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금융당국 개편, 성패는 '책임'과 '소통'에 달렸다

권가림 금융부 기자
[권가림 금융부 기자]
금융감독원 앞 2003년 풍경은 어수선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회의실 불이 꺼지지 않았고 회의 안건에는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의 감독권한 강화', '역할 조정' 같은 생소한 단어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카드 대란 사태가 발생하자정부가 금융 정책과 감독 기능의 역할을 명확히 하기로 한 것이다. 이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금감위가 국내 금융정책 기능까지 맡는 금융위로 확대, 개편되며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단일 정부부처가 수행하는 현 감독체계가 구축됐다. 

그리고 지금, 다시 금융당국 체계 개편안이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이재명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의 정책-감독-소비자보호라는 삼중 분리로 금융체계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기준에서 보면 새 정부의 개편 취지는 설득력 있다. 영국은 금융위기 이후 금융감독청(FSA)을 해체하고 건전성 감독은 은행규제청(PRA), 시장과 소비자 보호는 금융보호감독청(FCA)으로 분리했다. 독일은 국내의 기획재정부에 해당하는 재무부가 다른 경제정책처럼 금융정책을 함께 수행하고 감독업무는 별도의 연방금융감독원이 맡는다. 

노무현 정부 시절 금융 정책-감독 이원화는 긍정적인 변화도 이끌어냈다. 금융정책의 일관성이 강화됐고 감독 기능에 집중하면서 회계 투명성과 부실 금융사 조기 경보체계 도입 등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문제는 유관기관간 협력 시스템이다. 한국은 분리는 잘 해왔지만 함께 움직이는 법은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정책-감독-소비자보호 삼각 구도가 생기면 과거처럼 기관이 각각의 입장에서 움직이고 리스크가 커져서야 긴급회의를 소집하는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 금융, 소비자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분산되면서 오히려 피해자 보호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권한과 책임이 엇갈리면 리스크 대응에 대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정책-감독-소비자 보호간 공조 메커니즘과 공동 책임 구조가 필요하다. 감독 기구와 소비자 보호 기구의 실질적 독립성도 담보돼야 한다. 현장에서는 또 다른 쪼개기라는 우려가 나온다. 각 기관장이 실질적으로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인사 투명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금소보 기능이 또 다른 관료 조직으로 탄생하는 순간 소비자 보호는 더욱 멀어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왜 개편이 필요한가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다. 이해당사자 간 의견 수렴 없이 정치권 주도 개편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이뤄진다면 과거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의 개편은 과거를 답습하지 않는 첫 사례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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