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정제마진 하락에… 'K-정유업계', 액침냉각유로 돌파구 모색

환율 1450원대…원유 수입 환차손 급증

환율 10원당 환차손 1000억 원 발생

HD현대오일뱅크 공장 전경 [사진=HD현대오일뱅크]

정유업계가 고환율과 정제마진 악화로 심각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가운데, 국내 주요 정유사들이 액침냉각유 시장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기 위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전자 및 반도체 산업의 급성장에 힘입어 액침냉각유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정유사들은 이를 사업 다각화 기회로 보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원유 수입 시 달러 결제 구조를 가진 정유사들은 환율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이날 1459원으로 거래됐다.

환율 상승은 정유사들의 원유 수입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업계는 환율이 10원 상승할 때마다 연간 약 1000억원의 환차손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며, 이에 따른 실적 부진이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환차손은 수익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정유사들의 경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제마진 하락도 정유업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유 구매비용 증가와 석유제품 판매 수익 감소로 전체 이익이 줄어들며, 중동 지역의 정제설비 확장과 국제 경쟁 심화로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중동 주요 정유사들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정유사들에게 큰 압박으로 작용한다. 또 운영비와 연구개발비 등 필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부담이 커지며,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과 원유 가격 변동 등으로 유연한 대응이 어려워져 경영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실제 이 같은 이유로 국내 정유사들의 경영 부담은 날로 커지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의 4분기 영업이익은 각각 146억원, 1756억원으로 예상되지만, 환율 상승과 석유 수요 둔화가 여전히 큰 리스크로 평가된다.

이에 정유업계는 액침냉각유 시장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삼아 수익 개선에 나서고 있다. 액침냉각유는 기존 공기 냉각 방식 대비 비용을 95% 절감하고, 열 효율성을 크게 개선할 수 있어 데이터센터 에너지 효율성과 운영비 절감에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액침냉각유는 데이터센터 내부의 장비를 액체로 직접 냉각하는 방식으로, 보다 효율적인 열 관리가 가능해져 에너지 절약과 공간 활용도를 높이는 데 유리하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QY리서치에 따르면, 데이터센터용 액침냉각유 시장은 2030년까지 연평균 21.2% 성장하며, 약 1조 3000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은 액침냉각유 시장을 장기적인 성장 동력으로 삼기 위한 준비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본격적인 시장 진출도 이뤄지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세계 최대 액침냉각 시스템 기업인 GRC로부터 자사의 '엑스티어 E-쿨링 플루이드'가 일렉트로세이프 인증을 획득하고, 국내 데이터센터 업체들과 협력을 강화 중이다. GS칼텍스는 액침냉각유 브랜드 '킥스 이머전 플루이드 S'를 출시하고, 맞춤형 제품군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고인화점 액침냉각유 '에쓰오일 e-쿨링 솔루션'을 통해 동북아 시장에서의 입지를 넓히고 있으며, 향후 성장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도 정유업계의 사업 다각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설비 폐쇄, 사업 매각, 신사업 M&A를 지원하며 금융·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사업 재편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신속한 기업결합 심사를 통해 정유업계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부 정책 지원은 정유사들이 신사업 분야에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기존의 정유 사업과 액침냉각유 시장 간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제마진 악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액침냉각유 시장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돌파구로 자리 잡고 있다”며 “앞으로 정유사들은 이 시장을 장기적인 성장 동력으로 삼아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