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태생의 유대계 정치철학자인 아렌트는 20세기 인류가 경험한 전체주의와 인간의 자유, 정치적 책임의 문제를 깊이 탐구한 사상가다. 그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아돌프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재판을 지켜본 뒤 인간의 악이 반드시 특별한 증오나 광기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는 통찰에 도달했다. 그가 제시한 유명한 개념이 바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다.
아렌트가 주목한 것은 아이히만에게서 드러난 사유와 판단의 결핍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을 수행하고 조직의 규칙을 따랐다는 사실을 내세웠지만, 그 명령이 인간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자신의 행위가 정당한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아렌트에게 중요한 것은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평범한 외모와 일상적인 언어를 가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타인의 입장에서 판단하기를 포기할 때 얼마나 위험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물론 인류에 대한 범죄를 다룬 아렌트의 논의를 오늘날의 금융행정과 동일한 차원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역사적 비극의 성격과 책임의 무게는 엄연히 다르다. 그러나 그의 철학이 던지는 질문, 곧 규칙을 준수했다는 사실만으로 개인과 조직의 도덕적 판단과 책임까지 면제되는가 하는 물음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절차적 정당성은 행정의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법률에 근거한 권한 행사라 하더라도 그 결과가 제도의 본래 목적을 훼손한다면 행정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질문을 지금 대한민국 금융행정에 던지고 싶다.
지난 10월 8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부동산 조각투자 스타트업 루센트블록의 예비인가 탈락 문제가 여야 의원들의 질의를 통해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루센트블록은 정부의 금융규제 샌드박스 안에서 부동산 조각투자 시장을 개척해 온 기업이다. 조각투자는 고가의 부동산이나 음원, 항공기 엔진 등 기존에는 소수의 자산가나 전문투자자에게 접근이 제한되었던 자산을 여러 투자자가 나누어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금융혁신의 한 형태다.
루센트블록은 2018년 설립 이후 관련 사업모델을 발전시켰고, 정부가 허용한 실증특례 아래에서 사업을 운영해 왔다. 회사 측이 제시하고 언론에 보도된 실적에 따르면 수년간 350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고 약 50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했으며, 누적 300억원 규모의 조각투자 상품을 발행·공모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금융사고 없이 사업을 이어왔다.
이러한 실적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새로운 금융서비스가 실제 시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지, 소비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 관련 기술과 운영체계가 현실에서 어느 정도 검증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다. 특히 규제가 엄격한 금융산업에서 스타트업이 정부의 실증제도에 참여해 수년 동안 사업을 지속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경험적 자산이다.
그런데 지난 2월 13일 금융위원회의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예비인가 결정에서 루센트블록은 탈락했다. 대신 넥스트레이드가 주도하는 NXT컨소시엄과 한국거래소가 주도하는 KDX가 예비인가를 받았다. 정부가 허용한 실험에 참여해 시장을 개척했던 기업이 정식 제도화의 문턱에서 밀려난 것이다.
여기에서 금융당국의 설명도 정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5년 9월 공개한 인가 운영방안과 심사기준에 따라 외부평가위원회가 평가했고, 높은 점수를 받은 두 사업자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실제 평가점수는 NXT컨소시엄 750점, KDX 725점, 루센트블록 653점이었다. 금융당국은 루센트블록의 자기자본 규모와 자금조달 계획, 장기 사업전략, 내부통제 및 지배구조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금융산업에서 자본 건전성과 투자자 보호, 이해상충 방지체계가 중요하다는 원칙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새로운 시장이라고 해서 금융사고의 위험을 가볍게 보거나 기존 금융회사보다 낮은 안전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규제 샌드박스 참여가 정식 인가를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금융위원회의 설명 역시 법적·제도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정부가 혁신을 실험하도록 허용했다면 그 실험에서 얻어진 성과와 경험을 정식 제도로 연결하는 과정에서도 합당하게 평가해야 하지 않는가.
