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재즈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1989년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 재즈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것을 담은 영상입니다. 정말 귀한 보물을 발견했어요.”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동묘 구제시장의 한 중고 레코드 가게에서 만난 조 비커스씨는 아이처럼 환한 웃음을 보이며 자랑스럽게 '전리품'을 소개했다. 그의 손에는 1900년대 중후반 재즈 음악의 새로운 스타일을 이끌었다고 평가받고 있는 미국의 트럼펫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데이비스의 앨범이 들려 있었다. 단돈 7000원에 찾은 '보물'이었다.
영국 런던 출신으로 동국대에 교환학생으로 왔다는 그는 “여행 온 친구에게 한국의 다양한 면을 소개해주고 싶어서 구제시장을 방문했다. 길에서 파는 부추전을 처음 사 먹었는데 맛이 좋다"며 "여러모로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이 외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1504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237만명)과 비교해 21.6% 증가했다. 지난 8월 미국 여행 전문 매체 ‘트래지 트래블(Trazee Travel)’이 주관한 ‘2026 더 트래지스(The Trazees)’에서 서울은 ‘글로벌 MZ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Favorite Worldwide City)’ 1위에 선정되며 5년 연속 1위에 올랐다. 글로벌 여행 시장의 핵심 소비층인 25세부터 40세까지의 직접 투표로 이뤄진 조사다. 구매력이 높은 트렌드 리더들의 선호도가 반영된 수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국인들이 유명 관광지 중심의 여행에서 벗어나 현지인의 일상과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방식을 선호하면서 전통시장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핫플'로 각광받고 있다. 성수동 팝업스토어와 복합문화공간에서 K패션과 K뷰티를 경험한 뒤 전통시장을 찾아 길거리 음식과 동묘의 빈티지 쇼핑 등을 즐기는 식이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동선도 명동과 고궁 등 전통적인 명소를 넘어 전통시장과 문화공간, 도심 등산 명소로 넓어지고 있다. 서울AI재단 분석 결과, 2025년 주요관광지 외국인 방문객 수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전년 대비 12.1%, 아차산이 11.8%, 홍대와 낙산공원이 각각 10.5%, 광장시장이 10.4%, 관악산이 10.0% 증가했다.
관광객들이 지난 6일 서울 동대문구 스타벅스 경동1960에서 기념품을 고르고 있다. [사진=전성민 기자]
이런 트렌드 변화에 따라 전통시장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스타벅스 경동1960점은 전통시장과 민간 기업이 협력해 지역 상권을 활성화한 대표적인 공익형 상생 매장 사례로 꼽힌다.
1960년대 개관 후 오랜 기간 방치돼 있던 옛 ‘경동극장’을 리모델링해 2022년 12월 개점한 스타벅스 경동 1960점은 2030 젊은층과 외국인들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스타벅스 경동1960에는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 오래된 기존 극장 공간의 형태를 최대한 유지해 옛 극장의 멋을 살려냈다. 매장 내 공연 공간에서는 문화 예술 공연이 정기적으로 진행된다. 매장은 전체 363.5평 규모이며 경동시장 본관 3층과 4층에 약 200석의 좌석으로 구성됐다.
매장에서 만난 일본인 여성 메이씨는 “극장을 리모델링한 거대한 공간의 스타벅스가 있다고 해서 친구들과 함께 방문했다”며 “레트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흥미롭다”고 말했다.
광장시장 안에 위치한 올리브영 광장마켓점은 1960년대 복고풍으로 매장을 꾸몄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나일라씨는 화장품 영상을 보며 제품을 고르면서 “매장이 특색 있다. 전통시장 구경도 하고 화장품 쇼핑도 함께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올리브영 광장마켓점에서 화장품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전성민 기자]
몰려드는 외국인 관광객 행렬은 전통시장의 경제효과로 이어진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1~8월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의 누적 카드 소비액은 7조781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조8662억원보다 59.9% 늘었다. 특히 이 기간 전통시장의 외국인 카드소비액은 전년 대비 50.1% 증가했는데, 광장시장(127.4%)과 남대문시장(67.9%)의 소비액 증가 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도 외국인 관광객의 전통시장 결제 편의성 개선에 나서고 있다. 별도의 환전 없이 알리페이 등 40여 개 해외 결제 앱을 통해 전통시장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에서 QR 결제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최근 외국인 관광객과 2030들의 발길이 전통시장으로 옮겨가고 있지만,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전통시장 이용 고객 수를 만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조사 결과 2020년만 해도 20억6000만명에 이르던 연간 전통시장 고객 수는 2021년 20억3000만명, 2022년 19억6000만명을 유지하다가 2023년 16억6000만명으로 급격히 줄어들더니 2024년에는 15억7000만명에 그친 것으로 추산됐다.
전문가들은 전통시장을 보다 활성화하기 위한 키워드로 '스토리텔링'을 꼽는다. 정부가 추진 중인 ‘문화관광형 전통시장’ 사업 등에 외국인들이 매료될 수 있는 한국 고유의 문화적 스토리텔링을 입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정은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에 소비자들이 원하는 상품이나 행사, 체험이 많아질 수 있는 방향으로 지원을 해야 한다”며 “빈 점포 등을 활용해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장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스타벅스 경동1960 사례에서 보듯 대기업과의 상생협력이 전통시장에 '새로운 이야기'를 불어 넣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이 좀 더 전통시장과 동반성장할 수 있는 사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낸다면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경우가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글로벌 공연과 관광 등 K콘텐츠가 지역 골목상권을 활성화하고 동시에 소상공인들의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6월 12~13일 부산 일대에서 개최된 방탄소년단(BTS) 월드투어 ‘아리랑’ 공연 전후로 부산 주요 상권의 소상공인 매출 변화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6%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동 기간 전국 평균 매출 상승률(0.4%) 및 서울 지역 상승률(0.3%)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조 비커스씨가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동묘 구제시장의 한 중고 레코드 가게에서 자신이 찾은 DVD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전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