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서울시청, 내년도 예산안 설명회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국정조사와 탄핵 추진을 묻는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오세훈 시장은 거침없이 답했다. 집권당이 사법부를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 인정하지 않고 통치수단으로 삼으려 한다는 비판이었다. 이날 서울시 예산을 설명하던 자리는 권력의 한계를 묻는 정치적 현장으로 바뀌었다.
이날 답변에서 읽힌 것은 무죄 선고 이후 달라진 오세훈의 정치적 보폭이다. 지난 23일 항소심 무죄로 그 보폭이 넓어진 그는 이제 자신을 향한 공세에 대응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을 겨냥해 국가 운영의 원칙을 묻고 있다. 연일 높아지는 비판의 강도에는 정권 견제의 전면에 서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볼 만하다.
이 변화는 평가할 필요가 있다. 유력 정치인의 존재감은 직함이나 여론조사 수치만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권력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을 때 무엇을 걸고 제동을 거느냐가 중요하다. 오 시장은 조 대법원장 개인의 거취를 넘어 사법부 전체의 독립이라는 문제를 꺼냈다. 이번 발언이 통상적인 여야 공방보다 무겁게 들리는 이유다.
민주당이 답해야 할 명분도 명확하다. 조 대법원장에게 탄핵을 추진할 만큼 중대한 잘못이 있다면 구체적인 행위와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어떤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정치적 불만으로 그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국회의 다수 의석은 헌법기관을 길들이라는 위임장이 아니다. 권한이 클수록 행사하는 이유는 더 엄격하게 설명해야 한다.
조 대법원장은 내년 6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그렇다고 남은 재임 기간을 이유로 정당한 책임 추궁까지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탄핵 추진의 근거는 더욱 분명해야 한다. 정상적인 후임 인선 절차를 기다리지 못할 정도의 사유가 무엇인지 국민에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사법부 수장을 조기에 교체하려는 정치적 압박이라는 의심을 자초한다.
오 시장은 이날 답변에서 여권의 행보를 '불안·조급증·집착'으로 규정했다. 대통령 퇴임 후 재판에 대한 두려움이 사법부 압박으로 이어진다는 진단이다. 이는 정치적 평가다. 그러나 집권세력이 이 평가를 부당하다고 반박하려면 야당 정치인의 언어부터 탓할 일이 아니다. 자신들이 추진하는 제도가 대통령 개인의 이해관계와 무관하다는 점부터 입증해야 한다.
사법개혁의 기준은 간단하다. 정권이 바뀌고 자신들이 야당이 된 뒤에도 같은 제도를 지지할 수 있는가.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법관에게도 독립을 보장할 수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답변이 흔들린다면 개혁의 명분도 흔들린다. 국민을 위한 제도라면 누가 집권하든 작동해야 한다. 특정 권력의 처지에 따라 원칙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오 시장의 비판이 힘을 얻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민주당이 사법부를 향해 책임을 물을수록, 국민은 그 책임 추궁의 목적과 기준을 함께 살피게 된다. 판결의 당부는 정해진 절차에서 다투고, 제도의 잘못은 보편적인 기준으로 고쳐야 한다. 정치적 패배를 사법제도 전체의 결함으로 돌리기 시작하면 법원의 독립은 버티기 어렵다.
물론 오 시장에게도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자신의 무죄 판결을 존중하라고 요구한 정치인이라면 다른 사건의 불리한 판단 앞에서도 법과 증거를 기준으로 말해야 한다. 이번 비판이 일관성을 가질 때 그의 정치적 확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강한 표현보다 오래가는 것은 원칙을 지킨 기록이다.
무죄 선고 이후 오 시장은 분명 정치적 공간을 넓히고 있다. 이날 예산 설명회 말미의 답변은 그 방향을 보여줬다. 서울시정을 책임지는 시장이면서 동시에 권력의 독주를 견제하는 정치인으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그 역할은 필요하다. 집권세력의 힘이 강할수록 이를 향해 헌법의 한계를 분명하게 말하는 목소리도 커져야 한다. 민주주의는 권력자의 선의가 아니라, 권력을 멈춰 세울 수 있는 견제 위에서 지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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