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스님의 '가로세로'] 푸른 산 맑은 물은 보석보다 더 귀중하다

원철 스님
[원철 스님]

몇 달 전부터 주변에 광고를 통해 장강(長江 중국 양쯔강)답사에 관심있는 이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했다. 하지만 마감까지 결국 두 명만 남았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일주일간 개인 시간을 따로 내는 것이 녹록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출발을 앞두고 여행사에서 문자가 왔다. 출발날짜를 일주일 연기한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마지막까지 참여하겠다는 인원 가운데 일부가 또 빠졌다. 나중에 알고보니 1팀과 2팀을 합친 것이였다. 생각보다 모객이 저조했던 까닭이다. 그렇게 인기있는 여행상품은 아닌 모양이다. 몇 년 전에도 신청했을 때 일정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이유를 이번에 확인한 것이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8월 초에 출발할 수 있었다.
 
장강여행의 출발지 중경(重慶 충칭)의 도시 브랜드 구호는 ‘아재중경(我在重慶 나는 중경에 있다)’이다. 공항에서 가장 먼저 만난 로고이기도 하다. 하지만 꼰대의 해석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아재들은 중경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ㅋㅋ)” 낮에는 묵직(重)했던 도시 분위기가 밤이 되니 완전히 달라진다. 야경은 화려(慶)했다. 도시이름을 중후(重厚)와 경희(慶喜 경사스럽게 여겨 기뻐하다)가 함께 한다는 의미라고 멋대로 해석했다. 해석은 어차피 하는 사람의 몫이다. 또 ‘중경삼림’이라는 청춘영화 때문에 청년세대에게도 잘 알려진 도시이기도 하다. 실제로는 홍콩의 중경빌딩이 배경이지만 그 건물이름도 중경에서 왔기 때문에 그게 그거다. 배 안에서 보는 다양한 모습의 야경은 시가지를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삼천만명이 산다는 세계최대의 인구를 가진 도시답게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도 엄청 길었다. 물론 천천히 달리는 관광선 덕분이긴 하지만.

 
공항에서 중경 브랜드를 만나다 사진저자 제공
공항에서 중경 브랜드를 만나다. [사진=저자 제공]

중경에서 출발하여 삼협 댐까지 도착하는 일정만 해도 3박4일이다. 배 안에서 숙식하는 덕분에 캐리어를 열고 닫는 일을 할 필요가 없는지라 동작이 꿈뜰 수 밖에 없는 중장년세대에게 안성맞춤 여행이다. 객실마다 베란다가 있어 빨래를 말리기도 좋다. 인근 지역 관광을 마친 후 여름 맹더위에 흠뻑 젖은 옷은 돌아와서 가벼운 손 세탁 후 널면 된다. 두 벌만 있으면 전일정을 무사히 소화할 수 있었다. 4~5백명 정도가 승선할 수 있는 큰 배는 정박지가 수심이 깊은 강 가운데에 둘 수 밖에 없다. 하선 뒤에는 몇 백m의 부교(浮橋)를 건넌 뒤 가파른 시멘트 계단을 일백개 이상을 밟아야만 관광버스를 탈 수 있다는 것도 이색적인 경험이다.
 
장강 리버 크루즈를 가능하게 한 현대중국의 삼협(중국발음:샨샤)댐 건설은 강 하류 지역의 홍수방지가 주목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홍수를 다스리는 일은 정치의 시작이요 끝이다. 요순시대를 지나 왕위를 물려받은 우(禹)임금의 가장 큰 업적은 치수(治水)사업이었다. 홍수는 주민들에게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대혼동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우 임금의 홍수조절 무대는 황하(黃河)였다. 황하는 ‘누런 강’이다. 장강(長江)은 ‘긴 강’이다. 누런 물, 긴 물이라는 보통명사가 고유명사가 된 경우라 하겠다. 수(隨)나라 문제(文帝541~604)와 양제(煬帝569~618)는 홍수를 막는 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물류와 운송까지 염두에 둔 운하를 기획하고 만들다가 사십여년 만에 나라가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규모 토목사업은 국고를 탕진했고 급기야 민심이반을 불렀던 까닭이다. 그럼에도 중국의 모든 왕조는 경항(京杭 북경과 항주를 연결)운하를 건설하고 수리하는 일에 하나같이 진심이었다. 치수가 곧 정치생명과 연결된 까닭이다.

