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낸 보험료로 굴러가는 연간 100조 원 규모의 건강보험 재정이 국회의 사전 심의 없이 정부 정책 재원으로 투입되는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출생 시점이 단 하루 차이 난다는 이유로 아이가 자랄 때까지 받는 정부 지원금이 최대 4000만 원 가까이 벌어지는 제도 설계의 허점도 집중 점검 대상에 올랐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7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보건복지위원회)’ 및 ‘총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도 복지부 소관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총지출은 올해 제1회 추가경정예산(137조 8584억 원) 대비 7.9%(10조 9113억 원) 증가한 148조 7697억 원으로 집계됐다. 타 부처 소관까지 포함한 정부 전체 ‘보건·복지·고용’ 분야 총지출은 289조 원으로 내년도 나라 살림(820조 9000억 원)의 35.2%를 차지한다.
복지부 예산안에서 가장 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단일 항목은 고령화 직격탄을 맞은 국민연금 급여지급(59조 4767억 원)과 기초연금(25조 6530억 원)이다. 여기에 역대 최대 폭인 기준중위소득 6.7% 인상과 중증장애인 가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등이 맞물리면서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급여(12조 2973억 원·21.5% 증액)와 생계급여(10조 8004억 원·17.7% 증액) 예산만 합쳐도 23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2027년 7월생부터 확 바뀌는 아동수당…“하루 차이로 최대 3960만원 격차”
예산정책처가 꼽은 첫 번째 쟁점은 ‘출산·양육 지원금 개편에 따른 형평성과 재원 조달’ 문제다. 정부는 내년 7월 출생아부터 기존의 첫만남이용권(첫째 200만 원·둘째 이상 300만 원)과 부모급여(0세 월 100만 원·1세 월 50만 원), 출산세액공제를 통합해 현금으로 주는 ‘아이맞이지원금(비우대지역 1000만~1500만 원·지방우대지역 1500만~2000만 원)’을 신설한다.동시에 월 10만~13만 원이던 아동수당을 ‘아동기본수당’으로 개편해 0~12세까지 매달 기본 20만 원(우대지역 30만 원)을 주고, 0~1세 영아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직접 키우면 월 30만 원의 ‘가정보육 가산금’을 얹어주기로 했다.
문제는 이 제도가 ‘2027년 7월 1일 출생아’부터 적용된다는 점이다. 내년 6월 30일 이전에 태어난 아이는 기존 제도를, 7월 1일 이후 태어난 아이는 새 제도를 적용받다 보니 출생일 하루 차이로 0세부터 12세까지 받는 누적 지원금이 천문학적으로 벌어진다.
예정처 추계 결과, 첫째 아이를 가정에서 보육할 경우 수도권(비우대지역) 거주 아동의 0~12세 누적 수령액은 개편 전 3560만 원(시설보육 포함 기준 3590만 원)에서 개편 후 4840만 원으로 1250만~1280만 원 늘어난다.
특히 지방 우대지역에서 셋째 이상으로 태어나 0~1세 때 어린이집을 이용할 경우, 개편 전(4078만 원)과 개편 후(8038만 원)의 13년간 누적 지원금 격차는 무려 3960만 원에 달한다. 한 가정 내의 형제자매 사이에서도 출생 시점에 따라 수천만 원의 지원 격차가 발생하는 만큼 기존 아동에 대한 경과조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정부는 아동기본수당(2조 9272억 원)과 출산지원금(6981억 원)을 일반회계가 아닌 내년에 신설하는 ‘미래대응기금’으로 넘겨 편성했다. 이 기금은 반도체 호황 등에 따른 초과 세수를 재원으로 삼기 때문에 경기가 꺾여 세수가 줄어들면 재원 조달이 막히지만, 한 번 도입된 아동수당은 아이가 자랄 때까지 매년 의무적으로 줘야 하는 돈(2030년 8조 4754억 원 급증 전망)이어서 재원 구조가 불안정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저소득층 지갑 채운다는 예산…“기초연금 3만 원 올리면 생계급여 3만 원 깎여”
두 번째 쟁점은 취약계층을 위한 ‘생계·의료급여 및 기초연금의 구조적 엇박자’다. 정부는 내년부터 기초연금을 개편해 소득 하위 30% 저소득 어르신(약 363만 명)에게 현행(월 34만 9700원)보다 약 3만 원 인상한 월 38만 원을 주는 ‘하후상박(아래에 두텁고 위에 얇게)’ 차등 지급을 도입한다.하지만 예정처는 정작 가장 형편이 어려운 극빈층 노인 약 78만 3000명(생계급여·기초연금 동시 수급자)은 이 3만 원 인상의 혜택을 전혀 체감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제도상 기초연금으로 받은 돈은 그대로 소득으로 잡혀 생계급여에서 똑같은 금액만큼 깎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의 고질적인 ‘예산 과소 추계’도 주요 문제점으로 지목됐다. 내년도 생계급여 예산은 일반수급자 약 153만 1000가구를 기준으로 짰는데, 이미 올해 6월 기준 수급가구가 146만 4000가구에 달해 연말이면 정부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을 가능성이 크다.
