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사랑하는 가족 곁에서 눈을 감는 것. 이보다 평온한 임종이 있을까. 집에서는 '나'를 입증할 필요가 없다. 나로, 아들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있을 수 있다. 몸을 누일 자리와 볼을 비빌 사람, 익숙한 냄새가 있다. 그래서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은 때로는 "온전한 나로 돌아가 쉬고 싶다"는 말로 들린다.
생의 시작에도 집이 있다. 맨몸으로 세상에 나온 아이는 부드러운 배냇저고리를 입고 부모 품에 안겨 집으로 향한다. 첫 관계고, 사랑이다. 그 아이는 언젠가 집을 떠나 자신의 집을 얻는다. 그리고 다시 작은 생명을 품에 안고 집으로 향한다. 집과 집 사이로, 사람과 사람 사이로 삶이 이어지고 그 사이사이 사랑이 흐른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 '서도호'에서는 이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작가 서도호(64)의 인생이면서 우리 각각의 인생이다. 집의 형태도 삶도 제각각이지만 그 저변에 흐르는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어렴풋한 사랑을 실과 천으로 꿰어 형태로 드러낸다.
전시는 유년기부터 대학 시절의 미공개 초기작, 대표작,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다.
서도호는 지난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인생’을 말했다. “‘서도호의 집을 보면서 왜 나의 집이 생각나지, 왜 나의 인생이 생각나지’ 등 제 작품을 보고 자신의 인생을 생각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전시는 어린 서도호에서 아버지 서도호로 이어진다. 유치원 시절부터 대학 시절까지 미공개 초기작을 모아둔 '시드뱅크'에서 출발해 그가 살았던 집을 본떠 천으로 만든 집들을 지나, 가족과의 추억을 가득 담은 '사랑의 기억'에 도달한다.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걸었을 뿐인데 부모에서 나로, 다시 아이로 이어지는, 또 가정에서 학교와 사회로 넓어지는 돌고 도는 둥그런 연결을 생각하게 된다.
전시 초반부에는 비누로 만든 조각을 비롯해 캠핑 준비 그림표, 우주인 그림 등 작가의 유년기 작품이 모여있다. 전시 후반부 서도호가 10년 동안 버리지 않고 모아온 자녀들의 티셔츠와 타이즈, 신발로 만든-부성애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작품에 이르면 유년기 작품은 작가가 어린 시절 품었던 한국적 씨앗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부모가 집에 간직해왔을 어린 서도호의 시간과 아버지가 된 서도호가 자신의 집에 간직했을 자녀들의 시간이 포개진다.
전시에서는 작가의 대표작인 '천으로 만든 집'들을 볼 수 있다. 작가가 아버지와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말하는 '러빙/러빙: 서울집'은 어딘지 묵직해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받치는 주춧돌 같다면 그 이후의 집들은 민들레 홀씨처럼 후 불면 멀리 날아갈 듯하면서도 둥둥 따라오는 달같다. 만지면 사르르 녹아 손에 투명하게 묻어나는 솜사탕같기도 하다.
집은 닫힌 공간이자 열린 공간이다. '완벽한 집: 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은 작가가 현재 거주하는 런던 집 내부를 실제 크기로 재현하고, 그 표면에 과거 살았던 집들의 문손잡이, 전등 스위치 등을 천으로 제작해 붙인 작품이다. 작가의 기운과 호흡, 기억이 투명하게 엉켰다. 또 다른 누군가가 서도호가 떠난 그 집에 자신의 기운을 덧대고 있으리라.
집은 삶과 함께 변한다. "사실 천으로 집을 만든 작품 대부분은 독신일 때 만든 것이죠. 빈 방에 혼자 앉아서 방과의 대화로 나온 작품이에요. 방과 저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변화는 사람을 불러들였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가족이 생기면서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가정'이 됐어요. 저와 방 사이에 사람들이 존재하게 되면서 생기는 모든 이야기들이 집에 포함되는 거죠. 그 개념을 확대하면 학교가 되고, 사회가 되고, 나라가 되고, 또 우주가 돼요."
전시는 2027년 3월 28일까지. 에르메스, 제네시스 등이 후원. ‘아파트 A, 복도와 계단, 미국 뉴욕 웨스트 22번가 348번지, NY 10011’은 12월 18일부터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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