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법은 있는데"…돈 앞에 무너지는 베트남 암 환자들

  • 신약은 생존 기간 늘렸지만 1년 치료비 수억~수십억동까지 치솟아

호찌민시 종양병원 제2캠퍼스의 넓고 현대적인 수술실 구역 사진병원 제공
호찌민시 종양병원 제2캠퍼스 수술실 [사진=병원 제공]
베트남에서 암은 더 이상 개인의 병이 아니라 가족의 생계와 국가 건강보험을 동시에 흔드는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다. 표적치료제와 면역항암제는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있지만 치료비가 수억 동에서 많게는 수십억 동까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11만명 이상의 베트남인이 암으로 사망하는 가운데 현지 독자들은 "치료비가 너무 비싸 환자들이 포기한다"는 반응과 함께 식품 안전, 조기검진, 보험 보장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5일(현지 시각) VnExpress 등 현지 보도에 따르면, 베트남의 암 치료 현장은 의학이 발전할수록 비용 부담도 함께 커지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최근 암 치료에는 기존 항암화학요법과 달리 특정 분자 기전을 겨냥하는 표적치료제와 면역항암제, 생물학적 제제가 쓰이고 있다.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하기 때문에 치료 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은 줄이며, 환자의 생존 기간도 늘려준다.

문제는 치료비다. 응우옌 티 투항 호찌민시 사회보험 부국장은 최근 암 예방 관련 회의에서, 현재 여러 치료 프로토콜의 비용이 수억동에서 수십억동에 이른다고 밝혔다. HER2 양성 유방암에 쓰이는 트라스투주맙은 1년 치료에 환자 1명당 약 8억~9억동(약 434~488만원)이 든다. 여기에는 검사비와 주사 투여비, 경과 관찰 비용이 빠져 있다.

면역항암제는 더 비싸다. 폐암, 위암, 식도암, 자궁경부암 등에 쓰이는 펨브롤리주맙은 한 병에 6000만동(약 325만원)이 넘는다. 치료 방식에 따라 한 주기에 두 병이 필요할 수 있고, 치료가 1~2년 이어지면 약값만 10억동(약 5430만원)을 넘어선다.

베트남 건강보험이 고가 항암제를 아예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베바시주맙, 트라스투주맙, 리툭시맙, 이마티닙, 세툭시맙 등 일부 표적치료제는 보험 재정에서 지급된다. 다만 성분과 적응증에 따라 보장률이 30%, 50%, 70%로 나뉘고, 나머지는 환자 몫이다. 표적치료제만 따져도 건강보험이 암 치료에 쓰는 돈은 연간 약 2조동에 달한다.

호찌민시의 부담은 이미 숫자로 드러난다. 호찌민시 사회보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시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은 약 3조3000억동(약 163억원)으로 예상되는데, 이 가운데 암 치료비가 약 5000억동(약 271억원)이다. 전체 지출의 약 17%가 암에 쓰이는 셈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건강보험은 암 진료·치료 61만9000건에 2478억동(약 134억원)을 지급했다.

대형 병원으로 흘러가는 보험 재정도 만만치 않다. 쩌라이병원이 연간 약 4500억동, 호찌민시 종양병원이 약 2000억동을 지급받고, 호찌민시 의약학대학병원도 2000억동에 가까운 금액을 받는다.

그러나 보험이 있어도 환자의 부담은 여전하다. 일부 표적치료제는 급여 목록에 올라 있어도 부분 보장에 그쳐, 환자가 매달 5000만~6000만동을 더 내야 치료를 이어갈 수 있다. 베트남의 보통 가정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는 금액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5~10년 전부터 쓰이는 신약 가운데 일부가 아직 베트남 급여 목록에 오르지 못했다. 돈이 있는 환자는 전액을 내고 약을 쓰지만, 그렇지 못한 환자는 치료 기회를 놓친다.

환자 수 증가도 보험 재정을 압박한다. 응우옌 티 투항 부국장에 따르면 호찌민시의 암 환자는 2024년 약 33만7000명에서 2025년 37만8000명으로, 연간 약 12%씩 늘고 있다. 약값 외에도 검사, 영상진단, 수술, 방사선 치료, 장기 추적관찰까지 비용이 이어지기 때문에 암 치료비는 건강보험기금의 큰 짐이 되고 있다. 현재 건강보험료율은 기본급 또는 계약급여의 4.5%가 일반적이고 최대 6%다. 지난해 호찌민시는 건강보험 진료비 예산을 1000억동 넘게 초과했다.
숫자로 본 베트남 암 위기…비싼 치료보다 더 무서운 늦은 발견

베트남 암 문제의 또 다른 축은 높은 사망률이다. 국제암연구소(IARC)의 GLOBOCAN 2024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에서는 매년 17만7404명의 암 환자가 새로 발생하고, 11만1015명이 암으로 숨진다. 5년 이내 암을 안고 살아가는 환자는 40만4153명이다. 단순 계산으로 거의 5분마다 1명이 암으로 목숨을 잃는 셈이다. 지난 16년 동안 신규 암 발생은 59%, 사망률은 약 35% 늘었다. 도 아인 뚜 K병원 부원장 겸 베트남암학회 사무국장은 지난달 31일 띠엔퐁신문 주최 세미나에서 "조기 개입이 없으면 이 숫자가 급격히 불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신규 환자 대비 사망자 비율을 진단·치료 체계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본다. 베트남은 신규 17만7404명 중 사망자가 11만1015명으로 약 63%에 이른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이 비율이 35~40% 수준이다. 격차의 가장 큰 이유는 늦은 진단이다. 많은 환자가 종양이 이미 전이된 뒤에야 병원을 찾기 때문이다.

의료 인력 부족도 발목을 잡는다. 현지 전문가들은 내과 전문의와 종양내과 의사, 방사선 치료 인력, 특히 병리 전문의가 모자란다고 지적한다. 암 등록 자료도 일부 시설에 몰려 있어 전국 단위로 연결된 시스템이 없다. 선진국은 국가 암 등록체계로 새로운 추세를 빠르게 읽고 전략을 조정하지만, 베트남은 이런 기반이 부족해 정확한 정책 방향을 잡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베트남 누리꾼들의 반응은 치료비 부담과 생활환경 문제에 모였다. 한 독자는 "베트남 공장들이 암 치료제 연구와 생산을 강화하고 있으니 압박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고, 다른 독자는 "모든 암을 막는 백신은 언제쯤 나올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반면 "많은 환자가 비용이 너무 비싸고 감당할 수 없는 데다 완치 보장도 없어 치료를 포기한다"는 반응도 있었다.

또 다른 독자는 "가족과 사회의 부담이 엄청나다"며 "환자가 회복하거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돌봐야 하고 치료비까지 감당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보건 당국이 오염 식품 관리를 강화하고, 교육 당국은 초등학교 때부터 건강관리 지식을 교과서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식품 안전이 첫 번째, 깨끗하거나 오염이 적은 생활환경이 두 번째"라며 두 과제가 여전히 종이 위에만 머물러 있다고 꼬집은 댓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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