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신문 앓음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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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10-2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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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등성이 사념의 갈대밭에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이 일렁입니다.

 우연찮게 날아 온 나뭇잎 하나, 가을의 추억을 실어왔네요. 뒷동산 흐드러진 들국화를 베개삼아 드높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보며 무작정 도회지로 달아나고 싶었습니다.

 불현 듯 종달새 눈자위를 맴돌며 환상을 깨우곤 했습니다. 논두렁 콩서리. 메케한 연기 사이로 콩을 주워 먹다가 개구쟁이들 시커면 입가를 보면 키득 키득 재미있었습니다.

 누런 들녘사이로 뻗어 난 신작로 코스모스. 희뿌연 먼지 내 뿜으며 내달리던 트럭 꽁무니 쫒아 다니다 넘어져 무릎팍 깨진 일. 코 끝이 시리도록 아련합니다.

 판사되어 돌아오라던 아버님 말씀 귓가에 흘러보내고 새색시 시집가듯 그 신작로를 따라 기차타고 서울와서 고작 한다는 짓이 신문쟁이가 되었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마감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하릴없이 허공만 두리번 거리며 도망가고싶다는 생각, 여러번 했습니다.

 어깨너머로 선배들 하는 짓 훔쳐보며 따라 하기가 신기했습니다. 해질녘이면 싸구려 술집으로 몰려 다니며 신문이야기. 세상이야기 등 사회를 책임이나 진 듯 열변을 토하곤 했습니다. 통행금지라도 걸리면 기자랍시고 객기를 부리며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매일 신문에 대고 빨간 색연필로 그리고 또 그리고, 통신지 뒷면에 제목쓰기를 수도 없이 했습니다.

 유달리 찬바람이 나기 시작하는 가을이면 새 직장으로 옮기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30여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참으로 황당하고 남새스런 일도 수월찮았습니다. 그래도 신문이 콩서리보다 즐거웠습니다.

 모처럼 푼돈이 생겨 푸줏간에 고기 사러 갔다가 신문지에 고기를 말아 주는 것을  보고  “신문을 얼마나 정성들여 만드는데 그렇게 함부로 취급하느냐” 고 핀잔을 주었다는 선배얘기도 생각납니다.

 한 때도 신문을 잊지 못하고 달려 온 여정입니다. 예비 신문쟁이들에게 신문학을 가르치는 것에 긍지도 없지 않습니다.

 육십갑자를 한 순배 돈 즈음 생각합니다. 산등성이 갈대풀은 한여름 무척 싱싱하고 도도했습니다. 가을이면 그 싱싱하고 도도했던 기 개는 볼품없이 시들은 꽃으로 갈아 입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꽃무리가 좋다고들 합니다. 황혼의 갈대밭 발치에서도 신문과 시름하고  투정하고 부대끼며 살고 있습니다. 어느 듯 신문은 그리움처럼 다가왔습니다.

 조병화 시인은 “겨울밤은 길기도 하여라/ 아내가 주고 간 이별처럼” (겨울밤은 길기도 하여라)이라고 길고 긴 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며 아내를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을 2행 시로 노래합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신문에 대한 그리움의 상념을 대변이라도 한 듯 합니다.

 또 시인 류시화는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하늘처럼 물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읊조립니다.

 신문을 위한 신문에 의한 신문의 생활을 해도 신문은 멀리 할 수 없는 영원한 그리움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시인 류시화처럼 꿈과 혼과 정성을 다해 항상 곁에 두고 그리워한 신문입니다. 비록 신문이 어렵다고는 하나 그래도 신문에는 지혜가 있고 수단이 있습니다.

 10월의 마지막 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무심히 떨어지는 낙엽은 내년 봄을 기약하지요. 신문도 발전을 위한 가슴앓이겠지요. 가을 앓음 병, 신문 앓음 병, 날려 버리고 우리 함께 술 잔을 높이 들어요.

김 지 용
 편집고문 겸 뉴스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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