자본력과 조직 규모에서 대형 금융기관에 뒤지는 스타트업이 기존 금융기관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할 때, 수년간의 실증 경험과 시장 개척의 성과는 어느 정도의 가치를 인정받는가. 사업계획과 지배구조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보완할 기회는 충분히 제공되는가. 정부가 실험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정작 실험에 참여한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것은 제도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가.
더욱 주목할 것은 인가 사업자를 두 곳으로 제한한 결정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시장 상황과 효율성 등을 고려한 정책적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두 곳이라는 숫자가 시장의 안정성과 투자자 보호에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세 곳 이상일 경우 어떠한 위험이 발생하는지,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제한함으로써 얻는 공익과 잃는 혁신의 기회는 무엇인지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금융시장에서 무제한적인 경쟁이 언제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거래량이 충분하지 않은 초기 시장에서 거래소가 지나치게 분산되면 유동성과 가격 형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의 효율성을 이유로 진입을 제한할 때에는 그 제한이 필요한 범위에 머물러야 한다. 경쟁을 제한하는 정책은 그만큼 더 높은 수준의 설명 책임을 요구한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금융혁신지원 특별법 제21조에 따른 절차를 둘러싼 논쟁도 제기됐다. 일부 의원들은 실증 성과를 고려한 인가 관련 심사절차가 충분히 활용되지 않았다고 지적했고, 금융위원장은 해당 절차가 의무사항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곧바로 위법성이 확정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법률의 문언과 제도의 취지, 적용 요건을 따져 판단해야 할 문제다. 다만 법적으로 의무가 아니라는 설명과 정책적으로 바람직한 선택이었다는 설명은 서로 다른 차원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정감사에서 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가 요구한 것도 기존 결정을 무조건 뒤집거나 자신에게 자동으로 인가를 부여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정식 절차에 따라 다시 심사받고 시장에서 경쟁할 기회를 달라는 취지였다. 이억원 위원장 역시 절차의 공정성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시장 형성 상황을 보아 추가 인가 가능성을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뒤늦게나마 재도전의 여지를 열어두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막연한 가능성이 아니라 구체적인 제도다. 추가 인가를 검토할 시점과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하고, 기존 실증사업자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공개해야 한다. 부족한 자기자본이나 지배구조를 보완할 수 있는 경로도 제시해야 한다. 혁신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어서는 안 되지만, 혁신을 검증한 기업이 합리적인 재도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상황도 피해야 한다.
규제 샌드박스는 혁신기업을 정부의 실험실에 가두어두기 위해 만든 제도가 아니다. 실험에서 확인한 가능성을 시장의 제도와 연결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그 연결이 끊어진다면 다음 창업자는 정부를 믿고 위험을 감수하겠는가. 창업자는 정부의 약속을 믿고 투자자를 설득하며 직원들을 채용한다. 제도의 예측 가능성은 기업의 재무제표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기업가정신을 움직이는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다.
이 문제를 더욱 넓게 바라보면 금융혁신에 대한 국가의 철학과 연결된다. 세계 각국이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토큰증권, 디지털 자산을 중심으로 새로운 금융질서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이 기존 대기업보다 먼저 시장을 발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형 금융기관의 자본과 신뢰성은 중요하지만 스타트업의 실험정신과 시장 개척 능력 역시 국가 경쟁력의 핵심 자산이다.
혁신은 작은 기업에서 시작되고 제도화는 큰 기업의 몫이라는 공식이 굳어진다면, 대한민국 금융시장은 혁신의 열매를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혁신의 씨앗을 잃어버릴 수 있다.
상장폐지 정책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제기된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2월 12일 부실기업의 신속하고 엄정한 퇴출을 위한 상장폐지 개혁방안을 발표했고, 5월 13일 관련 한국거래소 상장규정 개정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코스닥시장의 시가총액 관련 상장폐지 기준은 올해 7월 1일부터 200억원으로 높아졌고, 내년 1월 1일부터는 300억원으로 상향될 예정이다. 코스피 역시 올해 7월부터 300억원, 내년 1월부터 500억원으로 기준이 강화된다.
