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의 100투더퓨처] 쇠퇴 아닌 축적…60세 거북의 거꾸로 가는 시계

  • 노화의 역설…거북이 가르쳐준 장수의 가치

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미시간주의 이름 없는 연못가에서 한 생태학자가 거북의 등껍질에 번호를 새겼다. 1953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거북들은 연구자의 청년기와 장년기와 노년기를 지나는 동안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여전히 알을 낳고, 여전히 살아남았다. 미국 생태학자인 저스틴 D. 콩돈 박사의 이야기다. 그가 수십 년에 걸쳐 블랜딩거북과 비단거북, 늑대거북을 추적하며 쌓아 올린 데이터는 단순한 생태학적 기록을 넘어 인류가 오랫동안 품어 온 하나의 편견을 조용히 허물어뜨렸다. 필자는 2008년 미국노년학회에서 그가 발표한 강연을 직접 듣고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나이가 들면 쇠퇴한다'는 기존의 통념을 깨뜨려버리는 파격적인 내용이어서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낡은 상식의 혁파 

20세기 진화생물학은 노화를 일종의 진화적 숙명으로 이해했다. 피터 메다와와 조지 윌리엄스 같은 이론가들은 유기체가 생식을 마친 이후에는 자연선택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신체가 서서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윌리엄스의 '길항적 다면발현설'은 특히 강력했다. 젊을 때 생식을 돕는 유전자가 노년에는 오히려 해롭게 작용한다는 이 이론은 노화를 생명의 필연적인 비용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틀 안에서 노년은 이미 기울어진 저울이었다. 늙는다는 것은 잃는다는 것이었고, 오래 산다는 것은 더 많이 잃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의학은 이 쇠퇴를 늦추는 기술로 발전했고, 사회는 노인을 돌봄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노화 자체가 병리학의 영역에 놓였다. 

그러나 콩돈 박사의 거북들은 그런 이론서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2001년 콩돈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학술지 '실험노년학'에 논문 한 편을 발표했다. 제목은 건조하기 그지없었다. '장수 척추동물 블랜딩거북의 노화 가설 검증'. 그러나 내용은 도발적이었다. 약 50년에 걸쳐 추적한 블랜딩거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60세가 넘은 고령 암컷들이 젊은 개체에 비해서 높은 생존율과 더 우수한 생식 성공을 보였던 것이다. 산란 빈도가 늘어났고, 알의 크기도 컸으며, 부화율도 높았다. 전통적인 노화 이론이 예측하는 것과 정반대의 결과였다. 2003년에는 비단거북을 대상으로 한 후속 연구가 같은 저널에 실렸다. 결과는 동일했다. 고령의 개체에서 생식력 저하나 사망률 증가, 즉 노화의 전형적인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성체 이후에도 몸집이 계속 자라는 '부정형적 성장'이 수명과 생식력 모두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 현상에 이름을 붙였다. '무시할 수 있는 노화' 혹은 더 과감하게 '음(陰)의 노화'라는 기존의 쇠퇴노화론을 반박하는 개념이다. 나이듦에 따라 생체기능이 쇠퇴의 곡선이 아니라 오히려 상승하는 곡선을 보인다는 결과이다. 

오래된 것이 더 잘 안다 

고령 거북의 번식 성공이 높은 이유는 단순히 몸집이 커진 것만이 아니었다. 오래 산 개체일수록 최적의 산란 장소를 더 정확하게 선택하고, 포식자를 더 능숙하게 회피하며, 기후변화와 환경의 변동에 더 유연하게 적응한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이것은 학습이다. 생태적 지식의 축적이다. 반세기를 살아온 거북은 그 반세기의 계절을 모두 기억하는 셈이다. 어느 봄이 위험했는지, 어느 여름이 혹독했는지, 어느 연못가가 안전한지. 그 기억이 다음 세대를 살아남게 한다. 생태학자들은 이것을 '생태적 기억'이라 부른다. 경험 많은 나이 든 개체가 집단 전체의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개념이다. 아프리카 코끼리 무리에서 연로한 암컷 리더가 가뭄 시기에 수십 년 전 기억 속의 물웅덩이로 무리를 이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콩돈 박사의 연구는 순수 학문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의 인구통학적 데이터는 멸종 위기 동물의 보존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1993년 학술지 '보존생물학'에 발표된 논문에서 그는 충격적인 계산 결과를 내놓았다. 성적 성숙에 14년에서 20년 걸리는 블랜딩거북 같은 장수 동물은 인간의 간섭으로 인해 성체 사망률이 단 10%만 추가로 증가해도 전체 개체군은 수십 년 내에 돌이킬 수 없는 붕괴를 맞이한다는 것이었다. 이 발견은 종래의 보존 상식을 뒤집었다. 사람들은 멸종 위기 동물을 보호할 때 알이나 새끼를 지키는 데 집중했다. 부화율을 높이고, 어린 개체를 방사하고, 포식자로부터 둥지를 보호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콩돈 박사의 모델은 말했다.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장수 동물에서는 성체 한 마리가 수십 년에 걸쳐 수백 개의 알을 낳는다. 그 성체를 잃으면 미래의 수백 마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1994년 미국 동물학회지에 발표된 늑대거북 연구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장수 척추동물에서 개체군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성체와 성숙 직전 단계 개체들의 생존율이라는 것이었다. 이 원칙은 오늘날 거북뿐 아니라 고래, 코끼리, 상어 등 장수 야생동물 보호 정책의 근간이 되었다. 오랫동안 살아남은 성체가 가장 가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의 전환이었다.

