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은행들이 다음달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잔뜩 긴장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영업 실적이 떨어지고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하는 등 자본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급결제업무 확대 허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자통법이 시행될 경우 자금 이탈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증권사나 보험사에 지급결제업무가 허용되면 은행권 자금이 다른 금융 권역으로 이동하는 머니무브(Money Move) 현상이 본격화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자통법이 은행에 불리한 측면은 있지만 오히려 은행들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 금융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 지급결제 확대허용, 은행에는 '독' = 자통법 시행으로 금융업종 중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이는 분야는 은행업이다. 금융투자회사와 기존 보험사에 지급결제업무가 허용되면 은행의 수신 기능은 축소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 상업은행(CB)의 성격이 짙은 국내 은행들의 주요 수익원은 예대마진에 기반을 둔 이자 수익이다. 따라서 수신 기능을 갖춘 금융기관이 늘어나 수신 여력이 감소할 경우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예상되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은행도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증권사나 보험사에 비해 상품 개발 능력이 떨어지는 점이 문제다.
현재 과점체제 양상을 띄고 있는 은행업의 경우 진입장벽이 워낙 높아 다른 금융 업종에 비해 경쟁이 덜했던 반면 보험과 증권 등은 일찌감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파생상품을 비롯한 창의적 상품개발 능력을 길러왔다.
김대익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금융산업팀장은 "상품개발 및 영업 경쟁력에서 은행이 복합화된 상품이 많은 보험과 증권사에 밀릴 가능성이 있다"며 "은행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험사나 증권사와 통합상품 및 복합상품을 협력 개발하고 기존의 강점이었던 저축성 예금을 특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석원 현대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보험사나 증권사도 자산운용업을 영위할 수 있게 돼 그만큼 은행의 비중이 줄어들겠지만 은행도 증권사들과 업무 제휴를 통해 수익원을 다변화 한다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IB로 도약으로 활로 찾아야 = 자통법 시행이 은행에게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대형 시중은행의 투자은행(IB) 전환을 필요 조건으로 꼽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리먼 브라더스 등 대형 투자은행(IB)이 몰락하면서 자금 중개 주체가 은행으로 바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은행을 계열사로 둔 국내 금융지주회사들이 IB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대형 은행들은 이미 지주회사 전환을 마친 상태다. 지난해 9월 국민은행이 KB금융지주로 전환하면서 국내 4대 은행은 모두 지주회사 내 계열사가 됐다.
이와 함께 기업은행은 주 고객층인 중소기업에 종합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에 따라 지주회사 전환을 준비 중이고 산업은행도 연내 지주회사 전환을 마무리하고 상장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문제는 국내 은행들의 상품 개발 경험과 노하우가 크게 취약하다는 점이지만 지주회사 내 증권 계열사와의 시너지를 극대화 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게 중론이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자통법 시행으로 은행들의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한 만큼 IB업무 등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려야 할 시점"이라며 "최근 경제 위기로 글로벌 IB들이 경영난에 빠지면서 진입장벽이 허술해진 지금이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상황일수록 업계의 부침이 심하고 모든 것이 새로 재편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특히 아직 IB가 취약한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민규 한국개발연구원 거시·금융경제연구부 연구원도 "경제가 성장하면 IB 전환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규모가 작은 증권사가 IB로 나서기는 어렵다"며 "1990년대 미국의 상업은행들과 독일의 도이치뱅크 처럼 투자부문을 확대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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