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자본 확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아직까지 정부와 금융당국의 권고치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정부는 은행의 증자를 돕기 위해 신종자본증권의 발행 한도를 확대하는 등 규제를 풀고 있다. 하지만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은행들의 대출 연체율이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내년 초부터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부실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은행들이 정부가 정한 내년 1월 말까지 자본을 늘리더라도 일시적일 수밖에 없고 결국 20조 원 규모로 조성되는 자본확충펀드의 지원을 받는 게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4일 금융계에 따르면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등 13개 은행은 11~12월 중에 모회사의 자금 수혈과 후순위채 발행 등을 통해 총 3조 원의 기본자본을 늘렸다. 이는 금융당국이 제시한 기본자본 확충 목표치인 11조 원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은행들은 지난 9월 말 현재 평균 10.79%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12월 말까지 11~12% 이상으로, 기본자기자본비율은 평균 8.28%에서 9%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 은행들 '발등의 불 꺼라'
국민은행은 KB금융지주사의 회사채 발행을 통해 5천억 원을 증자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국민은행은 보유 중인 KB금융지주 주식 4천억 원 어치를 매각한 데 이어 4천500억 원 규모의 주식을 포스코, 현대상선의 자사주와 맞교환했다.
하나은행은 하나금융지주로부터 11월 1조 원에 이어 이달에도 5천억 원을 수혈받기로 했다. 신한지주는 신한은행에 8천억 원을, 우리금융은 우리은행에 7천억 원을 증자했다.
후순위채 발행도 잇따르고 있다. 11~12월 후순위채 발행액은 국민은행 2조 원, 우리은행 1조3천억 원, 신한은행 1조 원, 전북은행 500억 원 등이다.
보완자본으로 인정되는 후순위채를 발행하면 BIS 비율이 상승하지만 기본자본비율을 높이려면 증자 또는 하이브리채권을 발행하거나 주주 배당을 줄여야 한다. 하이브리드채권은 부채와 자기자본의 성격이 섞인 신종자본증권으로 만기가 30년 이상이다. 은행들은 배당을 최대한 억제할 계획이지만 주주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를 통해 일부 은행을 제외한 대부분 은행은 BIS 비율과 기본자본비율을 정부의 권고치에 맞출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기본자본비율이 9월 말 9.17%에서 연말에 9% 후반까지, 신한은행은 8.5%에서 9% 이상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지금처럼 자체 노력으로 자본을 늘리고 정부의 자본확충펀드에는 웬만하면 의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 지원에 따른 경영권 간섭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 내년 상반기 버티기 힘들듯
은행들이 내년 초까지 스스로 자본을 늘려도 내년 상반기도 버티기 어렵고 결국 추가 자본 확충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기업의 경영난이 심화되며 대출 연체율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 대출까지 부실이 커지면 건전성이 더욱 나빠질 수 있다.
따라서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기업과 가계의 부실을 원활히 처리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자본 확충이 불가피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1월 말 기준 은행들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1.59%로 1년 전보다 0.44%포인트 상승했으며 이 중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1.86%로 0.60%포인트가 뛰었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0.66%로 1년 전과 비슷했으나 3개월 전보다는 0.08%포인트 상승해 앞으로 경기 악화로 실질소득이 계속 감소하면 추가적인 상승이 우려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내년 초 건설사와 중소 건설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서기로 한데 따라 퇴출 기업이 등장하면 기존 대출의 상당 금액을 은행들이 손실로 떠안아야 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본 확충이 계획한 대로 이뤄지고 경영 여건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기본자본비율 9%로 높일 수 있다"며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면 이 비율을 달성하거나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 자본확충펀드 지원 불가피
정부와 금융당국은 일단 은행들의 자본 확충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기본자본의 15%로 제한된 은행의 하이브리드채권 발행 한도를 30%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은행들의 자본확충 여력이 15조 원가량 늘어나게 된다. 국민은행이 오는 30일 3천억 원 규모의 하이브리드 채권을 발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은행들의 하이브리드채권 발행에 앞다퉈 나설 경우 시장에서 원활하게 소화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시중은행 자금 담당자는 "만기가 30년이고 은행이 콜 옵션(되살수 있는 권리)을 행사하지 않으면 다시 만기를 연장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 투자자들도 섣불리 투자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은행들이 신규 주식을 발행할 때 투자자에게 기준가 대비 인수 가격을 깎아주는 비율(할인율)을 현재 10%(제3자 배정)나 30%(일반 공모)보다 높여 자금을 쉽게 유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주식 가치의 하락에 따른 기존 주주의 반발을 살 수 있다.
따라서 내년에 경기가 악화되고 기업 구조조조정이 가시화되는 가운데 은행들의 자구 노력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정부가 내년 1월 조성 예정인 자본확충펀드의 수혈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펀드는 은행의 우선주나 하이브리드채권, 후순위채를 사들이게 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들이 연말과 내년 초까지 BIS 비율과 기본자본비율을 권고치에 맞춘 뒤 이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며 "기업 구조조정과 부실 여신 확대로 재무 건전성이 하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자본확충펀드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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