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잊기 어려운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가족, 연인, 부부 혹은 사회 속에서 받은 많은 상처를 잊기 위해 애쓰지만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살아가며 중요한 것은 상처가 사라졌느냐가 아니라 그 상처를 품은 채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영화 ‘현재를 위하여’도 각기 다른 상처에 둘러싸인 이들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에서 벗어나려는 17세 소녀 현재(황보운)는 어느 날 10년 전 사라진 딸 윤슬을 찾는 해인(채정안)을 우연히 만난다. 해인은 현재를 보며 자신의 딸이 컸다면 현재와 같은 나이일 거라며 현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현재의 몸에 멍든 모습을 보게 되고 해인은 자신의 연락처를 주며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을 남긴다.
현재에게 해인은 지금까지 만나본 적 없는 어른이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폭력을 당하는 딸을 보면서도 방관하는 엄마. 현재에게 어른은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통제하고 상처 입히는 존재에 가깝다. 그래서 현재에게는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보호자가 절실했다. 그런 현재의 앞에 딸을 잃은 해인이 찾아온 것이다.
현재는 해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해인 몰래 해인의 집에 들어가 집 안을 둘러보는 등 그의 주변을 맴돈다. 그리고 해인은 자신의 아빠를 자극해 해인에게 도움을 청하고 해인과 경찰이 들이닥쳐 현재의 아버지는 체포된다.
결국 현재는 해인의 집에서 머물게 된다. 그가 운영하는 화원에서 함께 흙과 식물을 만지며 상처들을 치유해 가는 듯 보인다. 현재는 마치 해인과의 관계가 진짜 가족인 듯 편안한 하루를 보낸다.
반면 해인에게는 현재와는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다. 10년 전 사라진 딸 윤슬을 기다리는 해인은 딸이 사라진 뒤 화원을 운영하며 일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마음 한편은 여전히 윤슬이 사라진 그 시간에 머물러 있다. 해인에게 윤슬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동안 현재는 해인에게서 자신이 원했던 엄마의 모습을 보고, 해인은 현재에게서 잃어버린 딸의 모습을 겹쳐 본다. 하지만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채우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는다.
현재는 윤슬이 될 수 없고 해인 역시 원했던 이상적인 엄마가 될 수 없음이 선명해진다. 오히려 두 사람이 가까워질수록 서로를 통해 자신이 어떤 과거를 품고 살아가는지 마주하게 된다.
현재 또한 해인에게 기대면서도 결국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해인은 현재와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지만 혹여 그 시간이 딸 윤슬을 배신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고, 현재는 다시 버려질까 두렵다.
영화에서 화원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도 크다. 해인은 딸을 잃은 뒤 식물을 돌보고 키우며 살아간다.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없더라도 매일 물을 주고, 햇빛을 살피고, 죽은 잎을 정리한다. 살아 있는 것을 돌보는 반복적인 행동은 어쩌면 딸이 사라진 뒤 멈춰 있던 해인의 시간을 조금씩 현재로 끌어오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해인은 식물을 돌보는 것만큼이나 현재를 돌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현재가 윤슬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고 딸의 부재를 더욱 선명하게 마주한다.
영화의 이야기는 결국 현재가 해인의 곁을 떠나는 것으로 이어진다. 현재는 폭력에서 도망치기만 하는 아이가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게 되고 해인은 윤슬을 잃은 슬픔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그 슬픔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마주한다.
이 부분은 영화의 핵심 주제와 맞닿는다.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자는 뜻도, 과거를 모두 잊고 새로 시작하자는 뜻도 아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지만, 그 시간이 앞으로의 모든 삶까지 결정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현재에게 그것은 폭력의 기억을 안고도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일이며 해인에게는 윤슬을 잃은 슬픔을 품은 채 다시 하루를 살아가는 일이다. 바로 ‘현재’를 보는 것이다.
어쩌면 치유란 상처가 사라지는 순간이 아니라, 상처가 남아 있어도 그 상처만 바라보며 살지는 않겠다고 마음먹는 순간에 시작되는지 모른다.
‘현재를 위하여’는 거창한 구원 대신 그런 작은 변화를 보여준다. 과거를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잠시 멈춰 있던 시간을 움직이는 것. 그리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오늘을 살아가는 것.
결국 현재와 해인이 서로에게 건넨 것은 완전한 치유가 아니라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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