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건의 심리렌즈] '나는 솔로' 34기 순자, 기꺼이 감당하는 사람

  • 교류분석으로 살펴본 양육적 부모 자아와 돌봄·통제의 경계

ENA·SBS Plus 나는 SOLO나는 솔로 34기 순자 사진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
'나는 솔로' 34기 순자 [사진=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

"제가 직접 보고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지난 7일 방송된 ENA·SBS Plus '나는 SOLO'(나는 솔로)에서 34기 순자는 장을 보러 가겠다고 자처했다. 콩나물국을 끓이겠다며 재료를 메모하고, 장을 보면서 목록을 하나씩 확인했다. 빠뜨린 물건 없이 장보기를 마친 뒤에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역시 적어놔야 한다니까?"

순자에겐 할 일이 많아 보인다. 다른 출연자의 옷에 붙은 벌레를 떼어주고, 손을 다친 출연자 대신 이름표를 접어주고, 모두를 위해 식사를 준비한다.

 
ENA·SBS Plus 나는 SOLO나는 솔로 34기 영숙 정숙 순자 사진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
'나는 솔로' 34기 영숙, 정숙, 순자 [사진=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

이런 모습은 이성에게도 매력으로 비쳤다. 영수, 영식, 광수 등 세 남자는 순자를 첫인상 1위로 선택했다. 공교롭게도 세 출연자 모두 다둥이 집안의 막냇동생이었다. 영식은 "배려하는 모습과 부드러운 인상이 좋았다"고, 광수는 "주변 사람을 챙기는 모습에 큰누나 이미지를 느꼈다"고 밝혔다.

정작 순자는 자신이 차분하고 단아해 보였다는 평가에 "'너무 내숭 떨었나?', '나이가 들어서 인상이 변했나?' 생각이 들었다"며 당혹감을 내비쳤다. 평소의 자신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순자는 세심하고 다정하지만 주도적이다. 부드럽게 웃다가도 필요한 순간에는 사람들을 이끈다.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움직이고, 남에게 맡기기보다 직접 처리한다.

그런데 순자는 왜 그렇게 모든 일에 자신의 일처럼 발 벗고 나서는 걸까.
 
▲ "첫째로 낳아달라고 한 적 없잖아."

순자는 충남 청양 출신의 'K-장녀'다. 2남 2녀 중 첫째로 태어난 그는 둘째, 셋째 동생과는 약 7년간 함께 살았을 만큼 가까운 사이다. 단, 첫째라는 자리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다.

 
나는 솔로 34기 순자 사진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
'나는 솔로' 34기 순자 [사진=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

"엄마·아빠의 애정이나 보낼 수 있는 시간도 다 나눠야 하고, 동생이 태어나면 반으로 나눠 갖는 게 아니라 내가 1/3, 동생이 2/3, 동생이 한 명 더 태어나면 내가 1/5, 동생들이 2/5·2/5 이런 식으로 제 파이가 점점 더 작아졌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ENA·SBS Plus 나는 SOLO나는 솔로 34기 순자 사진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
'나는 솔로' 34기 순자 [사진=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

어머니에게 "첫째로 낳아달라고 한 적 없잖아"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네가 첫째니까 동생에게 잘해줘"라는 말에 튀어나왔을 법한 울분이다.

자연스럽게 책임이 주어졌다. 부모의 관심이 줄어드는 것이 서운했지만, 그러면서도 동생들을 돌보는 역할을 수행했다. 9살 차이 막냇동생의 기저귀를 갈고, 유치원에 데려다줬다.

순자의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를 돌보는 경험과 자신도 돌봄받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했다.
 
▲ 잘하는 일과 마음 편한 일

성인이 된 순자에게도 돌봄은 낯선 일이 아닌 듯하다. 먼저 주변을 살피고, 해야 할 일을 찾아 움직인다.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의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은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적 욕구를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으로 설명한다.

장보기 장면에서 순자가 보여준 모습은 자율성과 유능감의 개념으로 살펴볼 만하다. 무엇을 살지 결정하고, 목록을 작성하고, 계획한 일을 끝낸 뒤 만족감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역시 적어놔야 한다니까?"라는 말에도 자신의 방법이 효과적이었다는 기쁨이 담겨 있다.

