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 (79) 믿음이 없으면 바로 설 수 없다 - 무신불립(無信不立)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고공 행진하던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추이가 예사롭지 않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작년 6월, 취임 후 첫 조사에서 64%를 기록한 뒤 올봄까지 줄곧 견고함을 보여주었다. 실용 노선에 입각한 중도 확장 전략이 주효했고, '삼전닉스 효과'로 인한 전례 없는 증시 활황도 힘을 보탰다. 존재감 없는 야당 복도 빼놓을 수 없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매몰되어 민심과 따로 노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일러 오죽하면 '민주당의 전략자산'이라고 조롱할까.

6·3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순항하던 지지율에 적신호가 켜졌다. 한국갤럽 기준, 9월로 들어서자마자 30%대로 주저앉고는 좀처럼 반등을 하지 못한 채 지난 주엔 최저 지지율을 경신했다.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하면 대통령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는 게 정치권 통설이다. 여권 내부에서 대통령 인사에 반기를 들고 정책에 토를 다는 사례가 잦은 걸 보니 레임덕이 이미 시작됐나 싶기도 하다.

지지율 급락의 원인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여론의 압도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밀어붙인 형사소송법 개정이 지지율 하락 반전의 기폭제가 되었다. 보완수사권 존폐 논란을 불안하게 지켜보던 국민의 마음이 장윤기 사건을 축소하고 제주 실종 사건을 암장한 경찰의 행태를 계기로 싸늘하게 식었다. 보완수사권이 폐지되면 서민들에게 지옥문이 열리니 거부권을 행사해 달라는 간절함을 대통령은 끝내 외면했다. 법 개정을 주도하고 어깨를 으쓱대던 김용민 의원에게 "지옥에나 가세요"라고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가 날린 독설이 돌아선 민심을 대변한다. 

세상사 '화불단행'이라고 했던가. 때맞춰 주가가 폭락하고 집값이 급등했다. 만피를 향해 치달리던 코스피지수는 반토막났다. 주식시장을 투기판으로 만든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졸속 도입은 집 팔아 주식 사라는 정부의 말을 믿고 주식에 올인한 2030을 한순간에 '주식 거지'로 만들었다. 부동산 정책은 어떠했나. 세금으로 집값 잡지 않겠다는 건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의 처절한 실패를 답습하기로 작정한 듯 규제와 세금으로 집값을 잡으려 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토허제 시행 1년 만에 서울아파트 매매가격은 역대 최장 상승 기록을 갈아치우며 전월셋값마저 크게 밀어올렸다. 전세의 급격한 월세화와 매매·전세·월세가 함께 오르는 트리플 강세장 속에서 청년층의 주거 사다리는 붕괴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실거주 요건 강화는 무차별적으로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깨뜨렸다. 대출 끼고 어렵게 집 한 채 장만했다고 투기꾼 보듯 하는 징벌적 세제개편의 후폭풍으로 급기야 핵심 지지층인 4050도 이탈하기 시작했다. 민심을 거스른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하락 반전한 지지율 추이에 가속 페달을 밟은 게 계곡 정비보다 쉽다며 호언장담하던 부동산 정책 실패와 ETF 참사다. 정점식 국힘 원내대표 말마따나 국민은 부동산에 울고 주식에 속았다.

설상가상, 위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단행한 개각 인사가 여론을 더 악화시켰다. 대통령 공소취소를 외친 김승원 의원을 법무장관 후보로 낙점함으로써 공소취소용 아니냐는 의혹을 키웠고, 비례대표 의원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과욕을 부린 용혜원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 지명은 20대와 여성층의 대거 이탈을 초래한 실착이었다. 결국 김승원 후보는 '오빠의 눈물'이라는 유행어를 남기고, "No work, Yes money"로 상징되는 용혜원 후보는 '조국 뺨치는 내로남불', '세금 도둑'이라는 오명을 얻은 채 낙마했다. 상처뿐인 인사 실패였다. 

