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호의 일.고.감] 쇼치쿠 누벨바그 기수로 출발해 '일본 근대 비판 3부작'으로 나아간 감독 요시다 기주

  • 1960년 <쓸모없는 녀석>으로 데뷔해 <아키츠 온천>·<에로스+학살>·<계엄령> 연출…1986년 13년 만에 복귀

  • <폭풍의 언덕>으로 칸 경쟁 부문 진출, 책 <오즈 야스지로의 반영화>로 문부대신상…2022년 89세로 별세

1963년의 요시다 기주 사진婦人生活위키미디어 커먼스
1963년의 요시다 기주[사진=婦人生活/위키미디어 커먼스]

요시다 기주(吉田喜重)는 1933년 후쿠이시에서 태어나 2022년 숨진 일본의 영화감독이다. 쇼치쿠 오후나 촬영소에서 1960년 <쓸모없는 녀석>으로 데뷔해 오시마 나기사, 시노다 마사히로와 함께 쇼치쿠 누벨바그의 기수로 꼽혔다. <아키츠 온천>(1962), <에로스+학살>(1970), <폭풍의 언덕>(1988) 등을 만들었으며 1998년에는 오즈 야스지로를 다룬 책 <오즈 야스지로의 반영화(反映画)>를 냈다. 이름 喜重의 정식 읽기는 '요시시게'이지만 '기주'가 훨씬 흔해서 요시다 본인도 방송 등에서는 기주로 소개되기를 택했다. 국내 상영 때도 요시다 기주로 소개됐다.

요시다에 따르면 후쿠이 생가는 견직물 가게가 늘어선 거리에 있었고, 할아버지는 견직물 상인으로 재산을 모았다.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고 여섯 살 때 아버지가 재혼했다. 1945년 7월 말 밤 B-29 120대가 후쿠이를 공습해 시가지가 불타면서 가족은 흩어졌지만 모두 목숨을 건졌다. 종전 1년 반쯤 뒤인 1947년 3월 아버지가 도쿄로 이주하기로 하면서 요시다는 그해 4월 도립 조난중학에 편입했고, 조난고교를 거쳐 1951년 도쿄대에 입학했다. 이 무렵 프랑스어를 배우려고 아테네프랑세(프랑스어 전문학교이자 시네마테크)에 다니며 프랑스 영화를 즐겨 봤고, 고등학교 때는 NHK 라디오에 시를 투고해 상금을 받고 직접 쓴 희곡을 학교 축제에서 공연했다.

교양학부를 거쳐 1953년 문학부 불문과로 진학했다. 철학과를 지망했지만 아들이 외교관이 되기를 바란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졸업 논문 주제로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고르자 지도 교수인 와타나베 가즈오가 이 분야를 연구하는 가쿠슈인대와 도쿄대 교양학부의 교수를 소개해 줬다. 졸업을 앞둔 1954년 가을 아버지가 갑자기 실명하면서 요시다는 대학원에 진학하려던 계획을 접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의 불황으로 문학부는 취업이 어려웠는데, 그해 12월 쇼치쿠에서 조감독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응모했다.

필기시험을 통과한 요시다는 이듬해 1월 오후나 촬영소에서 면접을 봤다. 면접관이던 기노시타 게이스케가 영화감독이 되려는 이유를 묻자 글로 쓰는 소설과 다른 영상 표현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영화계로 갈지 망설이던 요시다에게 와타나베 교수는 일해 보고 맞지 않으면 대학으로 돌아오면 된다고 권했다. 요시다는 1955년 4월 동기인 이시도 도시로와 함께 쇼치쿠에 입사해 기노시타와 오바 히데오 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다. 입사 직후부터 도쿄대 친구들과 잡지에 영화평을 쓰고, 기노시타에게 직접 쓴 시나리오를 보여 주기도 했다.

