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위기설이 심화되고 있다. 다수의 경제 전문가들은 저성장과 고물가,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 등 복합적인 요인이 한국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 경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저성장 기조를 보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020년부터 2021년까지 2.4%였다가 2022년 2.3%로 하락하더니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를 기록했다. 5년 새 0.4%포인트 떨어진 셈이다.
향후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이르면 다음 달 말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재추정치를 발표한다.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소비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물가는 소비자 구매력을 감소시키고, 기업의 생산 비용을 늘려 경제 전반에 부담이 된다. 이 같은 상황은 소비자 신뢰도를 낮추고, 기업의 미래 투자 역시 주저하게 만든다.
고령화와 저출산,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같이 잠재성장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문제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생산성을 낮추고 경제성장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이들 문제는 정치적 논란에 묶인 채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해 현 경제 상황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절실하지만 경제·통화 정책의 키를 쥔 당국자의 인식이 안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 성장률을 2.2~2.3%로 전망하면서 "아직 잠재성장률(2%)보다 위쪽에 있기 때문에 아주 큰 폭의 하락으로 보면서 당황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앞서 한은은 올 8월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3분기 성장률 전망치(전기 대비)를 0.5%로 전망했다. 하지만 실제 속보치는 0.1%로 집계되면서 한은이 예상한 연간 성장률 전망치 2.4% 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경기 침체설'을 일축했다. 이날 국감에서 최상목 부총리는 "3분기 내수 건설 부문이 좋지 않고 수출이 예상에 못 미쳤는데 4분기 불확실성이 확대됐다"면서도 "3분기 수치를 고려해도 잠재성장률보다 높은 수준이라 (경기 침체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경제주체의 심리를 좌우하는 정책 당국자의 발언이 신중해야 한다는 점은 십분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정부의 경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메시지 전달이 필요하다.
이번 국감에서 정부가 올해 30조원에 이르는 세수 결손 대응에 외국환평형기금을 동원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번복한 것 역시 정책 신뢰도를 크게 훼손한 행위로 볼 수 있다.
최 부총리는 지난달 국회 기재위 현안보고에서 "외평기금과 관련해 20% 범위에서 기금운용계획을 변경하는 것을 현 단계에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28일 기재부는 세수 재추계 대응 방안을 통해 올해 본예산 대비 세수 부족분 29조6000억원 중 외평기금으로 4조∼6조원을 메우겠다며 기존 방침을 번복했다.
정부가 세수 결손 재원 대책을 발표하는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지난달 26일 세수 재추계 결과를 발표한 기재부는 대응 방안을 마련해 국회에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재부 국감 첫날인 10일까지도 이를 보고하지 않았으며 국감을 마무리하는 28일 종합감사 직전에야 재원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야당 의원들은 기재부가 국회를 패싱하고 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언론에 먼저 세수결손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고 지적하며 감사 중단을 요청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를 둘러싼 경제 상황은 복잡하고 변화무쌍하다. 정책당국자들이 감정이나 정치적 압박에 휘둘리지 않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경제 상황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정책 당국자가 경제 상황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이를 투명하게 전달하면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