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내려도 버티던 '존버'의 시대는 갔다. 버티면 오를 것이란 믿음은 사라졌다. '국장 탈출은 지능 순'은 증권가 유행어가 됐다.
9월 말 외화증권 보관액은 1379억4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중 외화주식이 1020억4000만 달러, 90%가 미국 주식이다. 우리 증시에서 존버하던 국내 투자자들은 손실을 못 견디고 미국으로 떠났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 지수는 올해 22%, 나스닥 지수는 24% 올랐다.
한국 증시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외국인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은 올해 상반기 22조원 넘게 사들이며 사상 최대 매수세를 기록했지만 하반기에는 13조원 가까이 매도하고 있다. 무엇이 외국인을 변심하게 했을까.
'밸류업 프로그램' 효과로 잠시 오르기도 했던 우리 증시는 해외 주요 국가들이 상승세를 탈 때 나 홀로 하락세를 이어갔다. 수익률이 꼴찌 수준이다. 전쟁 중인 러시아보다도 못하다. 더 이상 버텨야 할 이유가 투자자에겐 없어 보인다.
악재는 크게, 호재는 찔끔 반영하는 허약 체질이 문제다. 투자자들은 주가가 극단적으로 싼값까지 내려가야만 사고 있다. 주가 반등 폭이 작아 더 싼값에 사지 못하면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조금이라도 손실 가능성을 줄이려는 모습이다.
금융투자소득세라는 불확실성도 증시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강행이나 유예,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국회만 바라보고 있다. 차라리 세금을 내더라도 상승한다는 기대감이 있는 미국주식으로 주식 이민을 고민하는 투자자도 적지 않다.
방향성을 상실한 밸류업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시행 5개월째에 접어들었지만 기업들의 저조한 참여, 밸류업 지수 구성종목에 대한 낮은 신뢰도 등 아직 개선돼야 할 게 많은 모습이다. 소극적인 주주환원 등도 시장을 저평가 시키는 요소 중 하나다.
주가는 오르지도 않고 주주환원도 소극적이니 결국 '단타 놀이터'가 될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은 장기 투자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국장에선 단타에 관심을 가진다. 장기 투자는 미국에서나 하겠단다. 국내 증시가 투자처로 각광받지 못한다면 기업들도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워진다.
가치 투자의 대명사 워런 버핏은 1999년 포춘지 기고를 통해 "시장은 때로 매우 긴 시간 동안 가치와 연결되지 않는 방식으로 움직인다"면서 "그러나 조만간 가치의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결국 가치에 수렴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 주가는 한국 증시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일까. 시장에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것이란 믿음이 생길 때 '존버'의 시대도 올 수 있다. 박스피,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불명예를 벗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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