쇼치쿠는 이 무렵 텔레비전이 보급되며 관객이 줄자 젊은 관객을 끌어들이려고 20대 신인 감독을 잇따라 발탁했다. 요시다는 조감독으로 5년쯤 일한 뒤 직접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고 싶어졌고, 당시 사장 기도 시로로부터 감독 기회를 얻었다. 오시마 나기사, 시노다 마사히로와 함께 뽑힌 이들은 쇼치쿠 누벨바그로 불렸다. 그러나 요시다는 인터뷰에서 오시마와는 같은 팀 조감독으로 만났을 뿐 철학적으로 교류가 거의 없었고 누벨바그라는 이름은 밖에서 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1960년 7월 6일 개봉한 데뷔작 <쓸모없는 녀석>은 대학생 네 명과 한 여성을 둘러싼 청춘 드라마다. 이야기는 한 학생의 아버지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의 비서를 억지로 차에 태워 돈을 빼앗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이어 학생들이 비서를 갓 귀국한 신인 샹송 가수로 꾸며 파티에 데려가는 소동과 하야마 해안에서 보낸 마지막 여름방학이 그려진다. 요시다는 청춘을 빛나는 것으로 그리는 쇼치쿠식 청춘영화와 달리 청춘은 파괴적이고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해 <피는 마르고 있다>, 이듬해 <달콤한 밤의 끝>을 만들었고, 1962년 <아키츠 온천>을 연출했다.

<아키츠 온천>은 오카다 마리코의 100번째 영화 출연 기념작으로 기획됐다. 오카다는 후일 잡지 인터뷰에서 후지와라 신지의 소설 <아키츠 온천>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고 감독으로 요시다를 원했다고 회고했다. 쇼치쿠에서는 요시다가 원작이 있는 영화는 하지 않는 감독이라 거절할 것이라는 말이 나왔고, 여러 번 부탁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오카다가 직접 찾아가 이야기하자 그는 원작을 바탕으로 하되 각본은 자신이 쓰고 촬영은 나루시마 도이치로가 맡는다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시대 배경은 전시에서 전쟁 말기와 패전, 전후로 넓어졌는데, 요시다는 자신의 세대에게 패전은 피할 수 없는 경험이며 그것이 주인공 남녀의 청춘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웠는지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 아키츠 온천1962의 한 장면사진국립영화아카이브
영화 <아키츠 온천>(1962)의 한 장면[사진=국립영화아카이브]

영화는 태평양전쟁 말기 살아갈 의욕을 잃은 청년 슈사쿠(나가토 히로유키)가 죽을 자리를 찾아 산골의 아키츠 온천을 찾는 데서 시작한다. 폐결핵을 앓던 그는 온천에서 쓰러졌다가 여관 안주인의 딸 신코(오카다 마리코)의 간호로 기운을 되찾는다. 전쟁이 끝난 날 일왕의 항복 방송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신코에게 마음이 움직인 슈사쿠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지만, 안주인이 그를 쫓아내 도시로 떠난다. 몇 해 뒤 다시 찾아온 슈사쿠는 술에 빠져 방탕해져 있었고, 신코는 슈사쿠가 결혼한 사실을 알고도 그를 보내 준다. 슈사쿠는 이후에도 아키츠를 찾았다 떠나기를 되풀이하고, 신코는 여관을 접은 뒤 함께 죽어 달라고 하다가 슈사쿠와 헤어진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원작은 사찰 집안의 둘째 아들과 결혼을 앞둔 신코가 '이걸로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데서 끝나는데, 영화는 결말을 바꿨다. 아키츠는 가상의 지명으로 원작은 오카야마현 오쿠쓰 온천을 모델로 했고, 영화는 쓰야마시와 오쿠쓰초의 협조를 받아 찍었다. 요시다의 첫 컬러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키네마 준보> 선정 1962년 일본 영화 10위에 올랐고 오카다는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63년 11월 오카다와 약혼을 발표한 요시다는 이를 알리려고 병상에 누운 오즈 야스지로를 찾아갔다. 오즈는 요시다에게 '영화는 드라마다. 사고(accident)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무렵 요시다는 쇼치쿠 사장 기도 시로가 액션 영화를 만들어 보라고 권해, 액션 영화는 본래 슬픈 것이라는 생각으로 여섯 번째 연출작 <일본 탈출>(1964)을 만들었다. 이듬해 6월 21일 두 사람은 서독 바이에른주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 중 쇼치쿠는 <일본 탈출>의 마지막 필름 한 롤을 요시다에게 알리지 않고 잘라 냈고, 귀국해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요시다는 곧바로 쇼치쿠를 떠났다. 요시다는 쇼치쿠가 잘라 낸 필름을 폐기해 원래 결말을 되살릴 수 없게 됐다며, 자신을 그만두게 하려고 일부러 한 일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쇼치쿠를 떠난 뒤 처음 만든 영화는 이시자카 요지로 원작의 <물로 쓴 이야기>(1965)다. 평범한 회사원 시즈오가 어머니 시즈카와 마을 유력자 하시모토의 불륜을 알게 되고, 하시모토의 딸 유미코와 결혼한 뒤에는 유미코가 자신의 이복 여동생일지 모른다는 의심에 시달리는 이야기다. 요시다는 영화를 완성했지만 극장 대부분이 대형 영화사 계열이어서 상영처를 찾기 어려웠고, 석 달쯤 뒤 닛카츠가 상영권을 사들이면서 개봉할 수 있었다. 이때 필름 원본은 요시다가 그대로 보유해 누구도 손댈 수 없게 했다. 이 영화는 <키네마 준보> 선정 1965년 일본 영화 10위에 올랐다.

