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혁 칼럼니스트]
후한 말기 헌제(獻帝:189~220) 연간에 문재가 특출한 7인이 있었으니 세상 사람들은 이들을 일러 '건안칠자(建安七子)'라고 하였다. 이들은 문학을 애호한 당대의 실권자 조조와 두 아들 조비, 조식과 함께 당시의 문단을 주도했다. 이 건안칠자 중 공융(孔融)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공융은 공자의 20대손으로, 선비들을 좋아하고 후진들의 앞길을 이끌어 주는 등 인망이 두터웠다.
공융은 무너져가는 한나라 왕실을 구하고자 조조의 전횡에 수 차례 직언하다가 미움을 샀다. 조조가 유비와 손권을 정벌하려 했을 때도 공융은 극구 반대했다. 조조는 공융의 말을 가납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공융은 뒤에서 몇 마디 불만을 늘어놓았다. 공융과 사이가 좋지 않던 사람이 없는 말까지 보태 조조에게 이를 고자질했다. 전에도 몇 차례 유사한 일이 있었던 터라 조조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공융을 체포하라는 명을 내렸다.
공용에게는 어린 아들이 둘 있었는데 큰 아들은 아홉 살이고 작은 아들은 여덟 살이었다. 조조의 부하들이 공융을 체포하러 왔을 때 마침 두 아들은 탁정(琢釘, 고대의 아이들이 즐겨 하던 유희의 일종) 놀이를 하고 있었다. 집안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우왕좌왕했지만 아이들은 조금도 자세를 흩뜨리지 않고 하던 놀이를 계속했다. 아버지가 잡혀가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이 미동도 하지 않자 공융이 사자(使者)에게 부탁했다. "바라건대 벌은 나 혼자 받게 하고 두 아이는 다치지 않게 해주시오." 이때 아들들이 천천히 앞으로 나와 차분한 목소리로 공융에게 말했다. "아버지, 엎어진 새 둥지에 성한 알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大人豈見覆巢之下, 復有完卵乎)." 결국 두 아들도 아버지와 함께 잡혀가 처형되었지만, 어린 아이들이 남긴 말은 공동체의 운명을 상징하는 비유로 남았다.
국민의힘 내분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전 대표 제명에 이어 배현진 서울시당위원장의 직을 박탈하고 당원권 정지 1년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그에 앞서 김종혁 전 최고위원이 제명되었다. 이들은 모두 '친한계'들이다. 당 윤리위원회를 앞세운 장동혁 대표의 의지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당 대표와 사무총장으로 찰떡궁합을 과시하던 한동훈과 장동혁이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의 살벌한 갈등 관계가 되었다. 제명과 징계로 반대파를 억누르는 퇴행적 리더십으로 장동혁 대표는 대체 무엇을 이루려는 것일까?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의견 차이로 갈라선 장동혁이 친윤 세력의 지지를 받아 당 대표가 됐으니 만큼 한동훈을 날리려던 윤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면서 뻔히 예상되는 지방선거 패배 이후에도 당권을 놓지 않겠다는 심산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장 대표가 당권을 넘어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잠재적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사전 정지작업 아니냐는 얘기도 당 안팎에서 흘러나온다. 이유야 어떻든 그 근원에 두 전현직 당대표 간의 노선 갈등과 경쟁심리가 자리하고 있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일산불용이호(一山不容二虎), 같은 산에 호랑이 두 마리가 공존할 수 없다는 옛말이 문득 떠오른다. 호랑이끼리 싸우면 진 쪽이나 이긴 쪽이나 몸이 성하긴 어렵다.
장동혁 대표의 행보를 두고 뺄셈 정치니 자해 정치니 숙청 정치니 하는 부정적 꼬리표가 붙어다닌다. 서울•부산시장 선거에 정치생명을 걸겠다면서 12•3 비상계엄으로 된서리를 맞은 당을 쇄신하고 윤어게인 세력과 절연하라는 민심을 거스르고 친한계 제거에만 몰두하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죄 1심에서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음에도 장 대표는 오불관언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선거가 '당 대표 리스크'로 더욱 비관적이라는 전망이 쏟아진다. 이 와중에 당명을 바꾼다고 한다. 내적 쇄신 없이 당명만 바꾸는 건 장사가 안 되는 식당이 음식 맛을 개선하지 않고 메뉴도 그대로인 채 간판만 바꾸는 것과 같다. 화장발로 민심을 얻을 수는 없다.
