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집권 자민당이 여당 과반 확보에 실패한 것은 2009년에 옛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준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의 과반수 확보를 승패 라인으로 내걸었던 만큼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자민당이 예상을 웃도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게 된 것은 파벌의 비자금 스캔들과 고물가 등도 있지만 ‘변절’ 혹은 ‘말 바꾸기’ 등으로 야유를 받은 이시바 총리의 리더십에서 문제를 찾을 수 있다.
4전 5기 끝에 자민당 총재 선거에 당선된 이시바 총리는 비자금 스캔들로 얼룩진 당의 재기를 위해 집권한 지 약 한 달 만에 총선을 치르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후 여론은 연이어 이시바 총리에게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당내 비주류로서 기반이 약한 이시바 총리는 당내 화합을 위해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의원들을 총선에서 공천하려 했고, 이는 유권자들로부터 비판을 사게 된다.
그러자 비자금 연루 의원 12명을 공천 대상에서 배제하고, 34명은 비례대표 중복 입후보를 불허하기로 했다. 하지만 비판에 직면하고 나서야 방침을 수정하는 모습에 매서운 역풍은 잦아들지 못했다.
또한 선거운동 과정에서 이시바 총리는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을 향해 “악몽과 같은 민주당 정권”이라는 발언과 함께 “무책임한 사람들에게 일본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이 같은 발언은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사용한 것으로, 이시바 총리는 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다시금 ‘변절’을 보여준 것이다.
여기에 선거 막판 터진 또 다른 악재인 ‘2000만엔(약 1억8000만원)’ 문제가 불거지면서 자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싸늘한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 23일 자민당 본부가 비자금 문제로 공천하지 않은 출마자가 대표를 맡은 당 지부에도 ‘활동비’ 명목으로 2000만엔을 지급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의석 수를 더욱 줄이는 결정타가 됐다.
한 지지자는 “선거 초반만 해도 이렇게까지 참패할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면서 “(2000만엔 문제 이후) 눈에 띄게 자민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졌다”고 언급했다.
이시바 총리는 해당 스캔들에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사과나 인정 대신 “정당 지부에 지급한 것으로 공천 배제 의원에게 준 것이 아니다”라는 설명으로 일관했다.
이번 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했다는 일본의 한 40대 남성은 “이시바가 이렇게까지 줏대가 없을 줄은 몰랐다”며 “당내 비주류로서의 한계를 여실하게 보여준 것 같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