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건의 심리렌즈] '워터밤' 비비는 왜 논란을 피하지 않을까?

  • 자기제시와 통제된 일탈, 역할의 구속으로 본 파격 퍼포먼스의 심리

워터밤 서울 2026 무대에 오른 가수 비비 사진소셜미디어
'워터밤 서울 2026' 무대에 오른 가수 비비 [사진=소셜미디어]

가수 비비(김형서)가 다시 '선' 위에 섰다.

비비는 지난 25일 열린 '워터밤 서울 2026' 무대에서 점프슈트의 지퍼를 내리고 비키니를 드러냈다. 남성 댄서들에게 둘러싸인 채 여러 개의 마이크 앞에서 노래하는 장면은 성행위를 연상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과감한 표현이라는 옹호와 지나치게 노골적이라는 지적이 맞섰다.

무대만 보면 워터밤의 개방적인 분위기에 맞춘 일회성 연출처럼 보일 수 있다. 다만 비비는 이전부터 성적 상징과 비속어, 돌발적인 스킨십을 활용하며 허용되는 표현의 경계를 꾸준히 넘나들었다.

미국 공연에서는 관객에게 피임도구를 나눠주고, 여성 팬에게 입을 맞췄다. 2023년 국내 페스티벌에서도 객석으로 내려가 여성 관객에게 키스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대학 축제에서는 학교가 싫은 학생이 있는지 묻는 과정에서 비속어를 사용해 논란을 빚었다.

 
가수 비비김형서 사진MBC 라디오스타 방송 캡처
가수 비비(김형서) [사진=MBC '라디오스타' 방송 캡처]

이러한 행보를 하나의 심리 기전으로만 설명할 순 없다. 파격적인 콘셉트가 관심을 끈다는 상업적 판단이 들어갔을 수 있고, 아티스트로서 세계관을 구축해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실제 성향과 예술적 취향, 무대 전략과 대중의 반응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선택에는 인물이 자신을 세상에 제시하는 방식이 드러난다. 그 이면을 하나의 원인으로 단정할 순 없지만, 비비가 보여온 행동에서는 자기다움을 지키고 통제감을 확보하려는 심리적 가능성도 읽힌다.

행동은 달라도 전달되는 메시지는 비슷하다.

'남들이 조심하는 것을 나는 조심하지 않는다.'
 
▲ 얌전한 사람으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

사람은 옷차림과 말투, 표정과 행동을 통해 타인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를 관리한다. 이를 자기제시라고 부른다.

대부분 예의 바르고 안정적인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한다면, 비비의 자기제시는 반대 방향으로 향한다. 비비는 쉽게 통제되지 않고, 규범에 눌리지 않으며, 욕망을 감추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나는 평범한 방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람이다.'

 
워터밤 서울 2026 무대에 오른 가수 비비 사진소셜미디어
'워터밤 서울 2026' 무대에 오른 가수 비비 [사진=소셜미디어]

성적인 상징은 이 메시지를 빠르게 전달한다. 긴 설명 없이도 짧은 장면 하나로 자유분방함과 위험성, 도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논란이 생기더라도 얌전하거나 무난한 사람으로 기억되진 않는다.

비판을 피하는 것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규정되는 일을 더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파격은 일종의 방어가 될 수 있다.
 
▲ 이상한 아이에서 파격적인 비비로

비비는 과거 인터뷰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맞춰야 하는 일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자신을 바꿔야 하는 기분이 들었고, 왕따가 되지 않은 채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싶었다고 했다.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몰라서 외톨이였을 때도 있었고, '내가 안 노는 거야'라면서 사람들과 놀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난 특별하니까'라고 생각하면서요."

성인이 된 비비는 자신의 낯섦을 숨기지 않는다. 과거 다르다는 이유로 밀려났다면, 지금은 다르다는 사실을 먼저 선언한다. 남들이 나를 다르다고 규정하기 전에, 내가 먼저 어떤 방식으로 다를지를 정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비의 파격은 한때 약점이었던 낯섦을 자신이 선택한 정체성으로 되찾는 자기연출일 수 있다. 비판이 쏟아져도 행동을 결정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은 남는다. 통제감의 확인이다.
 
▲ 무모한 일탈이 아니라 계산된 위험

이번 퍼포먼스가 펼쳐진 무대는 19세 이상만 참여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워터밤은 일반적인 방송 무대보다 노출과 성적 표현이 비교적 넓게 허용되는 행사이기도 하다.