이듬해인 1966년 요시다는 오카다와 독립 프로덕션 현대영화사를 세워 <여자의 호수>(1966)를 만들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호수>를 원안으로 삼은 영화다. 요시다와 오카다가 영화화 허락을 구하려고 가와바타의 집을 찾아가자 가와바타는 지금까지 아무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하지 않은 작품이니 기꺼이 주겠다고 했고, 원작료도 파격적인 가격에 내줬다고 한다. <정염>(1967)은 다치하라 마사아키의 나오키상 수상작 <흰 양귀비>를 원작으로 한 영화로, 남편에게 애인이 있는 아내 오리코(오카다 마리코)가 어머니의 옛 애인이던 조각가 노토를 만나는 이야기다. <불과 여자>(1967)는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낳은 부부 앞에 아이의 생부로 보이는 남자가 나타나 가정이 흔들리는 이야기다. 1968년에는 일본항공(JAL)의 의뢰로 이 항공사가 취항한 7개국을 돌며 유럽에서 <안녕, 여름 빛>을 찍었다.

1960년대 말 요시다는 일본아트시어터길드(ATG)와 손잡고 이른바 '일본 근대 비판 3부작'을 시작했다. 첫 작품 <에로스+학살>은 현대영화사가 제작하고 ATG가 배급해 1970년 3월 14일 개봉했다. <에로스+학살>은 1916년 가나가와현 하야마의 여관 히카게차야에서 아나키스트 오스기 사카에가 연인 가미치카 이치코에게 칼에 찔린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영화는 대학생 에이코가 오스기와 이토 노에의 딸 마코에게 어머니에 대해 묻는 현재의 장면과 오스기를 둘러싼 과거를 오가며 무정부주의와 혁명, 자유연애의 모순과 갈등을 그린다. 요시다는 오스기의 삶을 옮기기보다 과거와 현재가 미래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뒀다고 했다. 영화 개봉 무렵 참의원 의원이던 가미치카는 사생활과 명예 침해를 이유로 상영 금지 소송을 냈으나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는 이유로 기각됐다. 이 영화는 프랑스에서 공개된 뒤 해외에서도 주목받았고, 2005년에는 원본에 가장 가까운 3시간 36분짜리 롱 버전이 DVD로 나왔다.