정부는 시가총액 기준뿐 아니라 주가 1000원 미만의 이른바 동전주에 대한 상장폐지 요건을 신설하고, 완전자본잠식과 공시 위반에 대한 규제도 강화했다. 부실기업을 신속하게 정리해 자본시장의 신뢰를 높이고 투자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이러한 정책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회계 부정을 반복하거나 투자자에게 허위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 정상적인 영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기업을 시장에 무기한 남겨두는 것은 오히려 성실한 기업과 투자자에게 피해를 준다. 상장이라는 지위를 유지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에는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부실기업의 퇴출과 작은 기업의 퇴출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기업의 시가총액은 시장이 그 기업에 부여하는 평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하지만 기업의 기술력과 미래 성장성, 보유 특허, 현금흐름, 사업구조 개선 가능성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특히 기술개발에 장기간의 투자가 필요한 바이오와 첨단소재, 인공지능 관련 기업은 일시적인 실적 부진이나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기업가치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시가총액이 낮다는 사실만으로 그 기업이 사회적으로 불필요하거나 회복 불가능한 부실기업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대로 기술력이 있다는 주장만으로 상장기업의 의무를 면제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기업의 실질적 건전성과 회생 가능성을 구분하는 정교한 판단이다.
더욱이 이번 정책은 당초 연 단위로 예정되었던 시가총액 기준 상향 일정을 반기 단위로 앞당겼다. 기업들은 기존 일정에 맞추어 자본확충과 사업구조 개편, 투자유치 계획을 수립했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규제의 시행 시기를 앞당긴다면 그 필요성과 예상되는 부작용, 기업이 대응할 수 있는 기간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최근 법원이 제동을 건 것도 바로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10월 2일 서울남부지방법원 제51민사부는 코스피 상장사 주연테크와 코스닥 상장사 케이엠제약이 각각 한국거래소를 상대로 제기한 상장폐지결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보도된 결정 취지에 따르면 재판부는 강화된 시가총액 기준의 적용과 회복 요건, 시행 시기의 조기화가 기업의 예측 가능성과 비례의 원칙을 훼손하는지를 문제 삼았다.
이 가처분 결정이 상장폐지 제도 전체를 위법하다고 선언한 것은 아니다. 개별 사건에 대한 잠정적인 사법적 판단이며, 향후 본안 판단이나 제도적 보완의 가능성도 남아 있다. 그러나 법원이 정책 집행의 방식에 제동을 걸었다는 사실은 금융당국이 가볍게 받아들일 일이 아니다.
국가가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과 그 규제를 어떤 속도와 방식으로 시행해야 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정책의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그 수단이 과도하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법치주의는 법률의 존재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법률이 국민과 기업의 권리를 제한할 때 필요한 범위와 균형을 지키도록 요구한다.
특히 상장폐지 과정에서 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은 단순히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자격을 잃는 데 그치지 않는다. 관리종목 지정이나 상장폐지 위험이 알려지는 순간 금융기관의 신용평가가 달라질 수 있고, 거래처는 계약을 재검토하며, 투자자는 자금 회수를 서두를 수 있다. 새로운 투자유치는 더욱 어려워지고 우수한 인재의 이탈 가능성도 커진다.
기업이 회생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에 상장폐지 위험 자체가 회생 가능성을 낮추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번 시장에서 부실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그 명예를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따라서 상장폐지 정책은 엄격함과 정교함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회계 부정이나 고의적인 공시 위반처럼 시장의 신뢰를 직접적으로 훼손하는 행위에는 단호해야 한다. 그러나 시가총액이 일시적으로 낮아진 기업에 대해서는 재무건전성과 영업 지속성, 기술력, 회생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투자자 보호 역시 상장폐지라는 결과만으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부실을 방치하는 것도 투자자에게 피해를 주지만, 충분한 회복 기회와 예측 가능한 절차 없이 퇴출을 서두르는 것 또한 기존 주주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길 수 있다. 진정한 투자자 보호는 부실기업을 엄정하게 정리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선의 세종대왕을 떠올릴 수 있다.
