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하늘을 찌르는 인기를 바탕으로 최근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는 것을 보면서 아시아, 특히 일본 여성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걱정도 하게 된다. 자민당이 일본 정치 역사상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다카이치 총리는 앞으로 거칠 것 없는 강력한 힘으로 국정 운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그녀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으로 칭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은 그녀도 소위 요즘 서방에서 말하는 유리 절벽(glass cliff)에 서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유리 천장(glass ceiling)을 어렵게 극복한 여성 리더들이 결국은 지나친 기대감에 따른 압박으로 절벽으로 몰려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유리 천장이라는 용어는 이제 흔히 사용되지만 유리절벽이라는 개념은 2000년대 중반 미셀 라이언(Michelle Ryan)과 알렉스 해슬람(Alex Haslam)이라는 호주 출신의 두 학자들에 의해 개발되었다. 두 사람은 기업 경영에 있어 여성 지도자들이 능력이 부족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다른 사회적 요인을 관찰한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여성 지도자들이 실패하는 이유에는 능력 부족 같은 이유와 더불어 그들이 애초에 극심한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가 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즉 기업이나 국가 등 조직의 위기 상황이 심각할 때 이를 타개하기 위해 기존 지도자(주로 남성)가 물러나고 신선한 얼굴(주로 여성)을 내세우게 되는데 이때는 벌써 위기 상황이 최고조에 달해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주로 영국 기업 사례를 연구해 발표했지만 이 이론은 여성 정치 지도자들의 실패 사례를 설명하는 데도 이용된다. 테레사 메이(Theresa May) 영국 총리가 그 경우이다. 메이 총리는 2016년 영국이 EU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한 브렉시트(Brexit) 사태 이후 혼란 상황에서 취임했는데 이때 벌써 영국은 심각한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맞고 있었다. 브렉시트 찬반 세력 간의 갈등은 첨예했고 협상은 지지부진했으며 이후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감이 극에 달할 때였다. 전임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총리는 브렉시트 국민 투표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후라 집권 보수당은 새로운 얼굴로 여성 총리를 선택하였다. 그러나 메이 총리가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어려운 상태였고 그 결과 영국 역사상 마거릿 대처 총리 이후 두 번째 여성 총리였던 그녀는 2019년 불명예스럽게 물러난다.
보다 최근에는 역시 영국의 세 번째 여성 총리였던 리즈 트러스(Liz Truss) 총리가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트러스 총리 역시 전임 보리스 존슨 총리가 대내외 각종 위기 상황에서 낙마한 후 신선한 변화를 상징하며 등장했다. 그러나 그때 역시 영국은 고물가, 에너지 위기, 코로나 바이러스 등 극심한 내우외환을 겪고 있었기에 이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45일 만에 낙마해 영국 역사상 가장 단명한 총리로 남게 되었다.
대개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여성 지도자가 실패하고 나면 후대의 평가는 역시 '여자였기 때문에'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그 결과 여성 지도자 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더 커지고 향후 여성들이 최고 지위에 올라가기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한국도 동북아시아, 유교권 국가 중에서 최초로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이것이 실패하면서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은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 즉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명예스러운 추락을 분석할 때 개인적인 잘못뿐 아니라 여성 지도자였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늘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향후 단시일 내에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오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유리 절벽에서 추락한 한국의 여성 지도자 사례는 박 전 대통령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의 많은 여성 지도자들이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 진보, 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상황이 어려울 때는 여성 총리 혹은 여성 장관을 기용해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시도를 했다. 최근 이혜훈 전 의원의 경우를 보자. 이재명 대통령이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이 전 의원을 지명한 것은 협치의 차원으로 반대편 진영을 불러들인 것도 있지만 여성 정치인이라는 요인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만큼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고 예상되는 반대 여론을 완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극심한 진영 갈등과 양극화 상황에서 이 전 의원은 보기 좋게 낙마하고 말았다. 물론 이 전 의원과 그 가족의 각종 비리 의혹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여성 지도자에 대한 부정적 선입관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이번 정권에서 인사 청문회에서 낙마한 3명의 장관 후보 모두 여성이었는데 이로 인해 여성계 정치권 진출의 벽은 더욱 높아졌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다카이치 일본 총리에 대해 기대와 아울러 불안감이 드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유리 천장을 깨고 총리직에 오른 것에는 찬사를 보내지만 그 역시 다시 유리 절벽에 몰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 일본은 한국보다 더 심하게 가부장적인 전통이 강한 나라이다.
여기서 다카이치 총리가 실패한다면 여성 지도자에 대한 불신감은 더욱 고조될 것이다. 이는 이웃 나라 한국에도 좋은 뉴스가 아니다. 역시 아시아에서 여성 지도자는 성공이 어렵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된다. 후대의 더 많은 여성들이 유리 천장을 깨고 정상에 당당하게 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절벽에서 떨어지지 말고 꿋꿋하게 버티고 성공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 주요 이력
▷전 CNN서울지국 지국장 ▷전 외교부 문화협력대사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국제방송) 사장 ▷전 대통령실 해외홍보 비서관 ▷전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전 뉴욕타임스 기자 ▷현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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