자중지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민의힘 때문에 보수의 시름이 깊다. 복소무완란, 엎어진 둥지 아래 성한 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둥지'는 국민의힘 더 나아가 보수 진영 전체를, '알'은 장동혁 대표를 포함한 당내 개별 계파나 정치인들을 상징한다. 장 대표의 행보는 둥지를 부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둥지를 부수면서 내 알만 챙기려다가 국민의힘이 지리멸렬하고 보수가 와해되면 장동혁 대표와 당권파라고 온전하겠는가. 보수의 심장 대구 서문시장의 썰렁한 반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장 대표는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2016년 당시 새누리당은 '진실한 친박근혜(찐박)'를 가려내겠다며 비박계를 고립시키고 공천에서 배제했다. 이 과정에서 당의 외연은 급격히 축소되었다. 뺄셈 정치요 배제의 정치였다. 청와대와 당 주류는 '옥새 들고 나르샤'로 상징되는 극한 내분을 보였다. 전형적인 자해 정치였다. 이는 보수 지지층에게 큰 실망을 안겼고, 결국 '둥지'인 당이 총선에서 무너지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가는 시발점이 되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지도부는 "우리가 이긴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함이었다. 결국 민심은 심판을 선택했다. 10년 전 새누리당과 작금의 국힘 상황이 놀라울 만큼 닮은꼴이다. 그럼에도 장동혁 대표는 과거의 실패 사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최가온이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2전 3기 골절 투혼을 발휘하며 극적으로 금메달을 땄다. 한국이 동계올림픽에 첫 출전한 1948년 생모리츠 대회 이후 78년 만에 설상(雪上) 종목에서 처음 따낸 금메달이다. 스노보드 역사상 최연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기록도 세웠다. 각종 기록을 세운 최가온 못지않게 깊은 인상을 남긴 건 클로이 김 아닌가 싶다. 최가온에 밀려 금메달을 놓치고 스노보드 사상 최초의 ‘올림픽 3연패’라는 대기록 수립이 무산됐음에도 클로이 김은 최가온의 우승을 내 일처럼 기뻐했다. 클로이 김은 9년 전 평창올림픽 때 어린 최가온을 처음 만난 이래 멘토 역할을 자청하고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클로이 김을 최가온은 “언니는 내 우상이자 롤모델”이라고 했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공자의 말씀이 무색하게 뒤에 오는 사람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도와주고 이끌어주고 진심을 담아 우승을 축하한 클로이 김이야말로 진정한 '대인배'다.
진영으로 갈리고 계파로 나뉘어 정쟁으로 날을 지새는 한국 정치권에서 대인배는 3김 이후 씨가 말랐다. 사생결단 진흙탕 싸움으로 보수를 뿌리째 뒤흔들리고 있는 국민의힘에서도, 정권 출범 첫해부터 친명과 친청으로 쪼개져 가열차게 권력투쟁하고 있는 집권민주당에서도 큰 인물, 큰 정치는 찾아볼 수 없다. 중앙일간지 1면 헤드라인으로 '밥 한끼도 같이 못먹는 속 좁은 정치'가 뽑힐 만큼 한국정치는 협량 소인배들의 놀이터가 됐다.
둥지가 뒤집어지면 알이 온전할 수 없다. 뿌리가 썩으면 나뭇가지나 잎도 말라 없어진다. 8,9세에 불과한 공융의 어린 아들들도 알았던 '공멸의 원리'를 정작 나랏일을 한다는 정치지도자들이 간과하고 있다. 오찬 무산의 뒤끝인가, 설 연휴 내내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는 SNS 부동산 설전을 벌였다. 여야는 작년 추석 때도 대통령 부부의 예능프로그램 출연을 놓고 낯뜨거운 설전을 벌인 바 있다. 국가 안위에는 눈 감고 편을 갈라 사사건건 싸우는 여야의 행태는 국민의 근심거리가 된 지 오래이다. 경쟁하면서 상대를 포용했던 YS와 DJ의 통 큰 정치가 그립다. 모쪼록 정치하는 사람들이 클로이 김을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들이 이번 설 밥상머리 민심이 아니었을까?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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