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모씨는 지난해 7월 포항 장성동 삼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 차량 추돌 사고를 당해 수리비만 2000만원 넘게 물었다. 가해차량의 과실이 분명한 만큼 김씨는 가해차량이 가입한 현대해상화재에 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현대해상 측은 사고 조사가 필요하다며 보상을 거부하고 법원에 156만원만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민사조정을 신청했다.
손해보험사들이 민사조정 제도를 소비자에게 보험금을 덜 지급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사조정 건수는 지난 3년새 13배 이상 급증했다. 보험사별로는 한화손해보험의 민사조정 신청 비율이 가장 높았다.
29일 보험업계와 보험소비자연맹에 따르면 손보사들이 법원에 민사조정을 신청한 건수는 지난 2005년 274건에서 2006년 1095건, 2007년 3095건, 지난해 8월 현재 3577건으로 가파르게 늘고 있다.
민사조정은 보험사와 소비자 간에 소액 분쟁이 발생할 경우 정식 재판을 거치지 않고 쉽게 해결하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손보사들은 민사조정 제도를 보험금 축소, 지급 지연,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회피 등의 목적으로 악용하고 있다.
이기욱 보소연 정책개발팀장은 "자본력과 정보력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손보사들이 소액 분쟁의 경우에도 민사조정을 남발하고 있다"며 "교통사고 피해자들을 법원에 출석시켜 위압감을 주고 조정기일 전에 합의를 유도하는 등 합의 수단으로 활용해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팀장은 "피해자가 금감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하면 보험사 평판 리스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이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며 "일반 소비자들이 법원 출석 통지를 받으면 크게 당황해 보험사 의도대로 합의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보험사별로는 한화손보가 보험금 지급 건수 1만건당 33.8건(지난해 8월 기준)의 민사조정을 신청해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는 손보사 평균치인 7.7건의 4배가 넘는 수치다.
에르고다음이 30.9건으로 두번째로 많았으며 이어 현대해상화재(14.5건), 롯데손해보험(12.5건), 삼성화재(10.5건) 등의 순이었다.
반면 그린화재는 0.2건으로 가장 적었고 교보AXA(0.4건), 동부화재(4.2건), 제일화재(5.0건) 등도 평균치를 밑돌았다.
보소연 관계자는 "손보사가 민사조정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금감원이 민사조정의 타당성 여부를 면밀히 감사해야 한다"며 "소송을 거치기 전에 반드시 금감원의 분쟁조정을 거치도록 하거나 분쟁조정 중에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를 시급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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