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파르 파나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세계 3대 영화제 석권

자파르 파나히(Jafar Panahi), 칸 황금종려상 수상 [사진=UPI 연합뉴스]

이란의 반체제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Jafar Panahi)의 신작 '잇 워스 저스트 언 액시던트(It Was Just An Accident)'가 제7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24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파나히 감독은 프랑스 배우 쥘리에트 비노슈(Juliette Binoche)가 이끄는 심사위원단으로부터 황금종려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이로써 파나히 감독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써클', 2000),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택시', 2015)에 이어 칸영화제까지 제패하며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모두 석권한 다섯 번째 감독이 됐다.

앞서 이 기록을 달성한 감독은 앙리 조르주 클루조(Henri-Georges Clouzot),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 로버트 앨트먼(Robert Altman), 장뤼크 고다르(Jean-Luc Godard) 등이다.

파나히 감독은 이란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고발하는 작품들로 수차례 구금됐으며, 2010년에는 영화 제작 및 출국 금지 처분을 받았으나 이후에도 몰래 영화를 제작해 해외 영화제에 출품해 왔다. 2022년 다시 구금됐다가 2023년 단식 투쟁 끝에 보석으로 석방됐다.

이번 수상작 '잇 워스 저스트 언 액시던트'는 과거 정치범으로 수감됐던 남성이 자신을 고문했던 경찰과 닮은 사람을 마주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남성이 그를 납치한 뒤 반체제 인사들과 함께 처단할지, 용서할지를 두고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 복수와 용서, 인간 존엄성의 문제를 탐색한다.

비노슈 심사위원장은 "예술은 어둠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이라며 "파나히 감독의 영화는 인간의 깊은 내면을 관통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무대에 오른 파나히 감독은 "지금 이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자유"라며 "우리 이란인들이 모든 차이를 내려놓고 단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도 우리가 무엇을 입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명령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파나히 감독은 1995년 데뷔작 '하얀 풍선(The White Balloon)'으로 칸영화제 신인감독상 격인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이후 꾸준히 칸과 인연을 이어왔다. 2003년 '붉은 황금(Crimson Gold)'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 2011년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This is Not a Film)'로 감독주간 공로상, 2018년 '세 개의 얼굴들(3 Faces)'로 각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심사위원대상은 요아킴 트리에르(Joachim Trier) 감독의 '센티멘털 밸류(Sentimental Value)'가 수상했다. 모로코를 배경으로 한 스페인·프랑스 합작 영화 '시라트(Sirat)'와 독일 영화 '사운드 오브 폴링(Sound of Falling)'은 공동으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감독상은 브라질 스릴러 '시크릿 에이전트(Secret Agent)'를 연출한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Kléber Mendonça Filho) 감독에게 돌아갔다. 이 작품의 주연 와그너 모라(Wagner Moura)는 남우주연상도 함께 수상했다.

여우주연상은 '더 리틀 시스터(The Little Sister)'에 출연한 23세 신예 배우 나디아 멜리티(Nadia Melliti)가 받았다. 각본상은 다르덴 형제(Jean-Pierre & Luc Dardenne)가 '더 영 마더스 홈(The Young Mothers' Home)'으로 수상했다.

올해 경쟁 부문에 진출한 한국 장편 영화는 없었지만, 심사위원단에는 홍상수 감독이 참여했다. 비노슈 심사위원장을 비롯해 할리 베리(Halle Berry), 제러미 스트롱(Jeremy Strong), 파얄 카파디야(Payal Kapadia) 감독 등 다양한 국적의 인사들이 함께 심사를 맡았다.

한편 이날 오전 칸 인근 변전소에서 발생한 화재로 영화제 상영관 일부에 정전이 발생했으나, 폐막식은 예정대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