성인 공연이라는 조건은 표현의 허용 범위를 넓히는 동시에, 논란이 생겼을 때 제시할 수 있는 맥락이 된다. 장면은 강하고 화제가 되겠지만 관객은 모두 성인이었다. 누군가 수위를 문제 삼더라도 성인 대상 공연의 특성에 맞춘 퍼포먼스였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충동적인 행동이 아니라, 통제된 일탈이다. 규범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규범이 어디까지 허용되는 뒤 살핀 뒤, 가장 강한 반응과 가장 그럴 듯한 방어가 동시에 가능한 지점을 선택하는 것이다.
 
▲ 파격과 사과가 함께 나오는 이유

비비의 파격적인 행동은 여러 차례 화제가 됐다.

팬과의 키스, 피임도구를 활용한 연출, 비속어 발언은 비비에게 논란을 안겼지만 다른 가수와 구분되는 이미지를 남겼다. 칭찬과 비판은 상반된 반응처럼 보이지만, 모두 비비를 평범하지 않은 인물로 기억하게 만든다.

"역시 비비답다."
"선을 넘었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무대는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비난은 적어도 자신이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였다는 증거가 된다. 

그렇다고 비비가 선을 넘기만 하는 사람도 아니다. 2024년 대학 축제에서 비속어를 사용했다가 논란이 이어지자 "악동 같은 멘트가 잘못 나간 것 같다"며 사과했다.

 
사진비비 소셜미디어
[사진=비비 소셜미디어]

이 대처는 비비가 타인의 반응이나 사회적 경계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는 대중을 도발하지만 대중과의 관계를 끊으려 하진 않는다.

발칙한 언행을 통해 자신의 독특함을 증명하고, 사과를 통해 소속과 관계를 회복한다.

선을 넘은 뒤 다시 돌아오는 행동은 모순이 아니다. 자기다움과 소속감 사이에서 균형을 조정하는 방식일 수 있다.
 
▲ 파격 뒤에 숨은 완벽주의

비비는 2022년 SNS 라이브 방송 도중 "잠을 자고 싶고 휴식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후 좋은 콘텐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번아웃과 비슷한 상태가 왔다며 "완벽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싶었던 욕심이 너무 컸다"고 설명했다.

이 발언은 비비의 파격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한다. 겉으로는 충동적이고 거리낌 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강한 성취 압력과 완벽주의가 있을 수 있다.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확실한 장면을 남겨야 한다는 부담이다.

 
가수 비비김형서 사진MBC 라디오스타 방송 캡처
가수 비비(김형서) [사진=MBC '라디오스타' 방송 캡처]

완벽주의는 반드시 단정하고 모범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 완벽함은 누구보다 정확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평범하게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잘했다는 평가보다 "비비만 할 수 있는 무대였다"는 말을 원한다. 이를 위해서는 매번 자신의 한계를 갱신해야 한다. 어제의 파격이 오늘의 예상 가능한 장면이 되면, 더 강한 장면을 만들어야 한다.

자유롭게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성과를 내야 하는 역설이다.
 
▲ 자유가 새로운 의무가 될 때

비비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계산해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말할 순 없다. 비비의 모습에는 실제 성향과 예술적 취향, 무대 전략이 함께 반영돼 있을 테다.

다만 어떤 모습이 반복적으로 주목받고 보상받으면, 선택은 점차 역할로 굳어진다. 비비의 파격도 마찬가지다. 타인에게 규정당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연출하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논란을 만들어내고, 그 반응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방식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미지가 성공할수록 비비는 다음에도 더 비비다워야 한다. "역시 비비답다"는 말은 칭찬처럼 들리지만, 다음에도 파격적이어야 한다는 요구가 숨어 있다. 무난한 무대를 선보이면 변했다고 하고, 수위를 높이면 선을 넘었다고 한다. 

이속에서 파격을 내려놓는 순간 자신의 정체성과 경쟁력까지 잃는 것처럼 느낄 가능성도 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만든 캐릭터가 오히려 자신을 구속한다.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이 '계속 자유분방해야 한다'는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언젠가 타인의 기대 때문에 지친다면,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는 있다. 자유롭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계속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면, 그건 여전히 자유일까.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