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연의 B스토리]"식탁 위의 세상은 너무 좁다"...후추통에서 완성차 5위로 우뚝 '푸조'

세상을 바꾼 모든 위대한 발명은 늘 '바보들의 장난감'에서 출발했다. 지금 필요하지 않다고 해서 미래에도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아르망 푸조)

푸조 로고
푸조 로고[사진=푸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브랜드를 말할 때 흔히 '벤츠(1883년)'를 떠올리지만 사실 푸조(1810년)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자동차 브랜드다. 프랑스의 작은 곡물 제분소 공장에서 출발해 철강 주조 공장을 거쳐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변신하기까지 216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1800년대 초 곡물 제분소 공장을 운영하던 보수적인 가문에서 태어난 아르망 푸조는 "자동차 같이 시끄럽고 위험한 물건을 개발하기 위해 돈을 쓰는 건 미친 짓"이라던 가문의 반대를 무릅쓰고 푸조를 설립해 3륜 증기자동차, 가솔린 엔진 4륜 차량 등 업계의 수많은 족적을 남겼다. 아르망 푸조는 자동차 사업 추진 문제로 가문과 갈라서면서 "우리의 후추통은 식탁 위에서는 1등이지만, 나에게 식탁 위의 세상은 너무 좁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후추통에서 시작해 완성차 업계를 제패한 푸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푸조 최장수 모델 504
푸조 최장수 모델 504[사진=푸조]

◆세계 1등 '후추 그라인더'에서 글로벌 완성차 5위로 

푸조는 1810년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고물 제분 공장을 철강 가공 공장으로 개조하면서 시작됐다. 뛰어난 금속 가공 및 제련 기술을 바탕으로 톱날·우산살·코르셋 프레임 등을 만들어 팔다가 1874년 정밀한 철제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한 후추통(그라인더)이 당대 유명 셰프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친다.

글로벌 1위 생활용품 제조기업으로 승승장구하던 푸조를 자동차 회사로 탈바꿈시킨 인물은 아르망 푸조다. 그는 영국 유학 시절 기계 공학을 전공하며 산업 혁명의 영향과 선진 기계의 기술을 눈으로 확인했다. 아르망 푸조는 1882년 시민들의 이동 수단이던 자전거 생산을 주도해 큰 성공을 거뒀고, 1889년에는 증기기관을 탑재한 3륜차 세르폴레를 선보이며 자동차 회사로 체질 전환을 시도했다.

푸조를 상징하는 엠블럼은 '사자(Lion)'다. 1858년 처음 공식 로고로 등재됐는데, 이는 아르망 푸조가 본격적인 차량 양산을 시작한 1898년보다 40년 이상 앞선다. 사자는 강인함·개성·정체성을 상징한다. 엠블럼의 이미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사자의 이빨·굳센 척추·도약하는 몸동작 등 3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사자의 날카로운 이빨은 푸조가 만드는 그라인더 톱날의 단단함과 내구성, 척추는 어떤 환경에서도 유연하게 구부러지는 유연함, 도약하는 자세는 빠르게 재료를 잘라내는 절삭 속도를 의미한다고 한다.

아르망 푸조는 "우리의 철강 제품이 세계 최고인 것처럼 우리가 만드는 자동차도 세계 최고의 기술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담아 사자 로고를 자동차 그릴에 그대로 옮겼다. 현재 사용하는 방패형 사자 로고 역시 창립자의 정신을 계승해 스텔란티스 그룹 내에서 푸조의 지향점인 '품질'과 '고급화'를 상징한다고 한다.

푸조의 역사를 만든 대표작은 203, 504, 206이다. 1948년 개발된 203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후 푸조의 부활을 이끌어낸 모델로, 브랜드 최초로 단일 모델 50만 대 판매를 돌파했다. 1968년 출시된 대표 세단 504는 탄탄한 내구성을 바탕으로 아프리카·남미 등 오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약 40년간 '아프리카의 왕'으로 불리며 2006년까지 총 370만대 이상 팔렸다. 1998년 출시된 206은 글로벌 누적 판매 732만대 이상을 달성한 베스트셀러다. 2000년에는 206 CC를 통해 1934년 푸조가 유행시켰던 '하드톱 컨버터블 쿠페' 시장을 다시 한번 이끌었다.

대표 모델명에서도 알 수 있듯, 푸조는 숫자를 활용한 네이밍 전략을 10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다. 첫 번째 숫자는 차체 크기를, 가운데 숫자 0은 연결성을, 세 번째 숫자는 세대를 의미한다. 2000년대 이후 스포츠유틸리티(SUV)와 크로스오버(CUV) 라인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두 차종에는 00을 도입해 4자릿수로 네이밍하고 있다. 푸조가 가운데 0이 들어가는 세자릿수 네이밍을 독점 상표권으로 등록한 탓에 포르쉐가 스포츠카(901)를 911로 변경해 출시했다는 일화는 업계에서도 유명하다.
푸조 205_40주년 기념
푸조 205 40주년 기념[사진=푸조]

◆인수 합병으로 제2의 성장 가도

푸조는 1970년대 석유 파동과 로터리 엔진 개발 실패로 심각한 재정난에 빠진 프랑스의 자동차 기업 시트로엥 인수를 계기로 '제2의 성장기'를 맞는다.

푸조와 시트로엥의 합병으로 탄생한 PSA 그룹은 보수적이고 내구성을 중시하던 푸조의 문화와 혁신적인 기술을 지향했던 시트로엥의 강력한 시너지로 상호 포트폴리오를 보완하는 효과를 낸다. 푸조와 시트로엥은 브랜드 정체성과 디자인은 독자적으로 유지하면서 엔진, 변속기, 차체 플랫폼을 공유해 생산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춘 비즈니스 모델을 정립해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미국 크라이슬러의 유럽 사업부문을 인수한 후 2021년 피아트·크라이슬러 아우토모빌스(FCA)와 1:1 합병을 거쳐 글로벌 완성차 업계 4위의 스텔란티스로 거듭난다. 현재 푸조는 스텔란티스에서 지프(Jeep), 피아트(Fiat), 램(Ram)과 함께 4대 핵심 브랜드로 활약하고 있다. 푸조의 글로벌 판매량은 연 110만 대 수준이며,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는 979대를 판매해 전년 대비 3.4% 증가했다.

푸조는 스텔란티스 그룹의 탄소중립 전략 'E-라이언(LION) 프로젝트'에 맞춰 2030년 유럽 내 100% 순수 전기차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38년께에는 차량 제조 과정뿐만 아니라 자원 재활용, 부품 순환 구조 체계화를 통해 기업 전체의 탄소중립을 달성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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