이 대통령의 부정 평가 이유에는 '도덕성 문제와 본인 재판 회피'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대통령은 평생 비주류로 거칠게 살아왔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안면몰수' 화법이라고 명명했을 만큼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면 낯빛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말을 바꾸고 때로는 거짓말도 하면서 숱한 위기를 돌파했다. 능력은 있으나 도덕성이 문제라는 평가가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나름의 이유야 있었겠지만 몇 건의 전과를 기록했고,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등 대통령 당선으로 1심 재판이 중단된 사건도 6건이나 된다. 대통령의 공소취소 집착과 연임 개헌에 대한 미련이 퇴임 후 속개될 재판들을 회피하기 위함이라는 건 온국민이 다 아는 일반상식이 되었다. 개혁이란 미명 하에 사법체계를 흔들고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무리수를 불사하는 이유도 결국은 그 문제로 귀착된다. 국민들은 이제 대통령이 무얼 하든 공소취소부터 떠올린다. 대통령이 연루된 각종 사건의 변호인들에 대한 보은 공천, 보은 인사를 남발하다보니 사법리스크 해소가 국정과제 1호냐는 비아냥이 쏟아진다. 이 대통령 개인의 사법리스크가 국가 리스크로 커질 거라던 이낙연 전 총리의 경고가 새삼 회자되는 이유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세를 한껏 낮추며 '부족'이라는 단어를 13차례 반복한 지난달 18일 기자회견의 성과는 있었을까? 이 대통령은 연임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진심일까?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더니 진짜 그런 줄 알더라"라고 한 대통령의 말 바꾸기 흑역사를 국민들은 기억한다. 과거의 언행은 족쇄처럼 따라다니며 나중에 딴말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주지 못한다. 대통령의 모호한 언사와 결부되어 불신을 증폭시킨다. 이 대통령은 공소취소에 대한 핵심적 답변을 회피한 채 김승원 법무장관 후보 낙마에 대비한 플랜 B를 준비라도 한 듯 친정권 성향이 강한 이정현 수원고검장에게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맡겼다. 기대에 화답하듯 이 대행도 출근 제1성으로 공소취소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백성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자공이 "부득이하게 꼭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셋 가운데 무엇이 먼저입니까?" 라고 묻자 공자가 말했다. "군대를 버려야지." 자공이 "부득이하게 또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둘 가운데 무엇이 먼저입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말했다. "식량을 버려야지. 자고로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백성의 신뢰가 없다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널리 알려진 성어 '무신불립(無信不立)'이 이 대화에서 나왔다. 《논어》 '안연편'의 한 대목이다. '신뢰'는 공자 정치철학의 요체다. 정치란 경제력·군사력을 튼튼히 하고 민심을 얻는 일이나 민신(民信), 즉 국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니 이를 끝까지 지키라는 얘기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폭락한 이유는 한마디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에 빨간 불이 켜지고 안보 공조에 이상기류가 흐르는 것도 결국 신뢰의 문제다. 미국은 최근 "민감한 정보 공유는 상호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며 정보·방첩 분야에서의 불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친북 친중 색채가 강한 이재명 정권을 믿을 수 없다는 시그널이다. 이 대통령은 실용적 국익 외교를 강조하면서 '굴종적·사대적'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작금의 한·미 관계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겠지만, 조선의 사대(事大)를 국가 생존을 위한 '지능 외교'가 아니라 굴종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은 단견이다. 북한의 심기를 살피듯 도발을 도발이라 부르지 못하는 분이 할 말은 아니다. 민심은 예민하다. 국정 운영 부정평가의 이유로 국방·안보·대북 문제가 '부동산 정책'의 뒤를 이어 2위로 급부상했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취임사부터 빈말이었다. 폭풍 SNS를 아무리 '좌아하게' 한들 지지층만을 위한 '선택적 소통'에 불과할 뿐이다. 국민이 바라는 건 다변의 만기친람 대통령이 아니다. 해야 할 말만 절제 있게 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대통령이다. 말이 많으면 실수하기 마련이고 불신은 언행 불일치에서 싹튼다. 대통령이 무얼 하든 공소취소가 먼저 연상되는 건 낯뜨거운 일이다. 그래서야 무슨 신뢰가 생기겠는가. "재판 받겠다", 간결한 이 한마디가 신뢰 회복의 첫걸음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믿음이 없으면 정권도, 나라도 바로 서지 못한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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