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양산형 하이브리드차(HV) '프리우스'의 조기 출시를 주도하고 해외 생산을 확대해 도요타자동차의 세계적 도약을 이끈 오쿠다 히로시 전 사장이 지난 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이 12일 보도했다. 향년 93세.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오쿠다 전 사장은 일본 미에현 쓰시 출신으로, 히토쓰바시대 상학부를 졸업하고 1955년 도요타자동차판매에 입사했다. 경리 부문에서 오래 근무하다가 필리핀으로 파견됐다. 좌천에 가까운 인사였지만 그는 연체 자금 회수 협상 등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이를 도약의 계기로 바꿨다. 창업주 가문 출신인 도요다 쇼이치로에게 발탁된 그는 1982년 이사에 올랐다.
일본과 미국의 무역 마찰에 대응하기 위해 도요타가 미국 단독 진출을 결정하자 그는 북미사업준비실에 들어갔다. 공장 부지 선정이 그의 몫이었다. 이때 고른 켄터키주 공장은 이후 도요타의 북미 주력 생산기지로 성장했다.
당시 도요타는 국내 판매 점유율 하락과 해외 진출 지연으로 고전하고 있었다. 오쿠다 전 사장은 사내 의견 조율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쏟는 도요타가 '대기업병'에 걸렸다고 진단했다. 그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쁘다"며 변화를 독려했다. 젊은층을 겨냥한 판매망을 새로 만들고, 같은 세대를 노린 소형차 '비츠'를 내놨다. 고급차 브랜드 '렉서스'도 손봤다. 경차를 뺀 국내 점유율이 40%대를 회복하는 길이 이때 열렸다.
오쿠다 전 사장은 차세대 자동차의 핵심 가치로 '환경'을 내세웠다. 기술진이 잡아둔 프리우스 출시 일정도 1년 앞당기라고 지시했다. 1997년 세계 첫 양산형 HV가 그렇게 나왔다. HV는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과 높은 연비를 앞세워 지금도 판매가 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HV가 세계 1위 자동차업체 도요타의 강점을 떠받치는 원천이 됐다고 전했다.
오쿠다 전 사장은 '미카와 먼로주의'로 불릴 만큼 폐쇄적이던 경영 관행부터 깼다. 미카와는 도요타 본사가 있는 아이치현 동부 지역으로, 이 일대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내향적 문화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는 북미와 유럽, 아시아에 잇달아 공장을 세웠다. 환경 기술 개발과 주주 중시 경영도 강화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그가 내향적인 기업 문화를 바꾸고 도요타가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로 성장할 토대를 닦았다고 평가했다.
도요타가 세계 시장에서 판매를 급격히 늘리면서 오쿠다 전 사장은 미국 자동차업계가 가장 경계하는 인물이 됐다. 미·일 자동차 협상 때는 그를 겨냥한 도청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1999년 도요타 회장에 올라 2006년까지 재임하는 동안 그는 재계 활동에 무게를 실었다. 같은 해 일본경영자단체연맹(일경련) 회장을 맡았고, 일경련과 옛 경제단체연합회가 통합해 2002년 출범한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의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친분을 쌓을 만큼 해외 인맥이 넓다는 점도 경단련 초대 회장에 오른 배경으로 꼽힌다. '관에서 민으로'를 내건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와도 관계가 두터웠다. 정부 경제정책의 사령탑인 경제재정자문회의 민간위원을 맡아 구조개혁과 사회보장제도 개편 등 주요 정책 결정에 참여했다. 그는 회장 취임 직후부터 "일본은 한 바퀴 뒤처진 주자다. 디플레이션이 여전히 심각한 것은 구조개혁이 진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경고했다.
경단련 회장 재임 4년 동안 내놓은 정책 제언은 약 200건에 달했다. 기업들이 실적 회복을 이유로 직원부터 줄이는 경영 방식을 비판했다. 2003년 1월 공개한 장기 비전에서는 인구 감소를 내다보고 소비세율 인상과 외국인 노동력 수용을 제안하는 등 민감한 사안도 피하지 않았다. 닛케이는 그가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데 그치던 경단련 회장의 자리를 직접 목소리를 내는 자리로 바꿨다고 짚었다.
그는 2008년 일본 정부로부터 최고 권위 훈장인 욱일대수장을 받았다. 2012년에는 일본정책금융공고에서 분리·독립한 국제협력은행(JBIC) 총재에 취임해 해외 진출을 노리는 일본 기업을 지원했다. 2018년 도요타 상담역에서 물러나며 회사와의 인연을 마무리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추도식 개최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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