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희의 B-컷] '기생충' 이상의 시너지… 장혜진·최우식, 재회로 증명한 '넘버원'

한 작품에는 수많은 시선이 존재합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이었지만 감독과 배우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느꼈던 감각은 모두 다를지도 모릅니다. '최송희의 B-컷'은 스크린에 담긴 'A-컷' 너머 생생한 현장이 담긴 이면의 기록을 주목합니다. 감독, 배우들의 인터뷰를 교차해 완성된 프레임보다 더 뜨거웠던 'B-컷'의 순간을 재구성합니다. <편집자 주>
영화 넘버원 장혜진 최우식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영화 '넘버원' 장혜진, 최우식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재회는 때로 위험한 함정이다. 서로를 너무 잘 안다는 안도감이 긴장을 늦추고 매너리즘을 부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넘버원'의 현장에서 목격된 재회는 전혀 다른 결을 띠고 있었다. '기생충'의 모자로 만났던 장혜진과 최우식, 그리고 '거인' 이후 10년 만에 다시 마주 선 김태용 감독과 최우식에게 익숙함이란 안주가 아닌 '도약'을 위한 가장 단단한 발판이었다. 서로의 호흡을 알아가는 단계를 생략한 자리에 사투리라는 치열한 도전과 징크스를 깨는 뜨거운 감정의 열정이 들어찼다. 

영화는 '기생충'의 잔상을 지우는 대신 그 시간을 통해 쌓인 노련함을 동력으로 삼았다. 장혜진은 다시 만난 아들 최우식에게서 단순한 친밀감을 넘어선 동료로서의 경외심을 발견했다.

"그래서 캐스팅한 건 아닐까 싶을 수도 있는데, 저는 그건 또 그거대로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식이랑 두 번째 만나는 거라 서로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하니까 편안한 부분이 있어요. 처음 만나는 배우들처럼 알아가는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되니까요. 다시 만난 우식이를 보고 많은 노하우가 생겼구나 싶었어요. 모니터를 보다가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말이 마음속에서 튀어나올 때가 있었거든요. 현장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도 더 커진 것 같고 주변도 많이 챙기더라고요. 그리고 우식이가 제 실제 아들과 꼭 닮았는데 그 점도 몰입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정말 많이 닮았어요!" (장혜진)
영화 넘버원 장혜진 최우식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영화 '넘버원' 장혜진, 최우식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최우식 역시 장혜진의 목소리 톤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투영하며 한층 깊어진 감정을 주고받았다. 인맥보다 '인복'이 좋다고 말하는 그는 이번 현장이 유독 즐거웠던 이유로 익숙한 얼굴들이 주는 안정감을 꼽았다.

"선배님이 제 어머니랑 좀 닮으셨어요. 목소리 톤도 비슷해서 연기할 때 몰입이 잘 됐어요. 이번에는 둘이서 감정을 오가고 대사도 주고받는 장면들이 많아서 더 가까워진 느낌도 있었고 이전에는 못 봤던 모습들도 보게 됐어요. 사실 운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감독님이랑은 '거인' 때부터 알고 지냈고 장혜진 선배님이랑은 '기생충' 때부터 친했으니까요. 우리가 다루는 소재는 무거울 수 있는데 현장에서는 깔깔 웃으면서 정말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최우식)

특히 김태용 감독과 최우식의 재회는 '거인'(2014)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남다른 감회를 준다. 위태롭던 스물넷의 청년이 서른넷의 단단한 배우가 되어 돌아왔을 때 감독은 "이제 배우구나"라는 말로 10년의 성장을 증명해주었다.

