연기 열전을 보는 재미 또한 '비상선언'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특히 그중에서도 '진석' 역을 연기한 임시완의 활약이 눈부시다. 임시완이 만든 '진석'의 이질적 분위기와 불쾌함이 압도적이다. '진석'이라는 캐릭터는 극장을 나선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비상선언' 개봉은 8월 3일. 상영 시간은 140분이고 관람 등급은 12세다.

영화 '비상선언'에서 국토부 장관 '숙희' 역을 맡은 배우 전도연[사진=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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