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은 3일 인천 문학 홈구장에서 히어로즈를 8-0으로 꺾고 김응용 삼성사장의 1476승에 이어 두 번째로 1000번째 승리를 따냈다. 1984년 OB(현 두산)감독으로 출발 현재 SK에 이르기까지 6개 구단, 17시즌, 1941경기를 치러 49번 무승부와 892패 끝에 거둔 값진 열매다.
야구 판의 ‘잡초인생’에서 ‘야신’으로 우뚝 선 김성근 감독의 45년 야구 인생은 항상 아웃사이더였다.
재일교포 출신인 김성근 감독은 스무살이던 1962년 기업은행이 야구팀을 창단하면서 국내에서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당시 최고의 좌완투수로 이름을 날렸으나, 1964년 불의의 어깨 부상으로 야구를 접었다.
1969년 경남 마산상고 감독으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김성근 감독은 어눌한 일본식 말투 탓에 ‘반쪽바리’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때마다 김 감독은 ‘오직 이기는 것만이 살길이다’라고 이를 악물었다. 그때의 절박함이 어쩌면 지금의 김성근감독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남다른 지도력을 보였던 김감독은 스스로에게 혹독했던 만큼 제자들에게도 강하게 훈련을 시켰다.
그후 지도력을 인정받은 김 감독은 기업은행과 충암-신일고를 거쳐 재일교포 선배인 김영덕 당시 OB감독의 부름을 받고 프로에 첫 발을 내딛었다.
1984년 OB감독 자리에 올랐다. 대주자-대수비 등 당시 초창기 야구 판에서 생소한 역할들을 만들어 내며 트러블만 만들기도 했다. 매년 전력이상의 성적을 올렸지만 결국 구단에서 쫓겨났다.
984년부터 1988년까지 OB에 몸을 담았던 김 감독은 이후 태평양 돌핀스(1989-1990)와 삼성(1991-1992), 쌍방울 레이더스(1996-1999), LG 트윈스(2001-2002)를 거쳐 SK(2007-현재)에 이르기까지 6개 팀을 맡아 17번의 시즌을 치렀다.
우승은 지난해가 처음이었지만 김 감독 스스로 "잡초 같은 인생이었다"고 평가할 정도로 항상 다른 팀보다 떨어지는 선수들을 데리고도 악착같은 훈련으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일부에서는 “선수를 너무 혹사 시킨다”는 비난이 뒤따랐지만 B급 선수들을 데리고 A급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었다.
프로 통산 1000승까지 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2002년 하위권 전력의 LG를 한국시리즈까지 진출 시켰다.
이승엽과 마해영의 홈런으로 무너졌지만 최고의 명승부를 연출 ‘야구의 신’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LG구단은 고집불통 ‘야신’의 손에서 지휘봉을 빼앗았다.
결국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포기한 김감독은 2005년 일본 롯데 지바의 코치로 자리를 옮기면 야구인생을 이어갔다.
일본으로 진출한 이승엽과 재기를 노리던 박찬호을 도우며 김성근 야구는 또 한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작년 SK감독을 맡으면서 국내에 복귀한 김감독을 첫해 SK 창단 첫 우승을 일궈냈다.
올 시즌도 사실상 정규리그 1위를 예약한 상태다.
‘야신’ 김성근 야구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김감독은 "1000승은 우리나라에 와서 내가 살아온 길에서 나온 결과"라며 "처음 비행기에 타서 '절대 후회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던 그 뜻이 1000승에 담겨 있다"고 자신의 25년 프로야구 감독 인생을 평가했다.
1000승을 '나의 인생'이라고 과감히 정의했던 김 감독은 경기를 마친 뒤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1승씩 쌓아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며 "1000승을 거두면서 가족도 멀리하면서 살았고 미안하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happyyh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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