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구슬은 쌓이는데…꿸 전력망이 없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등 발전설비를 아무리 늘려도 생산한 전기를 수요지까지 보낼 전력망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정부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을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송전망 건설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국내 데이터센터 총수전용량이 2023년 2.0GW에서 2040년 6.9GW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2038년 국가 전체 전력 소비량에서 4~5%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지난 6월 발표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통해 2035년까지 총 18.4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정부 계획이 현실화할수록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와 전력망 부담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발전설비뿐 아니라 생산한 전기를 적기에 공급할 전력망 확충이 시급한 이유다.

그러나 전력망 건설은 곳곳에서 차질을 빚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송전망 건설사업 54개 가운데 20개가 주민 반대와 지방자치단체 인허가 지연 등으로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 강원 신평창변전소는 준공 시점이 당초 2016년에서 2028년으로 12년 미뤄졌다.

동해안~동서울 초고압직류송전(HVDC) 사업 역시 동서울변환소 증설이 늦어지면서 준공 목표가 2019년에서 2027년으로 밀린 상황이다. 전력망이 제때 구축되지 않으면 발전소를 지어 놓고도 가동을 줄이거나 필요한 곳에 전기를 공급하지 못하는 비효율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사업 지연에 대한 책임을 지역 주민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송전선로가 왜 필요한지, 주민이 감수해야 할 피해는 무엇인지, 사업에 따른 편익은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 정부와 한전이 계획 단계부터 충분히 설명하고 협의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갈등이 불거진 뒤 보상책부터 제시하는 방식으로는 주민의 불신을 해소하기 어렵다. 주민 수용성은 사업 추진에 부수적으로 따라붙는 절차가 아니라 전력망 계획을 세울 때부터 풀어야 하는 핵심 과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송전선로가 지나는 지역 주민에게 사업 이익을 나누는 이른바 '계통소득'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주민이 전력망 사업에 투자하고 수익을 배분받도록 해 단순한 보상 대상에서 사업 참여자로 전환하겠다는 취지다. 기존 보상금과 주민지원사업만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방향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추진 방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정부는 금융 관련 법령 검토와 세부 운영 방안 설계 등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수익률과 세제 혜택, 주민 참여 방식은 물론 송전망 사업에 따른 이익을 어떤 기준으로 산정하고 나눌지도 풀어야 하는 과제다. 관련 비용이 전기요금에 반영되면 소비자에게 부담이 돌아갈 가능성도 따져야 한다. 충분한 제도 설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랫동안 쌓인 불신을 풀기 어렵다.

주민 수용성을 높일 방안으로 거론되는 지중화도 사정은 비슷하다. 정부는 송전선로 지중화 구간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된 송전망 지중화 예산은 27억원에 그쳤다. 지중화에 막대한 공사비가 드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시범사업 수준이다. 

전력망은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산업과 일상에 전달하는 에너지정책의 동맥이다. 정부가 이를 국가 핵심 인프라로 규정했다면 그에 걸맞은 예산과 실행계획, 주민과 실질적으로 이익을 공유하는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발전설비와 첨단산업 계획만 늘어놓은 채 전기가 흐를 길을 제때 놓지 못한다면 에너지 전환도, AI 강국도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슬을 더 쌓는 일이 아니라 이를 제대로 꿸 실을 마련하는 일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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