의료급여 역시 매년 예산을 빠듯하게 잡는 바람에 연말마다 일선 병·의원에 진료비를 제때 주지 못하는 ‘미지급금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내년도 의료급여 증액분 중 5829억 원은 내년 진료비가 아니라 2025년과 올해 밀린 외상값(미지급금)을 갚기 위해 편성된 돈이다.
연 100조 굴리는 건강보험…“국회 패싱 지출 막고 법정 국고지원율 지켜야”
세 번째 쟁점은 국민의 준조세인 ‘건강보험 재정의 민주적 통제와 정부의 법정 지원금 미달’ 문제다. 건강보험은 지난해 결산 기준 지출 규모가 102조 3589억 원에 달하는 초대형 사회보험이지만, 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과 달리 유일하게 국가 ‘기금’이 아닌 건보공단 자체 회계로 운영돼 국회의 예·결산 심의를 받지 않는다.그러다 보니 지난 2024~2025년 의정갈등 당시 비상진료체계 유지와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등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데 건보 재정 8조 6163억 원이 국회 심의 없이 복지부 주도로 투입됐다. 그 여파로 2023년 4조 1276억 원이던 건보 당기수지 흑자는 지난해 4996억 원으로 급감했다.
반면 정부가 법(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건보료 예상 수입의 14%를 일반회계에서 의무적으로 보태줘야 하는 국고지원금은 내년에도 12.3%(11조 7923억 원)만 편성돼 법정 기준에서 1조 6366억 원이나 덜 책정됐다. 최근 8년간(2020~2027년) 정부가 법정 기준보다 덜 준 국고지원금 누적액만 13조 731억원에 이른다.
예정처는 건보 재정을 쓸 때는 쌈짓돈처럼 쓰면서 정작 국가가 채워줘야 할 법정 분담금은 아끼는 행태를 지적하며, 건보 재정의 기금화와 내년 말로 끝나는 국고지원 일몰 규정의 상시화를 촉구했다.
1.26조 지역필수의료특회 신설했지만…“담배세에 기댄 빚내기·서울 배분 논란”
마지막 네 번째 쟁점은 무너지는 지방 의료를 살리기 위해 내년에 신설되는 ‘지역필수의료특별회계(1조 2614억 원)’의 재원 안정성과 배분 기준이다.이 특별회계는 자체 수입의 99.7%(1조 592억 원)를 담배에 붙는 개별소비세(총액의 55%)에 의존하는데, 금연 추세로 담배 세수는 정체된 반면 지출 수요는 커서 출범 첫해인 내년부터 당장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2033억 원을 빌려(예수금) 메우도록 설계됐다.
세출 사업의 허점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특별회계 신규 사업 중 덩치가 가장 큰 ‘지역 주도 의료공백 해소 지원사업(3605억 원)’은 지자체가 지역 맞춤형 의료사업을 짜도록 지원하는 돈인데, 정작 전국에서 의료 인프라와 재정 여건이 가장 풍부한 서울시까지 기본 배분 대상에 포함해 ‘지역 의료격차 해소’라는 설립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또한 내년부터 의대 신입생 중 490명을 선발해 학비를 대주고 10년간 지역에 의무 복무하게 하는 ‘지역의사 양성 및 지원 사업(44억 원)’ 역시 기숙사비·교재비 산출 근거가 주먹구구식인 데다, 매년 지원 학생이 학년별로 누적돼 2028년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날 중장기 재정 추계조차 빠져 있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추가 논의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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