세종의 통치철학을 설명할 때 흔히 인용되는 말이 '시인발정(施仁發政)'이다. 인(仁)을 베풀어 정치를 행한다는 뜻으로, 유교의 왕도정치와 애민사상을 함축하는 표현이다. 이를 세종의 특정 발언으로 단정하기보다는 그의 정치가 지향했던 정신을 설명하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세종이 위대한 군주로 평가받는 이유는 단순히 뛰어난 제도를 많이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제도를 만들기 전에 백성의 삶을 살피고, 제도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하려 했다. 통치의 목적을 왕권의 과시가 아니라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나라의 기틀을 튼튼히 하는 데 두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법(貢法)을 둘러싼 논의다. 세종은 토지에 부과하는 세금의 기준을 개혁하면서 조정 대신들의 의견만 듣는 데 그치지 않았다. 1430년에는 공법 시행에 관한 광범위한 의견조사를 실시했고, 이후에도 찬반 논쟁과 지역별 시범 시행, 제도 보완을 거쳐 개혁을 추진했다. 조세제도의 원칙과 백성의 현실이 충돌할 때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한 것이다.
세종의 공법 개혁이 모든 백성에게 완벽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뜻은 아니다. 당시에도 이해관계의 충돌과 제도의 한계는 존재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국가가 세금을 거두는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그 부담을 지는 백성의 형편을 살피고 제도의 시행에 신중을 기했다는 점이다.
세종의 애민정치는 백성에게 무조건적인 혜택을 베푸는 시혜적 통치가 아니었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민본의 인식을 바탕으로 국가의 제도와 백성의 삶을 연결하려는 정치였다. 훈민정음의 창제 역시 문자생활에서 소외된 백성이 자신의 뜻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려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오늘날 민주공화국의 행정은 왕조시대의 통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민은 군주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주권자이며, 행정권은 법률과 민주적 통제 아래 행사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의 권한이 국민의 삶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원칙은 시대를 넘어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아렌트가 인간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책임을 물었다면, 세종의 정치에서 우리는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 그 권한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삶을 살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두 사상은 서로 다른 시대와 문명에서 출발했지만 오늘날 행정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아렌트는 묻는다.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했는가.
세종의 애민정신은 묻는다. 당신의 결정은 백성의 삶을 얼마나 헤아렸는가.
현대 민주주의는 여기에 또 하나의 질문을 보탠다. 당신은 그 결정에 대해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을 대한민국 금융행정의 원칙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루센트블록 문제에서 금융당국은 절차의 적법성만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혁신금융 제도의 본래 목적이 실현되었는지 살펴야 한다. 실증사업자가 정식 제도화 과정에서 경쟁할 기회를 충분히 얻었는지, 대형 금융기관과 스타트업의 특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합리적이었는지, 추가 인가를 통해 시장의 경쟁과 혁신을 촉진할 여지가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상장폐지 정책에서는 자본시장 정화라는 목표와 기업의 예측 가능성, 투자자의 재산권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할 기업은 신속하게 정리하되 회복 가능한 기업이 일시적인 시장평가 때문에 생존의 기회를 잃지 않도록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금융행정에는 적어도 세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는 사유하는 행정이다. 법률과 규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규정이 왜 만들어졌으며 어떤 공익을 실현하려는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절차를 준수했다는 설명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정책의 타당성이 모두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둘째는 경청하는 행정이다. 정책의 영향을 받는 기업과 투자자, 근로자,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제도의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살펴야 한다. 경청은 정책을 포기하거나 특정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다. 더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다.
