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칼럼] '올공'에 갇힌 장동혁, 출구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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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교수] 
 
 
지난 10월 29일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각, 선관위 특검은 일명 ‘올공’으로 불리는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보관 중이던 투표용지 조사를 마쳤다. 조사가 끝난 이후, 이상이 의심되는 투표용지에 대해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했고, 나머지 투표용지들은 다른 장소로 옮겼다고 한다. 이번 특검 조사는 재검표와 성격이 다르다. 투표용지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절차일 뿐 후보자별 득표수를 다시 집계하는 절차가 아니기 때문에, 이번 조사 자체로 후보자들의 당락이 바뀌지는 않는다. 다만 이상 투표용지와 검수기 해킹 여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수사로 전환될 수는 있다. 이처럼 이번 조사가 수사로 이어질지는 조사 결과가 나와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일이다. 만일 부정선거가 아닌 선거 관리 부실로 드러난다면, 책임의 성격과 정도에 따라 관계자들에게 법적·행정적 책임을 물으면 된다. 따라서 지금은 서둘러 결론을 내리기보다 차분하게 조사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번 조사를 그렇게 단순하게 바라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특검 조사는 국민의힘 내부의 역학 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비롯한 일부 의원들은 특검팀의 투표용지 공개 검증을 참관한 뒤에도 투표함 이송 때까지 밤새 현장을 지켰다. 10월 29일 오전 6시 50분께 선관위 특검팀이 공개 검증을 마친 송파 지역 투표함을 반출·이송하자, 장 대표는 취재진에게 “국민의 소중한 한 표를 살려낼 증거들이 사라진 것”이라며 “선관위와 특검이 투표함을 경찰과 무슨 작전이라도 하듯, 야반도주하듯 들고 사라졌다”고 반발했다. 이어 장 대표는 “어제 검증 과정에서 수많은 부정선거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다. 투표함에는 또 다른 부정선거 증거들이 남아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선관위의 부정을 밝히기 위해서 국민들과 다시 힘을 내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장 대표의 발언을 종합하면, 특검이 부정선거가 아닌 부실 선거라는 결론을 내리더라도 장 대표가 이를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제1야당 대표인 데다가, 선관위 특검 출범이 장 대표의 성과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부정선거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주장을 펴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이런 경우, 장 대표는 자신의 성과로 평가받는 특검이 내린 판단을 스스로 부정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도 장 대표가 ‘부정선거’ 주장을 굽히지 않는 듯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어, 그 정치적 배경을 둘러싸고 여러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선관위 특검의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장 대표가 부정선거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는데, 장 대표의 발언은 이런 일각의 예측이 틀리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이 그렇게 예상하는 이유는, 장 대표를 둘러싼 현재의 정치적 환경에서 찾을 수 있는데, 특검이 부정선거가 아닌 선거 관리 부실로 결론을 내리더라도, 장 대표가 이를 수용하는 순간 핵심 지지층이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장 대표의 핵심 지지 기반을 이루는 ‘부정선거 주장 세력’과 ‘윤 어게인’을 외치는 강성 지지층의 주장이 특검 수사로 설득력을 잃더라도, 장 대표는 정치적 기반인 이들과 쉽게 결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장 대표는 자신의 성과로 내세운 특검을 공격하면서까지 부정선거 주장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강성 지지층이 특검 수사 결과에 따라 기존의 주장을 거두어들인다면 장 대표가 이러한 딜레마에 빠질 이유도 사라지겠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을 높게 보기 어렵다. 부정선거에 대한 확신이 강할수록 그에 배치되는 증거나 결론을 받아들이기보다 그것을 제시한 기관의 신뢰성부터 의심하는 확증편향이 작동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니, 장 대표는 강성 세력의 좀처럼 변하지 않는 주장을 대변하거나 적어도 그에 호응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장 대표와 지도부 내 다른 인사들의 판단이 다를 수 있다는 데 있다. 지난 10월 29일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선관위 특검의 공개 검증 직후 열린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부정선거’나 ‘올림픽공원’에 관한 발언이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해당 회의에는 장 대표와 김민수 최고위원이 불참했는데, 해당 회의에 참석한 정점식 원내대표와 신동욱, 조광한 최고위원 등 참석자들은 관련 언급을 삼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지도부가 장 대표와 뜻을 같이한다면, 해당 회의에서 장 대표의 발언에 호응하거나 이를 뒷받침하는 메시지가 나왔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물론 관련 발언이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지도부의 입장 변화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침묵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부정 선거론을 더 이상 전면에 내세우기 어렵다는 상황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장 대표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즉, 최고위원들 역시 이제는 부정 선거론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당과 자신들의 정치 생명 유지에 이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연출된 것이라면, 장동혁 대표는 지도부 유지와 관련해 상당한 위기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명의 최고위원만 이탈해도 지도부가 와해되는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장 대표는 부정 선거론을 고수하는 입장을 당분간은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의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정치적 중량감을 빠르게 키우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장 대표가 부정 선거론을 앞세워 강성 지지층의 호응만을 의식하기는 어렵다. 오 시장을 견제하든 그와 연대를 모색하든, 강성 지지층을 넘어 당내의 폭넓은 지지와 협상력을 확보해야만 당내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핵심 지지층에 밀착할수록 정치적 확장성이 제약되고, 외연을 넓히려 할수록 기존 지지 기반의 이탈을 걱정해야 하는 장동혁 대표의 처지를 보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no way out’, 즉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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