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건의 심리렌즈] 황석희 논란이 던진 질문, 왜 숨겨진 과거는 일상 속에 묻힐까

사진tvN 유퀴즈온더블럭 방송 캡처
[사진=tvN '유퀴즈온더블럭' 방송 캡처]


번역가 황석희를 둘러싼 논란은 한 사람의 과거가 뒤늦게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데서만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30일 디스패치에 따르면 황석희는 과거 강제추행치상·준유사강간 등으로 두 차례 기소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에 대해 황석희는 "변호사와 검토 중이며, 사실과 다른 부분이나 법적 판단 범위를 벗어난 표현이 있을 경우 정정 및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건에서 쉽게 나오는 질문은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어떻게 버젓이 활동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물음만으로는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사람이 생계를 멈출 수는 없다. 또 개인의 심리를 섣불리 재단하며 악마화해서도 안 된다. 다만 이번 논란은 중대한 과거가 드러나지 않은 채 사회적 신뢰와 직업적 일상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는지, 그리고 사람은 어떻게 자기 안의 불편한 이력을 일상 바깥으로 밀어둔 채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게 만든다.

이런 현상을 설명할 때 심리학이 먼저 떠올리는 개념은 '분리'다. 자기개념 연구는 사람이 자기 안의 긍정적 정보와 부정적 정보를 서로 다른 칸에 넣어 관리하는 경향, 즉 구획화(compartmentalization)를 설명해왔다. 이 구조에서는 부정적인 자기 정보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일상 전체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 쉽게 말해, '일하는 나'와 '문제가 있는 과거를 가진 나'가 한 사람 안에서 분리돼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Showers의 연구는 긍정적 자기 측면이 활성화돼 있는 동안에는 부정적 정보에 대한 접근이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일상이 멀쩡해 보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과거를 정면으로 직면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반대로, 불편한 과거가 현재의 기능을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자기 안에 심리적 칸막이를 세운 채 살아갈 가능성도 있다. 충격은 범죄 사실만이 아니라, 그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당사자가 너무 평범하고 무리 없이 기능해왔다는 데서도 온다. 이건 황석희 개인의 내면을 단정하는 문장이 아니라, 숨겨진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설명할 때 호출되는 심리 이론이다.

두 번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자기정상화'다. 성범죄 관련 연구들에 따르면 일부 가해자 집단에서는 범행 부인, 행위 축소, 책임 전가, 피해 경시 같은 인지 왜곡이 반복적으로 관찰된다. 또 일부 연구는 성범죄자 집단이 일반인이나 다른 집단보다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 기제를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핵심은 잘못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잘못의 의미를 바꿔 받아들이는 데 있다. 이 역시 모든 개인에게 일괄 적용할 수 있는 공식은 아니지만, 왜 어떤 사람들은 중대한 잘못 이후에도 자신을 '가해자'가 아니라 '실수한 사람' 혹은 '억울한 사람'으로 재해석하는지를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사진tvN 유퀴즈온더블럭 방송 캡처
[사진=tvN '유퀴즈온더블럭' 방송 캡처]


세 번째는 '은폐와 관리'다. 숨길 수 있는 낙인을 가진 사람은 무엇을 감출지, 누구에게 어디까지 드러낼지, 지금 밝히는 편이 더 손해인지 아닌지를 계속 계산하게 된다. 관련 연구는 이런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공개 여부를 접근 동기와 회피 동기 속에서 판단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일상은 단순한 생계의 현장을 넘어, 현재의 얼굴을 유지하기 위한 관리의 공간이 되기 쉽다. 더 성실하게 보이고, 더 전문적으로 보이고, 더 무해하게 보일수록 과거는 현재에서 멀어진다. 물론 이것 역시 특정인의 전략을 단정하는 말이 아니라, '숨길 수 있는 과거'가 현재의 자기표현 방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일반론이다.

이번 황석희 논란이 더 크게 읽히는 데에도 이런 맥락이 겹쳐 보인다. 그는 무대 위 스타는 아니었지만, 외화 대작들을 번역하며 이름을 알린 문화 노동자였다. 단순히 생계를 이어가는 익명의 개인이 아니라, 감각과 취향, 언어를 매개로 신뢰를 축적해온 인물이었다. 그래서 이번 논란은 "전력이 있는 사람도 일은 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계의 문제에서 멈추지 않는다. 도리어 "우리가 오랫동안 신뢰하고 소비해온 이름은 무엇 위에 세워져 있었나"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영향력의 문제도 겹친다. 꼭 연예인이나 정치인만 권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업계에서 인정받고,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처럼 기능하고, 대중의 호감을 신뢰 자산으로 축적한 사람은 그 자체로 이미 일정한 영향력을 가진다. 권력과 관점 수용의 관계를 다룬 연구들은 힘이 높아질수록 타인의 시각을 자발적으로 채택하는 경향이 약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것이 곧바로 모든 사람의 공감 능력 저하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의 위치와 손실에 더 예민해질수록, 타인의 피해보다 자기 보존의 논리가 앞설 위험이 커진다는 점은 경계할 만하다.

그래서 이번 논란을 두고 "어떻게 저 사람은 그런 과거를 안고도 계속 일했나"라고만 묻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더 정확한 질문은 '어떻게 어떤 사람들은 드러나지 않은 과거와 현재의 직업 정체성을 분리한 채, 사회적 정상성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가'다. 그리고 그 정상성은 개인의 심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과거를 알지 못했던 주변, 결과물과 인물을 분리해 소비해온 대중, 성과와 감각을 먼저 평가해온 업계 역시 정상성 유지의 조건이 된다. 사건이 터진 뒤 사람들이 더 크게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무 문제 없는 얼굴처럼 보였던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잘못을 저질러도 사람은 살아간다. 일하고, 웃고, 말하고, 관계를 맺는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중이 불편해하는 건 다른 지점이다. 한 사람이 중대한 과거를 안고도 무난하게 정상적인 얼굴을 유지해왔고, 사회는 그 얼굴을 오랫동안 의심 없이 소비해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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