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한 골프 스튜디오에 붙은 문구다. 가르치는 실력보다는 가르치는 사람의 '인지도'를 앞세웠다.
인지도의 기준이 방송이었다. 방송에서 얼마나 얼굴을 비치며 레슨하고 해설했느냐는 것보다 프로골프 무대에서 몇 승을 거두고, 어떠한 성과를 내고,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방송을 틀면 자주 나오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공식이 세워졌다.
예를 들어 한 투어 프로가 대회에서 우승을 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투어 프로가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 어떤 코치에게 레슨을 받는지, 어떤 캐디와 호흡을 맞추는지에 관심을 둔다.
그림으로 치면 기초 스케치에 해당한다. 투어 프로가 우승을 거듭할수록 세부 구조물이 그려지고 색상이 추가된다. 부상이나 추문이 있으면 음영이 생기고,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을 세우면 그림의 디테일이 살아난다.
디테일이 생긴 그림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입소문을 타고 찾는 사람이 는다. 화려한 액자에 끼워 조명 밑에 걸면 명화가 된다. 명화는 큐레이터와 전시 코디네이터의 선택을 받는다.
해설 영역에서의 명화는 바로 영국의 닉 팔도 경이다. 팔도 경은 미국과 유럽 프로골프 무대에서 약 40승을 거뒀다. 그중 메이저 우승은 6회(마스터스 3회, 디 오픈 3회)다.
2006년 아일랜드에서 배를 타고 있던 팔도 경에게 CBS 스포츠가 전화를 걸었다.
"짐 낸츠(전설적인 스포츠 캐스터) 옆에 앉으시겠어요?" 이 말을 듣고 놀란 팔도 경은 타고 있던 배에서 떨어졌다. 1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는 생각에 선수 생활을 접고 해설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이라는 바탕을 품은 그는 무미건조한 유머 감각과 빠른 재치, 통찰력 있는 해설로 이후 16년간 골프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팔도 경은 2022년 김주형이 우승했던 윈덤 챔피언십에서 해설 은퇴를 발표했다. 대회장인 세지필드 컨트리클럽은 명예의 벽에 팔도 경의 업적을 기리는 명판을 달았다. 명판에는 "전설적인 선수가 이곳에서 해설을 마쳤다"고 적혀 있다.
어떤가. 우리나라에선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 아닌가.
오랜 기간 해설을 해온 한 전문 해설가는 "해설의 의미는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다. 한국 해설의 현주소는 '보면서 설명하는 것'이다. 이론을 통한 스윙 분석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해야 한다. 비전문가에게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런데도 투어 프로의 경기력을 분석하는 실수를 범한다. 해설도 자주 바뀐다. 캐스터가 메인이라 새내기 해설자를 가르치기에 바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레슨 부분도 문제다. 자극적인 레슨이나 페이크 콘텐츠를 앞세운 미디어 프로들의 방송 출연도 자질적인 문제가 있다. 이들은 기본적인 자격증도 없다. 방송국은 인맥을 앞세운 캐스팅을 하지 말아야 한다. 경험상 대다수가 인맥이었다"고 덧붙였다.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얼굴을 알린 사람들이 골프 방송을 장악하는 반면 프로골프 무대에서 활약했던 투어 프로들은 은퇴 후 설 곳을 잃은 채 유튜브나 SNS에서 활동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투어 프로의 영역이 넓어져야 한다. 우리는 명화를 몰라보고 지나치는 중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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