3부작의 두 번째 작품 <연옥 에로이카>는 1970년 9월 26일 개봉했다. 40세의 원자력 연구원 쇼다 리키야가 아내 나쓰코(오카다 마리코)가 집에 데려온 낯선 소녀를 통해 숨겨 온 과거와 마주하는 이야기다. 리키야는 전후 일본에서 전위당이 비합법화됐던 시절 대학생으로 당 세포 조직의 말단에 있었고, 미국 대사 유괴 계획에 가담했다. 이 사건이 당의 도발 공작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배신당한 동료들은 침묵해 왔다. 20년 가까이 지나 반전 그룹을 자칭하는 조직이 나타나 소녀 유괴를 빌미로 그에게 비슷한 미국 대사 유괴 계획에 협조하라고 협박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사건이 겹쳐진다.
 
영화 계엄령1973의 한 장면사진국립영화아카이브
영화 <계엄령>(1973)의 한 장면[사진=국립영화아카이브]

3부작의 마지막 작품 <계엄령>(1973)은 극작가 벳야쿠 미노루가 각본을 쓰고 미쿠니 렌타로가 기타 잇키를 연기했다. 기타 잇키는 국가 개조를 주장해 2·26 사건(1936년 청년 장교들의 쿠데타 시도) 뒤 처형된 사상가다. 영화는 1921년 야스다 재벌 총수를 살해하고 자결한 아사히 헤이고의 누나가 동생의 유서에 따라 기타 잇키를 찾아가는 데서 시작한다. 이어 5·15 사건(1932년 해군 청년 장교들의 총리 암살 사건)을 거쳐 2·26 사건에 이르는 흐름을 따라가며 기타 잇키의 사상과 최후를 그린다. 이 영화는 <키네마 준보> 선정 1973년 일본 영화 7위에 올랐다.

<계엄령> 이후 요시다는 영화계를 떠나 도쿄12채널(현 TV도쿄)에서 미술 프로그램 <미의 미(美の美)>(1974~1977)와 기행 프로그램 <그리스 여정>(1976) 등을 만들었고, 1979년부터 1982년까지 멕시코에서 지냈다. 요시다는 2010년 인터뷰에서 13년 공백의 이유로 <계엄령>을 찍던 중 위장의 종양을 떼어 내는 큰 수술을 받아 촬영이 미뤄진 일을 꼽았다. 영화를 마친 뒤에는 몸을 회복하려고 유럽 등지에서 5년가량 지냈고, 그동안 다시는 영화를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1986년 사에 슈이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인간의 약속>으로 13년 만에 연출에 복귀했다. 도쿄 다마시 신흥 주택지에 사는 3대 가정 모리모토 가족에서 몸져누운 노모 다쓰가 숨진 채 발견되고, 남편 료사쿠(미쿠니 렌타로)가 자신이 죽였다며 자수한다. 그러나 료사쿠도 치매가 진행돼 진술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영화는 다쓰의 치매 이후 며느리 리쓰코(사토 오리에), 아들 요시오(가와라사키 조이치로)를 포함한 가족이 간병 속에서 무너져 가는 과정을 따라가고, 다쓰를 숨지게 한 사람이 요시오였다는 사실이 마지막에 드러난다. 요시다는 귀국 후 부모를 죽이는 일 같은 가족의 금기에 갑자기 관심이 생겨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는 이 영화가 노인 문제나 원작이 묻는 안락사의 시비를 그리려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면한 죽음에 대한 예감이 주제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제39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고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 은조개상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제10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작품상과 우수감독상, 일본 문화청 예술작품상(제2회)을 받았다.

