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 있었던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의 한국 국적자의 체포와 구금은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법적 절차적 정당성 없이, 마치 전쟁을 벌이듯 그들은 현장에 들이닥쳤다. 영장 제시 없이 한국인들을 수갑과 쇠사슬에 묶어 강제 이송했다. 영사 접견권과 통역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의료·법률 지원은커녕, 정상적인 비자 절차를 밟고 입국한 사람에게도 물리력이 난무했다. 비자 발급 지연과 현장 인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원인에는 아랑곳없이 무차별적인 인권 침해가 가해졌다. 귀국한 한국인들은 모두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폭력에 정신적 외상이 심각할 정도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이 쇠사슬에 묶여 구금당한 사태는 충격적이며, 국민의 공분을 그대로 미국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 국무 부장관의 방한과 유감 표명이 있자,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를 고려한 탓인지 강력한 대응은 자제되는 양상이다. 동맹국 국민에 대한 예우가 이 정도인가? 그래도 미국을 믿고 따라야 할 만한 나라인가?
미국은 자국 이익만을 생각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나라다. 작금의 관세 부과에 대한 압박만 봐도 알 수 있다.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고 수입을 제한하면서도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CHIPS(반도체 칩과 과학법)를 들어 미국 내 생산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기술 이전 요구, 현지 생산의 확대를 요구하면서도 비자 발급을 극도로 제한한다. 심지어 관세 협상에서 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충분히 응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표출하며 수용을 겁박하기까지 한다. 미국이 내거는 통상 정책은 ‘자의적 공정무역’이다. 자국 산업을 위해 수입 규제와 보복 조치를 언제나 정당화한다. ‘공정’의 기준은 필요할 때마다 재정의된다. 무역법 301조를 내세워 “상대국의 불공정 행위”를 자의적으로 판단해 관세·보복을 발동한다. 국제적 다자 규범보다 자국 판단을 우선하는 전형적인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대중 견제를 위한 공급망 재편에서는 한·미동맹의 결속을 강조하지만, 동맹국에 비용 전가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결과, 안보 협력은 경제적 압박과 함께 긴장을 초래한다. 대외관계에서도 마찬가지. 가치 외교를 내세우면서도 지정학적 이해가 충돌하면 바로 메시지가 급변한다. 중동·한반도 등 안보 현안에서는 인권보다 군사·안보 협력을 앞세우나, 경쟁국에는 인권을 강력하게 제기한다. ‘보편’이라는 언어를 쓰지만 ‘상대적’으로 적용하는 전형적 이중성을 보이는 국가가 미국이다.
한·미연합훈련에도 미국의 이중적 모순은 발견된다. “공동 방어”를 명분으로 하지만, 훈련의 설계·자산 배치·전략 결정의 중심은 미국이다. 북한 핵 위협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B-1B, B-52H 전략폭격기, 핵잠수함, 항공모함 등 고강도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반복적으로 전개한다. 표면적으로는 확장억제를 통한 한국 방어를 위한 조치라고 하나,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패권 유지 수단이다. 실로 이중적이다. 2024년 기준 한·미 및 한·미·일 연합훈련은 총 109회, 275일 동안 진행되었다. 이 중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만 해도 22회였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전략자산이 참여한 훈련이 총 4회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증가한 수치다.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을 “핵전쟁 연습”으로 간주한다. 미사일 시험 발사로 이에 대응한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한국의 안보가 강화하기보다는 위협이 증폭되는 역설적 상황의 발생이다. 동맹을 일컫는 미국이지만 이는 그들의 전략적 필요에 따른 동맹이다. 한국은 그 속에서 종속과 긴장의 위험을 끝없이 감수해야만 한다.
한국. 어떤 선택해야 할 것인가? 오랜 시간 동안 한국 안보의 핵심축으로 자리해 온 한·미동맹을 그대로 유지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전략적 자율성과 동맹의 균형을 재설계해야 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한국이 안보를 스스로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 구조 속에서 얻는 안보를 대가로 긴장과 종속의 위험을 끝없이 감수해야만 하는지를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12위의 경제력과 군사력 세계 5위의 한국. 동맹은 필요하나 그 동맹이 한국의 주권과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이재명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체제구축을 주요 외교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동맹 강화에 더 무게를 두는 듯한 모습이다. 한·미연합훈련의 완화 요구는 미온적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핵·재래식 훈련인 ‘아이언 메이스(Iron Mace)’가 9월 15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된다. 탄도미사일 방어와 해상 진출 차단 등을 훈련하는 한·미·일 3국 연합 연습 ‘프리덤 에지(Freedom Edge)’도 실시될 예정이다. 이와는 별도로 한·미 간 북한 핵 대응 능력 강화 훈련도 하게 된다. 이는 북한의 반발을 유도하는 구조적 악순환이다.
이재명 정부는 과연 이를 계속하도록 할 것인가? 첫째, 한국의 자율적 조정 시도에 대해 미국이 거부하는 구조를 바꿔 나가야 한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자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투영시키고 있다. 연합훈련은 그 핵심 수단이다. 평화를 위한 ‘선제적 신뢰 조치’를 미국에 강력하게 어필하라. 전방위 외교적 노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둘째, 훈련 중단이 미국의 확장억제 신뢰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리 자체의 우려도 불식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위상 약화도 우리가 걱정해야만 할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평화보다 동맹’을 우선하려는 선택에서 벗어나라. 대미 외교에서의 실용주의적 접근은 평화가 우선이다. 대미 안보 균열이 국내 정치·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인식도 지양하라. 그런 우려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스스로 강한 자세, 의지를 갖추라. 미국은 ‘가치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한국 외교의 자율성을 제한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전략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반도를 지속적 긴장 상태로 관리하려 하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셋째, 한국은 자주외교를 추구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음을 확신하라. 국제질서 속에서의 생존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전략이다. 미국은 한반도를 중국 견제의 전진기지, 동북아 군사 결속의 중심축, 기술·경제 블록화의 핵심 파트너로 한국을 이용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라.
이재명 정부는 진정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연합훈련의 완화 또는 재설계, 북한과의 군사적 신뢰 구축, 대미 협상력을 강화하라. 결단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평화는 결단에서 시작해야 한다. 미국의 종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안보 포기가 아니다. 자기 신뢰를 만드는 첫걸음이다. 한반도 평화는 외교의 자율성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평화는 단순한 선언으로 달성할 수 없다. 결단과 전략이 필요하다. 외교 자율성은 선택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필진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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