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을 떠나왔지만, 그래도 제2의 고향에서 동네 사람(오바마)이 나왔는데 투표를 해야지요."
오바마 민주당 후보의 홈그라운드인 시카고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들은 4일 대통령 선거일을 맞아 가족 등 지인들과 함께 삼삼오오 투표장을 찾아 한 표를 행사했다.
시카고는 10만 명가량의 한인들이 거주해 LA나 뉴욕에 이어 한인 비율이 높기로 손꼽히는 곳이지만 그동안 투표율이 10%에도 못 미치는 정치 무관심 지대였다.
그러나 이날 선거에서 오바마 대선 후보가 유색인종으로 미국내 소수민족을 대변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지역에서 대통령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용, 한인들의 투표 열기가 뜨거웠다.
이날 한인 밀집 거주지인 알바니 파크 커뮤니티센터 무궁화 아파트 인근 투표소에는 문을 열기도 전인 오전 5시 40분께 70∼80대 한인 노인 10여명이 줄을 서 눈길을 끌었다.
이 곳에 한국인 통역이 배치돼 있었지만 이들 노인은 통역의 도움을 받지 않고 무난히 투표를 마쳤다.
강태자 할머니(84)는 "투표하러 나오기 전에 충분히 공부를 하고 나왔다. 혹시 실수를 할까 봐 한편으로 걱정했는데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할머니는 "이번 선거는 아는 사람이 대통령에 나와서 그런지 다들 관심이 많다. 누구를 찍었는지는 비밀"이라고 수줍어했다.
이날 이민 온지 18년만에 처음으로 투표했다는 채명재(62)씨는 "자식들과 함께 투표했다. 심정적으로는 동네 사람인 오바마에게 애정이 가지만 신앙인으로서 동성애와 낙태를 찬성하는 정당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한편 이날 연방하원 일리노이주 10지구에서는 한인 유권자 5천명을 잡기 위한 득표전이 막판까지 치열하게 벌어졌다.
시카고의 한인 지원 단체인 한국교육문화마당집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지원 온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가 이 지역에서 한인들이 캐스팅 보트를 쥘 수 있다고 판단, 한글 선거 안내서를 배포하고 한인 가정에 전화를 걸어 투표권 행사를 독려함에 따라 한인들이 대거 선거에 나섰기 때문이다.
NAKASEC의 이현주씨는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려면 `보팅 파워(Voting Power)'를 확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10지구는 지난 선거에서 7천 표 차이로 당락이 엇갈린 지역으로 이번 한인들이 대거 선거에 나섬으로 써 누가 당선되든지 승자는 한인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종하 시카고 한인회장은 "이번 선거에는 우리 한인 동포들이 예전과 달리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며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이 높아지고 다음번에는 한인 2세, 3세들이 후보에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연합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