 
수심때문에 강 가운데 정박시설을 만들었다 사진저자 제공
수심때문에 강 가운데 정박시설을 만들었다. [사진=저자 제공]

장강 본류는 말할 것도 없고 강 주변에 있는 도시에도 많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또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천만관객을 동원한 우리나라 영화 ‘신과 함께’의 원저자가 줄거리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귀성(鬼城)’을 찾았다. 또 이 지역 출신인 소설 삼국지의 관운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봉연삼국(烽烟三國)’은 무대와 좌석이 동시에 이동하면서 장면의 극전전환을 유도함은 물론 관중의 눈과 귀를 압도하는 대형공연이었다. 강 저편 멀리 있는 백제성(白帝城)도 보았다. 유비가 이릉전투에서 패한 뒤 제갈공명에게 뒷일을 맡기고 임종을 맞이한 곳이다. 원경으로 감상하면서 산 언저리에 새겨진 ‘백제성’이란 흰 글자 옆에 있는 건물 몇 채를 실눈으로 바라보면서 당시의 비장함과 함께하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소설삼국지 주인공 유비가 임종한 백제성 전경 사진저자 제공
소설삼국지 주인공 유비가 임종한 백제성 전경. [사진=저자 제공]

선상관광의 하이라이트는 장강삼협(三峽 무협 구당협 서릉협)이다. 넓은 강과 높은 협곡이 조화를 이루면서 만들어낸 비경이 압권인 지역이다. 중국 10위안 화폐도안의 배경으로 나올만큼 유명한 관광지인지라 여행상품 명칭마저 ‘장강삼협 크루즈’라고 붙일 정도였다. 관광객들은 화폐를 손에 들고서 인증샷을 날리느라고 모두가 바쁘다. 우리라고 빠질 수는 없다. 10위안 지폐를 잠시 임대하여 한 컷 찰칵.
뿌연 물안개로 가려진 방향 저멀리 삼협댐이 보인다. 드디어 종점에 도착한 것이다. 댐에 딸려있는 운하를 통과하려면 작은 배로 갈아타야 한다. 매우 단단한 느낌의 시멘트 벽과 엄청나게 강해 보이는 철끈이 손에 닿을 듯 말듯한 틈새 사이로 배가 들어가는가 싶더니 곧 이어 100m 가량 엘리베이트를 탄 것처럼 하강하면서 댐 아랫강에 관광객을 내려 놓는 것으로써 여행일정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관광버스 차창 밖으로 고대의 전설적 시인 굴원(屈原 BC343~278)의 연고지인 ‘굴원고리(屈原故里)환승처‘라는 안내판을 스치며 지나간 뒤 중경행 고속철을 탔다. 4시간이 소요된다. 한국행 비행기도 4시간이 걸렸다. 서울 종로에서 합천 가야산까지 4시간 걸려 운전하던 오랜 내공이 쌓인 덕분에 4시간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이번 여행을 통해 확인한 것이 부수적으로 얻은 소득이라면 소득이라 하겠다.

 
맑은 물과 푸른 산이  바로 금산과 은산이라고 했다 사진저자 제공
맑은 물과 푸른 산이 바로 금산과 은산이라고 했다. [사진=저자 제공]
 
가장 큰 소득은 강물에 비친 명문장을 손 그물을 힘차게 던져 건져올린 일이라 하겠다.
“녹수청산(綠水靑山) 취시금산은산(就是金山銀山)
맑은 물과 푸른 산, 그것이 바로 금은으로 만든 산이다.”
미래에는 맑은 물과 푸른 산이 금과 은보다 더 높은 가치와 혜택을 인간에게 제공할 것이라는 뜻이다.
장강여행에서 자연환경 보존의 중요성을 10자로 압축한 산 중턱에 써놓은 훈계성(?) 말씀을 달리는 선박 안에서 순간포착 후 핸드폰 갤러리에 저장한 것은 일주일의 여정 속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고 자화자찬 했다.


원철 필자 주요 이력

▷조계종 연구소장 ▷조계종 포교연구실 실장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