<폭풍의 언덕>(1988)은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을 가마쿠라 시대 일본으로 옮긴 영화로, 요시다는 이 작품을 구상하는 데 28년이 걸렸다. 영화는 야마베 일족의 본가가 거둔 소년 오니마루와 주인집 딸 기누의 사랑, 쫓겨났던 오니마루가 지토(지방 관리)가 되어 돌아온 뒤 일족이 무너져 가는 과정을 그린다. 마쓰다 유사쿠가 오니마루를, 다나카 유코가 기누를 연기했고 음악은 다케미쓰 도루가 맡았다. 이 영화는 제41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라 요시다의 첫 칸 경쟁 진출작이 됐고, 이시다 에리가 일본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2002년 14년 만에 내놓은 <거울의 여자들>은 24년 전 갓난아기를 남기고 사라진 딸을 찾는 아이(오카다 마리코) 앞에 딸로 보이는 기억을 잃은 여성 마사코(다나카 요시코)가 나타나는 이야기다. 아이는 손녀 나쓰키(잇시키 사에), 마사코와 함께 자신이 딸을 낳은 히로시마로 향해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나선다. 요시다는 원폭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을 알아야 다룰 수 있고 자신에게는 금기에 가까운 주제여서 만들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제55회 칸 영화제 특별 초청작으로 상영됐고 2003년 4월 일본에서 개봉해 <키네마 준보> 선정 일본 영화 6위에 올랐으며, 제46회 아사히베스트텐영화제에서는 일본 영화 1위로 뽑혔다. 요시다는 2003년 오카다와 함께 상파울루 국제영화제 특별상을 받았고 같은 해 프랑스 정부에서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를 받았다.

요시다는 영화 외에 책도 여러 권 썼다. 1998년 이와나미쇼텐에서 낸 <오즈 야스지로의 반영화>는 요시다가 생전의 오즈에게 직접 들은 두 마디에서 출발한 책이다. 1963년 1월 쇼치쿠 오후나 감독회 신년 연회에서 오즈는 '결국 영화감독은 다리 밑에서 거적을 쓰고 손님을 끄는 매춘부와 같다'고 말했고, 같은 해 11월 병상에서는 앞서 소개한 '영화는 드라마다, 사고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요시다는 영화를 사랑하기에 영화의 '거짓'을 알고 그것과 '장난치듯' 영화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갔던 감독으로 오즈를 읽어, 기존의 통설과 다른 오즈상을 그렸다. 이 책은 이듬해 문부대신상(예술 분야 우수 업적)을 받았고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브라질 등에서 번역 출간됐으며 프랑스 영화비평가협회 외국부문상도 받았다. 요시다는 1993년에는 NHK 교육TV에 출연해 오즈의 영화 세계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2020년 4월에는 10년 넘게 쓴 장편 역사소설 <속죄 나치 부총통 루돌프 헤스의 전쟁>을 펴냈다. 후쿠이 생가에 쌓여 있던 옛 신문에서 헤스가 영국으로 단독 비행했다는 기사를 발견한 것이 계기였다. 요시다는 영상 표현은 관객의 상상에 맡겨지지만 소설의 말은 명확한 뜻을 가질 수 있고 자신을 1인칭 화자로 작품에 등장시킬 수도 있다고 보았다고 한다. 소설은 요시다 자신의 회고, 헤스의 수기와 전기, 요시다가 지어낸 만년 헤스의 독백으로 이뤄져 사실과 허구가 섞여 있다.

요시다는 도쿄 시부야구의 병원에서 폐렴으로 숨졌다. 향년 89세였다. 2024년 10월 29일부터 11월 3일까지 일본 국립영화아카이브가 도쿄국제영화제와 함께 'TIFF/NFAJ 클래식스 영화감독 요시다 기주'를 열어 극영화 10편과 다큐멘터리 세 편을 영어 자막과 함께 상영했다.

국내에서는 2014년 7월 8일부터 20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가 일본국제교류기금과 함께 '요시다 기주+오카다 마리코 특별전'을 열었다. <아키츠 온천>, <에로스+학살> 등 요시다 연출작 10편과 오카다 출연작 세 편이 상영됐다. 2019년 3월 19일부터 4월 24일까지는 부산 영화의전당이 '월드시네마 XVI'에서 <에로스+학살>을 상영했고, 2023년 5월 23일부터 6월 4일까지는 '요시다 기주 특별전'으로 <계엄령>을 상영했다. 2024년 2월에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일본국제교류기금과 함께 연 마쓰다 유사쿠 특별전에서 <폭풍의 언덕>을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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