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쇠고기 정국 돌파를 위해 취임 후 두번째로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취임 116일 만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성난 촛불 민심이 들불처럼 번지자 이 대통령은 지난 달 22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1차 사과한 데 이어 28일 만에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다시 한번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그것도 동일한 사안에 대해 두 번이나 대국민사과를 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진정성이 담긴 통렬한 자성과 더불어 당면한 경제적 상황에 대하여 국민에게 호소하고 협조를 당부하는 것만이 현재의 위기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첫 수순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특별회견은 이 대통령의 쇠고기 정국 타개 3단계 구상, 즉 `특별회견→청와대 쇄신→내각 쇄신' 가운데 첫번째 단계에 해당한다.
이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사과를 시작으로 조만간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20일 청와대 참모진을 대폭 교체하고 내주 이후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개각도 단행한다는 방침이다.
◇취임초 실정 `자인'..쇠고기 원칙고수하며 협력 당부
이 대통령은 TV로 생중계된 특별회견에서 취임 초기의 미숙한 국정운영에 따른 실정을 공개 사과했다.
먼저 쇠고기 파동과 관련, "아무리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현안이라 하더라도 국민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 국민이 무엇을 바라는지 잘 챙겨봤어야 한다"면서 "저와 정부는 이 점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의 사과 수위는 1차 대국민담화보다 훨씬 강했다. 1차 담화 때 진성성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여론의 지적을 의식해서인지 이날 회견에선 "제 자신을 자책했다",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는 등의 솔직한 표현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 대통령은 대다수 국민의 '쇠고기 재협상 요구'에 대해 "국내 문제이며, 자신의 정치적 입장만을 고려했다면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을 것" 이라고 강조하고, 그러나 2000년 중국산 마늘수입 파문의 예를 언급하면서 대통령으로서 후유증과 국익을 생각해 그렇게 할 수 없는 입장을 설명했다. 대신,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한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할 것임을 약속했다.
원칙을 고수하되 대통령직을 걸고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대승적 차원의 협조를 당부한 것이다.
◇대운하도 포기 시사...가스, 물, 전기, 건강보험 민영화 안할 것 천명
이 대통령이 지난 대선 최대 공약이었던 `한반도 대운하' 포기 가능성을 내비친 것도 정국수습책의 일환으로 보인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민심을 얻지 못하면 성공은 커녕 국정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는 만큼 신중을 기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취임 3개월만에 이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20% 안팎으로 추락한 데는 일방적 국정운영도 한 요인이 작용했고, 그 중심에 대운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기업 개혁과 관련해서도 "공기업을 민영화한다고 해서 가격이 오르거나 일자리가 주는 일은 없다"면서 "가스와 물, 전기, 건강보험 등은 민영화 계획이 전혀 없고 애초부터 없었다"고 강조했다.
◇난국타개책 될까
이 대통령의 특별회견은 쇠고기 정국의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이 정권 초기의 실정과 쇠고기 파동에 대해 최대한 자세를 낮추며 거듭 사과의 뜻을 표명한 데다 논란의 핵심인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가 국내에 수입되는 일은 결코 없도록 하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 쇠고기 파동이 쉽게 가라앉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야당과 촛불집회를 주도하고 있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여전히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촛불민심의 동력이 다소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통합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특별회견에 대해 "쇠고기 협상에 관해 국민의 뜻과 동떨어진 변명으로 일관한 실망스러운 회견이었다"고 정면 비판하고 나서, 경색된 쇠고기 정국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게다가 정국 타개 2-단계 수순인 청와대 및 내각 쇄신과정에서 자칫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인사를 단행할 경우 또 다른 논란이 일면서 국정혼란이 계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내일쯤 타결될 것으로 보이는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와 조만간 단행될 인적쇄신의 수준이 향후 정국의 앞날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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