다만 "제가 직접 보고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서"라는 말은 일을 직접 처리하는 게 좋다는 선호를 넘어, 직접 하지 않을 때 불편함을 느낀다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꼼꼼한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말이고, 실수를 방지하려는 습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는 게 반복적으로 불편하다면 그 이유를 살펴볼 필요는 있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과 의지할 줄 모르는 것은 다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인지, 내가 맡아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인지, 타인의 방식이나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서인지에 따라 심리적 의미는 달라진다.
 
▲ 돌봄과 통제의 경계

순자는 출연자들을 챙기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적극적으로 행동을 지시한다. 음식을 준비해주면서 "꼬맹이들 앉아서 이거 먹어요"라고 말하고, 젓가락을 가져와 자리에 앉으라고 안내한다. 꼭 자식들을 대하는 것 같다.

 
ENA·SBS Plus 나는 SOLO나는 솔로 34기 순자 사진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
'나는 솔로' 34기 순자 [사진=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

보살피는 사람과 이끄는 사람. 서로 다른 듯한 두 모습에는 공통점이 있다. 상대의 필요를 살피고,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해 행동한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을 이해하는 데 에릭 번의 교류분석(Transaction Analysis)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교류분석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부모·어른·어린이의 세 가지 자아상태로 설명한다. 여기서 부모 자아는 실제 부모를 뜻하는 게 아니라 부모나 중요한 양육자에게서 배우고 내면화한 태도와 행동 방식을 가리킨다.

기능에 따라 부모 자아는 상대를 보살피고 지지하는 '양육적 부모 자아'와 규칙을 강조하고 행동을 바로잡으려는 '비판적 부모 자아' 등으로 구분된다.

교류분석에서는 서로 어떤 자아 상태에서 소통하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한 사람이 부모처럼 돌보고 상대가 아이처럼 보살핌을 받는 관계가 편안할 수도 있지만, 어느 한쪽이 대등한 관계를 원한다면 같은 행동이 간섭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상대의 보살핌을 불편해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ENA·SBS Plus 나는 SOLO나는 솔로 34기 순자 사진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
'나는 솔로' 34기 순자 [사진=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
나는 솔로 34기 순자 사진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
'나는 솔로' 34기 순자 [사진=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

이때 돌봄과 통제의 경계가 드러난다.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고 해서 상대의 선택까지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챙긴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을 통제한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건 상대가 다른 선택을 했을 때다. 내 방식대로 하지 않아도 괜찮은지, 도움을 거절해도 존중할 수 있는지에 따라 돌봄의 성격이 달라진다. 잘 챙겨주는 사람과 모든 일을 자신의 방식대로 처리하려는 사람은 겉으로는 비슷해보일 수 있다.
 
▲ 원망했던 자리를 사랑하게 된 사람

순자는 이제 첫째인 것이 좋다고 말한다. 동생들을 '엄마가 낳아준 친구', '합법적인 나의 조무래기'라고 표현한다. 집안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함께 짐을 질 수 있는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자신의 몫을 줄어들게 만든 존재들이 이젠 삶의 무게를 나눌 존재가 된 것이다.

 
나는 솔로 34기 순자 사진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
'나는 솔로' 34기 순자 [사진=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

처음에는 선택할 수 없었던 역할이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가치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해야만 했던 일이 잘하는 일로, 하고 싶은 일로 바뀌기도 한다. 순자가 보여주는 책임감에는 그런 자발성이 엿보인다. 순자는 기꺼이 감당한다.

다만 책임을 자신의 가치로 받아들였다고 해서 그 책임의 무게까지 사라지진 않는다.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일이 주어지고, 잘 챙기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기대가 쌓인다. 처음에는 호의로 시작한 행동이 어느 순간 당연한 역할이 되기도 한다. 웃으며 책임을 감당하면 사람들은 그 무게까지 가벼운 줄 안다.

이때 중요한 건 자신이 여전히 그 일을 원하고 있는지다. 순자는 연애에서도 누군가를 보살피는 사람이고 싶을까. 아니면 자신을 기꺼이 보살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까.

순자에게 필요한 건 어느 한쪽의 역할이 아니라, 서로의 무게를 나눠 지는 관계일 테다. 한때 자신의 몫을 빼앗았다고 여긴 동생들이 이제는 함께 짐을 질 동반자가 된 것처럼.

 
나는 솔로 34기 순자 사진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
'나는 솔로' 34기 순자 [사진=유튜브 '촌장엔터테인먼트'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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