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대장동에 이은 서울의 오비이락

  • 정비사업 권한 자치구 이양…분권인가, 광역적 감시의 해체인가

  • 그린벨트 대신 도심 정비사업부터…서울 백년계획을 정치에서 지켜야

김두일 선임기자
김두일 선임기자
정부·여당이 500세대 이하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서울시에서 자치구로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명분은 신속한 주택 공급이다. 서울시를 거치는 절차를 줄이면 사업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듣기에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행정은 명분이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권한을 아래로 내려보내는 것이 언제나 분권이고 개혁인 것은 아니다.
 
서울은 25개 자치구로 나뉘어 있지만 하나의 도시다. 한 구역의 용적률과 건물 높이는 그 구역 주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로와 지하철, 학교와 공원, 상하수도와 일조권, 한강과 산의 경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자치구 경계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개발 기준이 달라진다면 서울의 도시계획은 누더기가 된다. 주택은 자치구가 짓더라도 도시는 서울 전체가 함께 사용하는 것이다.
 
현재 정비사업의 조합설립인가,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등 상당수 권한은 이미 자치구가 행사하고 있다. 서울시가 맡고 있는 핵심은 정비구역 지정과 통합심의 등 광역적인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공급을 지연시키는 병목이 어디인지 제대로 밝히지도 않고 그 권한부터 떼어내겠다는 것은 수술 부위를 확인하지 않은 채 칼부터 드는 것과 같다.
 
서울시가 권한을 가지면 감시도 그만큼 무거워진다. 서울시의회의 행정사무감사를 받아야 하고 국회 행정안위와 국토교통위의 국정감사 무대에도 서야 한다. 또 감사원과 정부 부처, 서울시 감사위원회, 언론과 시민사회의 감시도 뒤따른다. 모든 자치사무가 국정감사의 직접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서울시의 주택·도시계획은 해마다 전국적인 검증대에 오른다.
 
권한을 25개 자치구로 쪼개면 어떨까. 감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구의회가 있고 서울시와 감사원의 감독도 가능하다. 그러나 국회와 언론이 수백 개 소규모 정비사업의 지정 과정과 이해관계를 일일이 추적하기는 어렵다. 지방의회 다수당과 구청장이 같은 정치적 이해관계로 묶여 있다면 견제는 더욱 느슨해질 수 있다. 권한은 주민 가까이 간다지만 감시는 오히려 멀어지는 역설이 있다.
 
지방자치제의 가장 큰 모순이 여기에 있다. 주민의 뜻을 행정에 신속하게 반영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지방권력이 장기화하면 지역 유지와 사업자, 정치권이 하나의 이해공동체를 형성할 위험도 있다. 개발이익이 수천억 원, 수조 원에 이르는 사업이라면 그 위험은 더 커진다. 주민과 가까운 행정이 어느 순간 토호세력과 가까운 행정으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시가 토목·건축 등 기술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시·자치구 통합인사와 인사교류를 운용해온 이유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문인력을 균형 있게 배치한다는 목적과 함께 특정 지역, 특정 사업자와의 장기적인 유착을 막는 효과가 있다. 사람은 순환시키면서 정작 막대한 개발이익을 결정할 권한은 한곳에 집중시킨다면 제도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민은 대장동을 기억하고 있다. 대장동과 서울의 재개발·재건축은 법적 구조가 다르다. 그러므로 권한 이양이 곧 대장동의 재현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대장동이 남긴 교훈마저 외면해서도 안 된다. 개발 권한과 사업자의 이익이 불투명하게 결합하고 충분한 견제가 작동하지 않을 때 어떤 의혹과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지 우리는 이미 이곳에서 봤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여당이 서울시의 광역적 심의권을 축소하고 기초단체장의 권한을 확대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너무나 공교롭다. 의도가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국민의 눈에는 '대장동에 이은 오비이락'으로 비칠 수 있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말은 억울한 의심을 받지 않도록 처신하라는 뜻이다. 대장동의 상처가 남아 있는 정부·여당이라면 개발 권한을 나누기에 앞서 견제 장치부터 더 촘촘하게 만드는 것이 순서다.
 
그린벨트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서울의 역대 시장들은 당적과 관계없이 녹지 해제에 대체로 신중했다. 일부 해제 사례가 있었지만 그린벨트를 미래세대의 자산으로 보아야 한다는 서울시의 기본 원칙은 유지돼 왔다. 이는 어느 시장 개인의 고집이 아니라 고밀도 도시 서울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절제다.
 
주택 공급이 시급하다고 해서 한번 훼손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녹지부터 꺼내 써서는 안 된다. 이미 도로와 교통, 생활 기반시설이 갖춰진 도심의 재개발·재건축을 먼저 정상화해야 한다. 용적률과 대출, 조합원 지위 양도 등 사업을 실제로 막는 규제를 합리적으로 풀고 진행 중인 사업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 우선이다. 그린벨트는 최후의 수단이어야지 정부 정책 실패를 덮는 비상금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행 서울시 제도가 완전하다는 말은 아니다. 심의를 더 투명하게 하고 처리 기간도 줄여야 한다. 그러나 서울 전체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조정하고, 여러 층위의 감시를 받도록 한 기본 구조는 자치구별로 권한을 쪼개는 방안보다 합리적이다. 고쳐야 할 것은 느린 절차이지 광역적 견제 장치가 아니다.
 
정치가 오세훈 시장의 권한을 줄이는 데 관심을 두어서도 안 되고, 반대로 서울시가 권한을 지키는 일 자체를 목표로 삼아서도 안 된다. 판단 기준은 하나여야 한다. 어느 제도가 집을 더 빨리 공급하면서도 난개발과 특혜, 지역 유착을 더 확실하게 막을 수 있는가.
 
분권은 책임과 감시가 함께 내려갈 때만 분권이다. 책임은 흐려지고 개발 권한만 내려간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다. 서울의 백년 도시계획과 미래세대의 녹지를 놓고 정부가 굳이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맬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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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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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마디도 틀리지 않은 정확한 지적이네요. 정부 관계자들이 모두 한번씩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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