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 달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연방의회를 장악할 경우 모든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예고했다. 의회 다수당 지위를 내주더라도 대통령의 거부권을 활용해 민주당과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26일 미국 언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의회 통제권을 되찾을 경우 어떻게 대응하겠느냐는 질문에 거부권을 적극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이 승리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교착 상태가 발생한다면 모든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거부하고, 거부하고, 또 거부하는 것"이라며 "그러면 민주당이 찾아와 어떻게 해야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느냐고 물을 것이고, 우리는 협상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날 플로리다 지역방송 WINK-TV와의 인터뷰에서도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모든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민주당 주도로 의회를 통과한 법안이라도 거부권을 행사해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의미다.
오는 11월 3일 치러지는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연방 하원 전체 의석과 상원 일부 의석의 주인이 결정된다. 현재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지만 민주당의 하원 탈환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선거 이후 백악관과 의회 간 권력 구도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 지위를 확보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법안 처리를 막을 수 있는 거부권이 남아 있다. 미국 헌법에 따르면 상·하원을 통과한 법안은 법률로 확정되기 전 대통령에게 제출된다. 대통령이 법안에 반대하면 거부 이유를 첨부해 의회로 돌려보낼 수 있다. 대통령이 법안을 받은 뒤 일요일을 제외한 10일 이내에 서명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자동 발효된다.
의회가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효화하려면 상·하원에서 각각 표결 참여 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전체 의원이 표결에 참여할 경우 하원에서는 435명 중 290명, 상원에서는 100명 중 67명의 찬성표가 필요하다.
민주당이 양원 다수당 지위를 확보하더라도 거부권을 무효화할 만큼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하기는 쉽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적극 활용하면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입법이 가로막히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들어 이미 거부권을 행사한 전례가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의회에서 초당적 지지로 통과한 '아칸소 밸리 송수관 완공법안'과 '미커수키 보호구역 수정법안'에 각각 거부권을 행사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재정 부담과 정책적 문제 등을 거부 이유로 제시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정치적 반대 세력을 겨냥한 보복성 조치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두 법안은 올해 1월 하원 재의결 표결에서도 필요한 찬성표를 확보하지 못해 법률로 확정되지 못했다.
지난 7월에는 초당적 지지로 의회를 통과한 ‘21세기 주택 공급 확대 법안'에 서명하지 않았다. 의회가 유권자의 시민권 증명 요건을 강화하는 ‘SAVE 아메리카법'을 처리하지 않은 데 반발한 것이다. 해당 주택 법안은 상원에서 85대 5, 하원에서 358대 32로 통과됐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지난 7월 11일 대통령 서명 없이 법률로 성립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거부권을 활용해 의회를 압박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 역시 견제 수단을 확보할 수 있다. 지난 19일 로이터통신은 중간선거 결과에 따른 시나리오 분석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면 상임위원회를 통한 청문회와 행정부 조사, 자료 제출 요구 등이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상원까지 장악하면 연방판사와 행정부 고위직 인준을 지연시키거나 막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연방정부 예산안과 국가부채 한도 상향 등 백악관과 의회의 협조가 필요한 현안에서는 갈등이 더욱 커질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내년 예산 편성과 국가부채 한도 문제를 둘러싼 백악관과 의회의 대립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거부권 전략'이 현실화할 경우 민주당의 의회 견제 움직임과 맞물려 집권 2기 후반부 주요 정책을 둘러싼 입법 교착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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