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땅의 야수들’이 브루크너 교향곡 제8번을 모델 삼아 그렸다면, ‘밤새들의 도시’는 모차르트 피아노 콘체르토 23번을 기반으로 했어요.”
2024년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은 작가 김주혜는 17일 서울 인사동 나인트리호텔에서 열린 신간 <밤새들의 도시> 기자간담회에서 이처럼 말하며 “이번 신간은 협주곡을 그린 것”이라고 밝혔다.
전작인 <작은 땅의 야수들>이 조선 격랑 속 인물들을 통해 야수의 포효로 가득 찬 대한민국의 역사를 담은 웅장한 교향곡에 가깝다면, 이번 신작은 러시아를 배경으로 발레 무대 위에서 한 예술가가 자신과 싸우는 내면의 전쟁을 그린 협주곡이란 설명이다.
김주혜는 솔리스트가 최고의 기교를 보여주는 협주곡처럼, 소설 주인공인 발레리나의 스토리를 통해 예술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냈다. 그는 모차르트 콘체르토 23번에서 “사랑은 고귀하고 고결하면서도 타락한 것”이란 메시지를 느꼈다. “전쟁과 기아, 우리 인류가 맞이한 위기의 시대에 순수예술을 하면서 정직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해서 그리고 싶었어요. 이 책은 제게 정답을 찾는 방법이기도 했죠.”

9세 때부터 발레와 첼로를 배운 작가는 이번 소설이 술술 풀렸다고 한다. 2021년 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2023년 초여름에 탈고했다. 그럼에도 2년간의 집필 기간은 인생의 최절정과 최악이 동시에 덮쳐온 순간이었다. 영혼을 바쳐서 쓴 전작 <작은 땅의 야수들>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지만, 동시에 주인공들의 이름을 둔 어처구니없는 논란들로 상처를 받아야 했다.
“하루 이틀 안에 줄거리, 등장인물, 테마 등이 머릿속에 다 그려졌어요. 소설은 인생의 경험에서 나오죠. 전작은 태어나서부터 33세까지 제가 배우고 겪은 것을 녹여 넣었다면, 이번 작품은 인생에서 가장 최절정과 최악을 동시에 겪은 시간에 예술가의 삶, 구원과 절망의 과정을 그려 넣을 수 있었어요. 개인적인 경험을 많이 반영했기에 빨리 쓸 수 있었죠.”
9세에 미국으로 이민 간 김주혜는 자신을 “러시아 문학에 영향을 받은 한국인”이라고 정의했다. 특히 최근 유홍준 교수의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를 읽고, ‘나는 한국인 소설가다’라는 생각에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에는 60~80년대 문화예술인들이 예술활동과 사회활동을 펼친 내용들이 있죠. 김지하 시인 등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왜 나는 미국 문학에서 모범이 되는 사람을 못찾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어요.” 그는 김지하 시인, 박노해 시인 등 예술과 사회운동을 병행한 지성인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
김주혜는 ‘예술은 사치를 누리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닌 모든 생물, 타인에게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한다’고 믿는다. 그가 “예술은 전쟁과 양극화 시대에, 바로 지금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김주혜는 30~50년 후를 말했다. “저는 1년 내 판매부수를 생각 안 해요. 늘 염두에 두는 것은 앞으로 30~50년 안에 제 책이 얼마나 읽힐 것인가죠. 책 한권 한권 보다는 예술가로서의 전체적인 흐름을 더 생각하고 작품을 써요. 한국 문학이 세계문학의 기둥으로 자리 잡으려면, 앞으로 1세기가 지나도 독자들이 찾을 만큼 가치있는 작품인가를 생각하고 출간한다면 분명 그렇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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