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과 포용, 그 마법의 정치학
박 기 태(정치컴, 경주대 교수)
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며 그 전후좌우에는 행동과 실천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일컬어 갈등의 시대라고 한다. 갈등이란 두 가지 이상의 대안 또는 길이 있을 때 어느 한 쪽도 버릴 수 없어 망설이며 불안한 심리적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망설이며 불안한 상태는 곧 행복하지 않은 상태이다.
우리는 행복해야하며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래서 망서림 없이 편안한 관용과 포용을 떠 올리며 연관되는 말들을 생각 해 본다. 사랑과 평화, 용서와 화해, 진실과 이해, 양보와 나눔, 통합과 조정, 협력과 공존, 예수님과 부처님, 링컨, 만델라, 수녀 테레사 등등 실로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어 희망, 비전, 미래, 안심, 행복 등이 함께 연상 된다.
21세기 오늘 현재 지구상의 최강대국인 미국은 정치권의 애송이나 다름없는 볼품없는(?) 흑인 변호사에게 나라를 맡겼다. 그리고 만약 내년에 화성이나 다른 외계로부터 침공이 온다면 만화 영화식으로 보자면 지구수비대장을 맡긴 셈이다.
80년대 레이건 시대에 그 초석을 다지며 이른바 세계패권을 꿈꿔 온 미국이 사반세기의 영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위대한 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실낱같은 희망이 이루어졌을 때 사람들은 ‘기적이 이루어 졌다’라고 한다. 지금 미국이란 나라는 기적에 버금가는 일들을 보여주고 있다. 최초의 흑인대통령을 뽑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보여 준 관용과 포용, 그리고 그에 잇따르는 희망과 비전에 모든 것을 다 걸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관용과 포용은 마법의 정치를 눈앞에 펼쳐 보여주고 있다. 당선 이후 그가 보이는 행보는 그에게 믿음을 주어도 좋다는 것으로 안심 또한 심어주고 있다. ‘적어도 오늘 현재 미국 대통령은 오로지 조지 부시 한 사람’이라는 생각, 아버지 같은 패자 매케인과 마주앉아 허심탄회 아메리카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른스러움, 혈전을 벌인 라이벌 클린턴 힐러리를 국무장관에 기용하겠다는 통 큰 정치적 발걸음은 모두 포용과 관용이 낳은 마법의 정치학이라 하겠다.
그 스스로도 제한할 수 없었던 그의 ‘담대한 희망과 아버지로부터의 꿈’은 이제 미국인의 희망이자 세계의 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변화의 정치’라는 제목으로 민주당 대통령선거 입후보연설에서 그가 말 한 ‘불쾌한 존재가 되지않고서도 당당히 반대하는 법을 배운,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을 알고서야 타협 할 수 있는, 자신을 믿는 사람들 보다 미합중국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는 생각이 미국을 마법에 걸리게 했을 것이다.
흔히들 오바마 당선자에게 단지 16분의 찬조연설이 그에게 미합중국 대통령이란 행운을 주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이란 지구상 최고의 자존심을 부리는 나라에게는 다소 결례가 될 수 있고, 사려 깊고 용기 있는 오바란 인물에 대한 크나큰 오해이자 실례가 될 것이다. 단지 행운이 초강대국의 수장자리를 선뜻 내어줄 만큼 이 시대가 결코 만만한 상황이 아니며, 눈 어두운 사회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미국 대통령이야기로 끝을 맺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희망과 비전이 필요하다. 행복을 주는 마법의 정치는 더욱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대통령 취임 반년을 돌이켜 보면 참 어둡다. 희망과 비전이란 단어가 왜 자꾸 희미해져가고, 대통령의 말씀이 엇박자를 내는 것일까. 비슷하게 전 퍼스트레디 경험자와 경쟁했는데, 아직도 친이(親李) 친박(親朴), 월박(越朴) 복박(復朴), 주이야박(晝李夜朴) 같은 사전에도 없는 분열성 신조어가 난무하는 것일까.
관용과 포용은 승리자 그리고 보다 강한 자를 더욱 빛나게 하는 보너스인 것이다. 덜어내지 않고 보태는 정치, 배제하지 않고 끌어안는 정치가 국민에게는 희망과 비전, 그리고 행복을, 지도자와 정치인에게는 국민의지지, 표를 준다. 이것이 정치와 국민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마법의 정치학이다. 오바마를 다시 찬찬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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