"'거인' 때 만났을 때 감독님은 스물일곱이었고 저는 스물네 살이었어요. 그때는 룰도 거의 없이 정말 힘들게 찍었는데 그래도 되게 즐거웠거든요. 이번에도 당연히 기대하고 들어갔죠. 달라진 건 서로 나이를 10년쯤 더 먹었다는 거겠죠. 배우라면 당연히 하는 것들인데도 감독님이 '엄청 성장했다, 다 컸다, 이제 배우구나' 이렇게 말씀해주시곤 했어요. '거인' 때는 그런 모습이 하나도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는 세상에 찌들지도 않은 순수한 마음이었고, 그래서 감독님께 더 믿음이 가요." (최우식)

"감독님은 솔직한 사람이고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끌어가요. 사람의 이야기니까 본인의 이야기가 투영될 수밖에 없는 거고요. '거인'은 그 당시의 마음이었던 거고 지금은 '넘버원'에 닿아있는 거겠죠. 감독님이 다음에 또 작품 하자고 하면 언제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좋은 현장이었습니다." (장혜진)
영화 넘버원 장혜진 최우식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영화 '넘버원' 장혜진, 최우식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하지만 이 훈훈한 재회 뒤에는 '부산 사투리'라는 거대한 장벽이 있었다. 늘 안전하고 쉬운 길을 택해왔다고 자평하던 최우식에게 사투리는 단순한 언어의 변주가 아닌, 인물의 삶을 통째로 체득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도전이었다.

"특히 부산 사투리가 제일 걱정됐어요. 감정 연기를 하면서 사투리를 쓴다는 게 많이 힘들 것 같았거든요. 이번에는 좀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사투리는 그 인물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 이야기해줘야 하는 거잖아요. 거기에 격한 감정까지 가야 한다는 게 솔직히 무서웠던 것 같아요. 실제로 해보니까 정말 힘들었는데, 다행히 현장에 감독님과 선배님이 계셔서 봐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최우식)

부산 출신인 장혜진 역시 '리얼함'과 '전달력' 사이의 간극을 조율하며 사투리의 무게를 실감했다. 그녀는 투박한 사투리 속에 아들이 두고 간 낡은 플리스를 입고 나오는 은실의 옷차림을 더해 인물의 정서를 완성했다.

"제가 부산 사람이라 진짜 사투리로 말하면 못 알아듣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디까지 알아듣게 할지 그 조절이 제일 어려웠어요. '부산 사람인데 저 정도밖에 못 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도 했지만, 지역 정서라는 게 몸에 배어 있는 거니까 부동럽게 가려고 했죠. 의상의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은실이 아들이 부산에 두고 간 하늘색 플리스를 그대로 입고 나온다는 설정을 살리고 싶었거든요." (장혜진)
영화 넘버원 장혜진 최우식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영화 '넘버원' 장혜진, 최우식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평소 감정 소모를 두려워해 '감정 신 징크스'를 앓던 최우식은 비로소 진심을 마주했다. 늪에 빠질까 봐 피해왔던 슬픔은 엄마가 된 장혜진의 눈빛을 받는 순간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다.

"사실 제가 감정 연기에 대한 징크스가 있어요. 슬픈 걸 찍었다가는 늪에 빠져서 제가 불행해질 것만 같아서 피해왔거든요. 하지만 그 장면을 피할 수는 없었어요. 하민 때문에 바뀌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혜진 선배님이 잘 이끌어주셔서 저는 그냥 감정을 받기만 하면 됐어요. 덕분에 자연스럽게 연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최우식)

결국 '넘버원'을 지탱하는 힘은 십수 년의 세월을 관통한 이들의 단단한 유대감에 있다. 익숙한 재회가 주는 안정감에 머무는 대신 서로를 향한 깊은 신뢰를 발판 삼아 각자의 한계를 깨뜨리는 성장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감정의 늪을 두려워하던 최우식이 징크스를 깨고 정면을 응시할 수 있었던 것도 장혜진이 아들의 낡은 옷을 입고 기꺼이 그를 이끈 것도 결국 서로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이들이 곁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재회라는 편안한 안식처에서 시작해 뜨거운 자기 증명으로 마침표를 찍은 이들의 호흡은 기록된 숫자보다 선명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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