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지수가 때아닌 'T 모먼트'(공감보다 논리·사실 확인이 먼저 나오는 반응을 가리키는 밈 표현)를 해명했다.
30일 공개된 W코리아 유튜브 영상에서 지수는 2023년 미국 코첼라 공연 직후의 한 장면을 돌아봤다. 역사적인 무대를 마친 멤버들이 벅찬 감정에 눈물을 흘리는 사이 지수는 "블랙핑크야, 사진 안 찍을 거지? 나 옷 갈아입는다"고 말했다. 감동의 여운을 단숨에 현실로 끌어내린 이 장면은 이후 지수의 '대문자 T 모먼트'로 회자됐다.
지수의 설명은 달랐다. 공연이 끝났는데도 모두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고, 다음 행선지인 LA로 이동해야 했다며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T 모먼트는 아니다"라고도 선을 그었다.
본래 MBTI의 T와 F가 '얼마나 감정을 잘 느끼느냐'를 나누는 지표는 아니다. 마이어스·브릭스 재단은 T와 F를 의사결정 방식의 차이로 설명한다. T는 논리와 객관적 원칙에, F는 개인적 가치와 관계에 상대적으로 무게를 두는 선호다. 누구나 두 방식을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며 검사 점수 역시 능력의 강도를 뜻하지 않는다.
공감도 들여다보면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2011년 레나테 레니어스와 동료 연구자들은 '인지·정서적 공감 질문지'(QCAE)를 개발하면서 공감을 인지적 공감과 정서적 공감으로 구분했다. 상대의 관점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과 상대의 감정에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건 서로 연결돼 있지만 같은 능력은 아니라는 얘기다.
누군가의 슬픔에 함께 울 수 있고,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며 깊이 감정이입할 수도 있다. 그것 역시 공감의 한 모습이다. 다만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만으로 상대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상대와 함께 얼마나 크게 흔들리는지가 공감의 깊이를 뜻하지도 않는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상대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은 언제든 어긋날 수 있다.
공감에는 또 하나의 함정이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공감하지 않는다.
영국 킬대학교 마크 태런트와 동료 연구자들은 2009년 발표한 연구에서 대학생들에게 힘든 일을 겪었다는 다른 학생의 이야기를 제시했다. 이 학생이 자신과 같은 대학 소속이라고 소개됐을 때, 다른 대학 학생이라고 했을 때보다 참가자들은 더 강한 공감과 도움 의사를 나타냈다. 후속 실험에서는 공감의 대상이 집단 구분에 따라 달라질 뿐 아니라, 집단이 어떤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다른 집단 사람에게도 공감해야 한다는 규범을 제시하자 외집단을 향한 공감 역시 높아졌다.
일상에서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겠지"가 되고, 싫어하는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면 "원래 저런 사람"이 된다. 내가 이해하고 싶은 사람의 불안은 상처로 읽히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의 불안은 유난이나 핑계로 보이기도 한다.
이쯤 되면 '공감 능력이 높다'는 말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의 감정에 쉽게 빠져드는 것과, 내가 동의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까지 한 발 물러나 이해하는 건 다른 능력이다.
공감이 선택적일 순 있다. 사람이니까. 문제는 그 선택을 숨긴 채 보편적인 능력인 것처럼 포장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사람을 "공감 능력이 없다"고 매도할 때다. 공감이 관계에서 누가 정상이고 이상인지 가르는 도구가 되는 순간.
우스갯소리로 "공감을 잘한다는 F들은 왜 공감 못하는 T에게 공감을 안 해주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공감을 말하는 사람조차 자신과 다른 반응에는 쉽게 인색해질 수 있다는 역설을 찌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공감하는지 여부에 이토록 예민할까. 일상에서 말하는 공감에는 상대를 이해하는 능력과 별개의 욕구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관계심리학에서는 상대가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신경 쓰고 있다고 느끼는 것을 '지각된 파트너 반응성'으로 설명한다.
2010년 미시간대 에이미 카네벨로와 제니퍼 크로커는 대학 신입생 룸메이트 115쌍을 한 학기 동안 추적하고, 별도로 65쌍을 3주간 조사했다.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반응은 관계 안에서 서로 주고받는 방향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상호 반응성은 관계의 질 향상과도 연결됐다.
우리가 "왜 공감을 안 해줘?"라고 말할 때도 "왜 내 감정을 이해 못해?"만을 의미하는 건 아닐 수 있다. "나는 네 감정을 받아주는데 너는 왜 내 감정을 받아주지 않느냐", "내가 중요하다면 이 정도 반응은 보여줘야 하지 않느냐"는 관계적 기대가 들어갈 수 있다. 공감이 어느 순간 '나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인가'를 확인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해보다 리액션이 중요해진다. 내가 기대한 표정을 짓지 않고, 듣고 싶은 말을 해주지 않고, 원하는 타이밍에 위로하지 않으면 어느새 상대에게 'T 차압 딱지'가 붙는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공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대는 냉혈한이 되는 것이다.
다만 상대를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정작 나는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이해하려는 일을 멈추기 쉽다. 공감을 요구하면서 상대에게는 공감하지 않는 역설이다.
공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하는 사람이 오히려 가장 배타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에만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타인의 사정에는 쉽게 선을 긋는다. 그건 공감 능력이 높다기보다 이입을 잘하거나, 편을 드는 솜씨가 좋은 것일 수 있다.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긴 쉽다. 공감 능력은 오히려 나와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반응하는 사람 앞에서 시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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