셋째는 책임지는 행정이다. 정책의 결과가 당초 목적과 다르게 나타났다면 그 원인을 분석하고 필요한 부분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정책을 고치는 것은 행정의 권위가 무너지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오류를 인정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능력이야말로 성숙한 국가의 권위를 만들어낸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인공지능과 반도체, 바이오, 로봇, 디지털 금융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하는 중요한 전환기에 서 있다. 이러한 산업에서 국가의 경쟁력은 정부가 모든 정답을 알고 있다는 믿음에서 나오지 않는다. 민간의 창의성과 기업가정신이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도록 제도적 신뢰를 제공하는 데서 나온다.
정부는 시장의 심판이어야 하지만 동시에 공정한 경기장의 설계자여야 한다. 특정 기업의 승리를 보장할 수는 없지만 누구에게나 합리적인 경쟁의 기회를 제공할 책임은 있다. 투자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그 보호라는 이름으로 혁신의 가능성을 불필요하게 위축시켜서도 안 된다.
금융행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규정에 따라 결정했으므로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다. 그러한 태도는 행정을 효율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지만 때로는 정책의 목적과 현실의 결과 사이에 깊은 간극을 만들어낸다.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오늘날 금융관료들에게 도덕적 낙인을 찍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누구든 조직과 규칙 속에서 자신의 판단을 멈출 수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이고 싶다. 공직자의 전문성과 성실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더욱 그들에게 독립적인 판단과 책임 있는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국가의 권한은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고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권한을 행사했다는 사실 자체가 정책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권한을 통해 무엇을 지켰으며 무엇을 훼손했는가 하는 질문이다.
금융위원회가 루센트블록 문제에서 재도전의 경로를 구체화하고, 상장폐지 정책에서 법원이 제기한 비례성과 예측 가능성의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정책 수정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금융행정이 절차 중심의 관료주의를 넘어 혁신과 책임, 공정과 신뢰를 함께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제도를 만들지만 제도는 다시 인간의 삶을 바꾼다. 좋은 제도는 인간의 가능성을 넓히고 나쁜 제도는 그 가능성을 가로막는다. 따라서 제도를 설계하는 사람은 언제나 제도의 끝에 있는 인간을 보아야 한다.
기업은 숫자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자와 미래를 꿈꾸는 창업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임직원,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한 주주들이 있다. 금융행정이 이들의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삶과 미래가 정책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인간을 존중하는 행정이며, 혁신의 문화를 키우는 행정이고, 경제와 사회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행정이다.
절차가 공정했다는 말에서 행정이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절차의 공정성을 넘어 결과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제도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현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잘못된 설계가 발견되면 고칠 수 있는 용기를 갖추어야 한다.
한나 아렌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생각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경고이고, 세종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백성의 삶을 살피는 정치의 중요성이다. 여기에 현대 민주공화국이 요구하는 법치와 책임의 원칙이 더해질 때 비로소 국가의 권한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정부가 허가한 기업의 숫자나 시장에서 퇴출한 기업의 숫자로 결정되지 않는다. 정부를 믿고 도전하는 기업가들의 용기,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제도,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을 수 있는 국가의 성숙함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한다.
국가가 혁신을 장려한다면 혁신기업이 성장할 길도 열어주어야 한다. 국가가 시장을 정화한다면 회복할 수 있는 기업을 살리는 지혜도 갖추어야 한다.
아렌트의 사유와 세종의 애민정치가 만나는 지점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금융행정의 철학이 있다.
법은 차가워도 행정은 생각해야 한다. 원칙은 엄격해도 정책은 인간을 향해야 한다.
그리고 정의로운 국가는 규정을 잘 지키는 국가를 넘어, 그 규정이 인간의 자유와 존엄,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올바르게 작동하는지 끊임없이 묻는 국가여야 한다.
그것이 진리와 정의, 자유를 존중하는 대한민국 금융행정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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