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P 데스크 칼럼] 폭탄은 문을 부술 수 있지만, 집을 지을 수는 없다

  • 국제사회는 이란 사태에서 아프가니스탄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107년 전 오늘, 일제의 억압에 맞서 거리는 태극기로 물결쳤고, “자유”와 “자주독립”을 외치는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외세의 총칼 앞에서도 역사의 주체는 결국 시민이라는 믿음이 광장을 채웠다. 3·1의 기억은 그래서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정치의 출발점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기준이다. 

그날을 되새기는 오늘, 지구 반대편 테헤란에서는 또 다른 함성이 포착됐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사망 소식이 퍼지자 일부 지역에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는 외신 보도다. 억눌린 체제에 대한 분노와 피로가 축적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나 희망 만큼이나 불안과 두려움도 짙게 드리운다. 지도자의 제거, 외부 폭격이 과연 민주주의와 평화를 보장하는가. 

민주주의는 한 사람의 제거로 완성되지 않는다. 최소한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공포가 걷힌 공공 영역이다. 사람들이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직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려야 한다. 둘째, 권력이 분산되는 제도다. 군·정보기관·사법·선거 관리 기구가 특정 집단에 독점되지 않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셋째, 권력 공백을 메울 대안 세력이다. 정권의 “다음”을 운영할 인적·조직적 기반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 넷째, 국가 운영 능력이다. 치안과 생필품 공급, 통신과 국경 관리가 유지되는 행정 역량이 버텨야 한다. 이 네 가지가 동시에 갖춰지지 않으면 ‘정권 약화’는 곧 ‘국가 약화’로 번지고, 그 공백을 민주 세력이 아니라 무장 조직과 강경파가 먼저 채우는 경우가 많다. 

테헤란 공습 이후의 풍경은 이를 예고한다. 환호가 있었다는 보도와 동시에 사재기와 교통 체증, 인터넷 차단이 뒤따랐다. 체제가 흔들릴 때 시민이 먼저 구하는 것은 정치 구호가 아니라 물과 연료, 연락 수단이다. 기본 질서가 무너지면 사람들은 “자유”보다 “안전”을 선택한다. 그 순간 강경 통치의 명분은 커진다. 이슬람혁명수비대 같은 무장 권력은 ‘질서 회복’을 내세워 재집결할 수 있다. 공습이 민주화의 문을 열었다기보다, 공포 정치의 재료를 제공할 가능성도 함께 키우는 셈이다. 

여기서 국제사회가 반드시 되새겨야 할 것은 아프가니스탄의 교훈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군사 개입은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2021년 카불 함락과 함께 탈레반은 다시 권력을 되찾았다. 외부 군사력이 만든 체제 변화는 내부 정치의 신뢰와 정당성을 대신 세우지 못했다. 미군 철수 이후의 혼돈은 이른바 ‘재탈레반화’로 이어졌다. 정권을 무너뜨리는 능력과 그 이후의 질서를 설계하는 능력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아프가니스탄은 보여줬다. 

이라크의 경험도 같은 결론을 강화한다. 사담 후세인 축출 이후 종파 갈등과 내전, 극단주의 세력의 부상은 “정권 제거 = 자유 확대”라는 도식을 무너뜨렸다. 외부 군사 개입은 독재자를 제거할 수는 있어도 민주주의의 핵심인 제도·정당·시민 사회의 생태계를 단기간에 이식하지는 못한다. 

이란 역시 복잡한 조건을 안고 있다. 이슬람혁명수비대라는 강력한 무장 관료 집단, 분열된 야권, 구금된 반체제 지도자들, 다양한 민족과 종파 구성이 얽혀 있다. 권력 공백은 쉽게 지역 갈등과 정체성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 이 조건에서 “지도부 제거”는 민주화의 지름길이 아니라, 통제 강화와 보복 폭력, 또는 내전적 불안정의 촉매가 될 위험이 있다. 

이번 사태를 가장 차갑게 계산하고 있을 인물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일 가능성이 크다. 핵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의 최고 권력이 외부 공습으로 제거됐다는 인상은 두 가지 메시지를 동시에 던진다. 미국이 필요하다면 지도부 제거 옵션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핵 억지력 없는 체제는 취약하다는 점이다. 이는 북·미 대화의 문을 넓히기보다 북한의 핵 집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협상이 작동하려면 “협상해도 안전하다”는 신뢰가 필요하다. 그러나 공습과 제거의 이미지는 그 반대의 신호로 읽힐 수 있다. 

3·1운동은 외부 폭격이 아니라 내부의 각성과 연대에서 출발했다. 물론 우리의 독립은 국제 정세와 전쟁이라는 외적 요인과도 맞물려 있었다. 그러나 정당성의 근원은 “우리가 원했다”는 내부의 의지였다.

이란에서도 마찬가지다. 외부 공습이 체제의 균열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균열을 자유와 법치의 질서로 전환하는 일은 결국 이란 시민 사회의 조직력과 정치 세력의 합의, 제도 설계 능력에 달려 있다. 

폭탄은 문을 부술 수 있지만, 집을 지을 수는 없다. 국제사회가 이란 사태를 다루는 방식은 아프가니스탄의 교훈 위에 서야 한다.

정권의 제거가 아니라, 그 다음날의 질서와 제도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에 대한 준비와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또 하나의 불안정만 남길 수 있다.  테헤란의 밤하늘을 가른 폭음이 자유의 서곡이 될지, 또 다른 혼돈의 시작이 될지—정답은 공습의 정밀도가 아니라, 이후의 정치와 제도가 쓸 것이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2026년 3월 1일현지시간 테헤란의 한 광장에서 시민들이 애도하고 있다 1989년부터 이란을 이끌어온 하메네이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 첫날 공격으로 사망했으며 양국의 군사 작전은 이날 이틀째 이어졌다AFP연합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2026년 3월 1일(현지시간) 테헤란의 한 광장에서 시민들이 애도하고 있다. 1989년부터 이란을 이끌어온 하메네이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 첫날 공격으로 사망했으며, 양국의 군사 작전은 이날 이틀째 이어졌다.(AF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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