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중국이 '항미원조 전쟁'이라고 부르는 6·25 한국전쟁 75주년이 되는 해다.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이 참전했다는 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과거 "'항미원조 전쟁'의 승리는 정의의 승리이자 평화의 승리이며 인민의 승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중국은 대미 항전 의지를 내비치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 차원에서 항미원조 전쟁을 정치 선전에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창립 100주년이었던 지난 2021년 10월 국경절 연휴 개봉한 전쟁 블록버스터 영화 <장진호(長津湖)>가 대표적인 프로파간다 영화(특정 정치 사상을 선전하기 위해 만든 영화)다.
영화 <패왕별희>의 천카이거(陳凱歌), <황비홍> 시리즈의 쉬커(徐克), 액션 영화 전문인 린차오셴(林超賢) 등 유명 감독 3명이 함께 메가폰을 잡았다. 쉬커 감독은 영화 제작 취지는 “항미원조에서 중국이 어떻게 싸워 승리했는지를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개봉 당시 중국인의 애국심을 고조시키며 57억7500억 위안의 박스오피스 흥행 수입을 기록,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올 초 중국산 애니메이션 영화 ‘너자2’가 흥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굳건히 유지했다.
영화는 한국전쟁 당시 미(美) 해병1사단 및 미국 육군 7사단과 중공군 9병단 병력 12만명이 벌인 혈전(血戰)인 ‘장진호 전투’를 다뤘다. 이는 중국군이 한국전쟁에 첫 참전한 전투이기도 하다.
당시 중공군의 갑작스런 기습에 미 육군 7사단이 패퇴하면서 미 해병 1사단은 사투를 벌였다. 당시 미군은 12월 11일까지 2주간에 걸쳐 철수 작전을 전개한 끝에야 비로소 중공군의 겹겹이 에워싼 인해전술 포위망을 뚫고 철수했다. 미국 해병대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투로 꼽힌다. 기록에 따르면 장진호 전투로 사망한 미군은 약 4500명, 중국군은 4만명 넘는 사상자를 내는 막대한 대가를 치렀다.
그럼에도 중국에서는 이를 '미군의 패전'이라고 규정하며, 상감령(上甘嶺) 전투, 금강천(金剛川) 전투와 함께 중국군이 6·25전쟁에서 미국군에 선방한 3대 전투로 선전한다.
실제로 장장 176분간 이어지는 영화는 철저하게 중국인의 시각에서 장진호 전투를 담았다. 배경으로 한국이 강조되지만 남·북한군은 등장하지 않으며 전쟁은 오직 중국군과 미군 간의 전쟁인 것처럼 그려진다. 북한군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는 설명도 없다.
영화는 조국을 수호하려는 평범한 병사들의 결의와 희생을 부각시키며 영웅화하는데 더 초점을 맞췄다.
탱크와 폭격기 등 선진 무기로 융단폭격하는 미군에 맞서 수류탄과 소총 같은 구식 무기로 영하 30도 아래 혹한 속에서 추위에 떤 채로 싸우는 중국군의 열악한 상황을 집중 조명해 더욱 극적으로 연출한 것. 영화 속에서 미군의 퇴로를 봉쇄하기 위해 강추위 속 매복해 있다가 얼어 죽어 단체로 얼음조각이 되버린 중국군 부대를 영웅으로 미화한 것을 놓고 ‘비인간적인 대우’라고 비판한 중국의 한 언론인은 구금되기도 했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장진호 전투는) 전쟁 최종 승리의 토대를 닦았다”며 “위대한 항미원조 정신은 더욱 새로워진다”는 자막은 이 영화가 중국인의, 중국인에 의한,중국인을 위한 한국전쟁 영화임을 재차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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