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택판매실적이 넉달만에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침체됐던 부동산시장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고용시장이 여전히 불안정한 가운데 미국인들의 소비지출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고 은행들도 대출에 소극적이어서 바닥을 점치기는 이르다는 게 전반적인 분석이다. 주택가격의 추가하락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는 이날 12월 잠정주택판매지수가 6.3% 오른 87.7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지수가 오르기는 지난해 8월 이후 4개월만에 처음으로 월가 전문가들은 4% 하락했던 11월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었다.
잠정주택판매지수는 매매계약이 체결됐지만 대금지급 등 거래가 완료되지 않은 계약 건수를 집계한 것으로 기존주택 판매의 선행지표로 쓰인다. 이 때문에 오는 25일 발표되는 1월 주택판매실적도 개선됐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주택 판매가 늘어난 것은 차압된 물건이 크게 늘면서 가격이 급락한 탓이다.
미국 부동산 정보사이트인 '질로우닷컴'(zillow.com)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주택가격은 평균 11.6% 하락했다. 시가총액으로 따지면 3조3000억달러가 날아간 셈이다. 이는 지난 2007년 시가총액 감소분(1조3000억달러)의 세 배에 육박하는 것으로 미국의 주택 시가총액은 부동산시장의 호황이 정점에 달했던 지난 2006년 2분기 이후 지난해까지 모두 6조1000억달러 줄었다.
특히 실업률과 주택차압 건수가 극에 달했던 4분기에 증발한 액수만 1조4000억달러에 이르고 같은 기간 주택 매물은 2.9% 늘어났다. 주택가격이 추락하면서 집값보다 많아진 대출금을 짊어진 주택보유자들도 지난해 3분기 14.3%에서 4분기 17.6%로 증가했다. 대출상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제값보다 낮게 시장에 나온 급매물이 그만큼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낮아진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도 수요를 촉진했다.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는 지난해 11월 6.09%에서 5.33%로 하락했다.
주택 판매실적이 두드러졌던 지역 역시 주택 차압이 많았던 서부 및 중서부지역에 집중돼 이들 지역의 주택 판매는 각각 13%씩 증가했다. 반면 서부와 북동부지역은 3.7%, 1.7%씩 줄었다.
하지만 미국 부동산시장이 회복기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것은 아직 무리라고 월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오바마 정부가 모기지를 활성화하려고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규정이 까다롭고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관망세가 짙어지고 있어 시장이 쉽게 살아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고용시장도 문제다.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해 12월 16년래 가장 높은 7.2%를 기록했다. 때문에 같은 달 개인 소비지출은 1% 줄면서 6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갔고 지난해 전체로는 증가세가 3.6%에 머물러 47년만에 가장 부진한 실적을 나타냈다.
스탠 험프리스 질로우닷컴 부사장은 "경제의 향방이 불확실한 가운데 차압 및 대출기준이 강화되면서 주택시장의 침체가 가속화하고 있다"며 "고용환경의 악화 속에 대출금 상환 압박이 커지면서 차압 대상 주택이 늘어나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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