콩돈 박사의 연구를 인간의 노년에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다. 거북과 인간은 다른 생명체이고 진화의 역사도 다르다. 그러나 생물학적 발견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은 종의 경계를 넘는다. 거북의 반세기 데이터가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나이는 손실이 아니라 축적이다. 거북에서 나이는 체격의 증가이자, 경험의 누적이자, 번식 역량의 향상을 의미했다. 인간에게도 노화는 단순한 기능 저하가 아니다. 수십 년의 관계, 판단의 기준, 위기를 겪어 낸 기억, 인내의 근육이 함께 자란다. 둘째, 오래된 몸은 스스로를 더 잘 안다. 장수 동물의 면역계와 DNA 복구 시스템이 세월과 함께 정교해지듯이 오래 살아온 인간의 몸과 마음도 자신만의 균형을 찾는다. 무엇이 자신을 지치게 하는지, 무엇이 기운을 회복시키는지, 언제 쉬어야 하는지를 나이 든 사람들은 젊은 날보다 더 잘 안다. 셋째, 노년은 집단의 지혜 저장소다. 고령의 거북이 최적의 산란지를 기억하듯이 오래 산 인간은 공동체가 기억해야 할 것들을 기억한다. 가족이 어떤 어려움을 어떻게 견뎠는지, 마을이 어떤 위기를 어떻게 넘겼는지, 역사가 어떤 경고를 보냈는지. 노인의 이야기는 때로 낡은 것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반복되는 패턴을 알아보는 눈이 담겨 있다. 넷째, 성공적인 노화의 핵심은 '적응 능력'이다. 장수 동물의 특징은 손상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손상을 관리하고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능력이다. 인간의 건강한 노화 역시 마찬가지다. 아프지 않는 노년이 아니라 아픔을 안으면서도 삶을 이어가는 회복력, 변화를 거부하지 않고 그 안에서 새로운 자리를 찾아내는 유연성, 이것이 오래 살아남은 생명체들이 공유하는 비결이다. 다섯째, 장수의 목적은 수명의 연장이 아니라 의미의 심화다. 자연선택은 장수 동물의 수명을 단순히 늘린 것이 아니다. 오래 사는 것이 종에게 이익이 되도록 설계했다.  인간의 장수도 마찬가지 질문 앞에 서야 한다. 몇 살까지 사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오래 사느냐. 누구와 함께, 무엇을 나누며, 어떤 흔적을 남기느냐다. 

사회는 성체를 보호해야 한다

콩돈 박사가 보존 생물학에 남긴 원칙은 인간 사회에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장수 동물에서 성체의 조기 사망이 개체군 전체를 붕괴시키듯이 노년층을 사회에서 일찍 밀어내는 것은 공동체 전체의 손실이 된다. 이미 일하는 70대, 활동하는 80대, 창작하는 90대의 이야기가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고령자 노동 참여를 장려하는 것은 단순히 인구 문제의 해법이 아니다. 오래 축적된 역량을 사회가 계속 활용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합리적이라는 인식의 변화다.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50대 중반에 회사를 떠나고, 60대를 '시니어'라는 이름으로 분리하고, 노인을 복지의 수혜자로만 규정하는 관성이 남아 있다. 그러나 콩돈 박사의 거북들이 가르쳐 주었듯이 오래 산 개체를 일찍 퇴장시키는 것은 가장 값비싼 낭비다. 사회가 '성체'를, 즉 오래 경험하고 깊이 생각하며 여전히 활동할 수 있는 이들을 어떻게 대우하느냐는 그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변수다. 

물론 생물학적 발견을 지나치게 낙관적인 선언으로 변환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모든 노년이 축적이고 성숙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가난과 질병 속의 노년은 고통이며, 사회적 고립 속의 노년은 절망이다. 거북은 가뭄에도 혼자 살아남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인간은 관계 안에서만 완전히 사는 존재다. 그렇기에 콩돈 박사의 연구가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노년이 자동으로 아름답다'는 위안이 아니다. 오히려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오래된 편견을 내려놓고, 쇠퇴를 기다리는 자세로 노년을 맞이하지 말고, 오래 산다는 것이 가져오는 고유한 가능성에 눈을 돌려 보라는 것이다.

노화는 쇠퇴가 아니라 끝나지 않은 성장이다

콩돈 박사가 처음 번호를 새겼던 거북들 중 일부는 지금도 미시간의 연못에 살아 있다고 전해진다. 반세기를 살면서 더 커지고, 더 많은 알을 낳고, 더 능숙하게 포식자를 피하며, 연구자는 세대가 바뀌었지만 거북은 그대로였다. 그들이 사는 연못에는 계절이 바뀐다. 혹독한 겨울이 오면 진흙 속에 몸을 묻고 봄을 기다린다. 그리고 봄이 오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러나 한 해의 경험을 더 안고서. 어쩌면 그것이 오래 사는 것의 비밀일지도 모른다. 겨울을 버티는 능력과 봄을 알아보는 눈. 두 개가 함께 있어야 한다. 콩돈 박사의 연구는 우리에게 말한다. 노화는 도착이 아니라 항해라고. 쇠퇴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성장의 이야기라고. 그리고 그 항해에서 가장 오래된 선원이 가장 좋은 뱃길을 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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