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을 선제적으로 단호하게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이날 퇴임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대미문의 위기, 생존게임, 역사적인 시기에서 더 잘 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때마다 최선을 다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 문호 푸시킨의 시 중 '지나간 것은 그리우나 새로운 내일을 위해 가는 것'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아쉬워하진 않겠다"고 소회를 드러냈다.
장관 재임시 가장 보람있던 순간을 묻자 강 장관은 "장관 재임기간 중 딱히 특별히 보람스러운 시기를 꼽을 순 없다"며 "재정부 들어 온 날부터 주말도 예외 없이 한 번도 머리가 쉰 적이 없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솔직히 처음부터 장관을 1년 정도 할 것으로 생각했다”며 “거기에 맞춰 정책을 했고 설렘으로 와서 재정부 직원들과 불 같이 일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그간 자신을 둘러 싼 비판들에 대해 아껴왔던 말들을 시원럽게 털어놨다.
환율 문제와 관련, 강 장관은“나는 고환율론자가 아니다. 경제 기초 여건에 맞게 가자는 거였다”며 “우리 환율이 왜곡되지 않게 경제에 맞춰가자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경상수지 유지가 중요하다. 경상수지는 이론적으로 균형이 최고다"면서 "궁극적으로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면 파산"이라고 강조했다.
강 장관은 재임중 감세조치에 대해 "경제를 위해 세금을 줄여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되 국가는 빚을 지느냐, 세금을 많이 거둬 국가는 재정 건전성이 좋아지되 기업은 힘들게 하느냐의 문제였다"며 "어느 것이 좋다고 볼 수는 없지만 선택해야 했고 (결국) 세금을 낮췄다"고 말했다.
또 “작년 세계잉여금이 15조원이 넘었고 올해도 초과될 것으로 보인다”며 “재정건전성은 경제의 목적이 아니라 경제를 잘 이끌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으로 옮기면 무엇에 중점을 둘 것이냐는 질문에 "프랑스에선 넥타이가 100달러가 넘어도 사람들이 돈 내고 산다. 일본 음식은 세계적인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며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해 문화적인 것에 관심을 가질 것임을 내비쳤다.
다음은 강 장관과의 일문일답.
-붉은 색 넥타이를 맨 것이 눈길을 끄는데.
"아침에 직접 골랐다. 동양에서 빨강은 행복을 뜻한다. 몇 년 전 부터 넥타이는 스스로 고르고 있다. ‘남자여 넥타이에 투자하라’는 책을 본 이후 마음을 바꿨다. 여자는 옷, 디자인, 색깔 등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은데 남자는 넥타이 뿐이다. 요즘도 공항 등에 들렸을 때 시간이 남으면 넥타이를 보곤 한다. 넥타이도 의미가 있다. 얼마 전 녹색뉴딜 발표할 때는 그린 넥타이를 했다. 올 1월 1일에는 정초라서 ‘골드’로 골랐다. 골드가 경제와 돈을 뜻해서 그랬다. 내일 모레는 실버를 할 생각이다. 미국 사회에서 ‘그레이’는 기념할 때 입는 색깔이다"
-장관 재임 시 가장 보람 있었던 기억은.
"물을 것 같아서 생각해 봤다. 그런데도 딱히 특별히 보람스러운 시기를 꼽을 순 없었다. 재정부에 들어온 날부터 지난주까지 토요일, 일요일도 예외 없이 한 번도 머리가 쉰 적이 없었다"
-가장 아쉬웠던 기억은.
"정말 솔직히 처음부터 장관을 1년 정도 할 것으로 생각했다. 거기에 맞춰서 정책을 폈다. 내가 문학적인 표현을 좋아해, 기자들이 기사 쓸 때 제목 나올 수 있는 것을 말했다. 위기관리대책회의 모두발언 등을 통해 의식적으로 그렇게 했다. 다시 장관을 하게 된다면 가장 비문학적이고 기사 안 되는 이야기만 하겠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으로 옮기면 무엇에 중점을 둘 생각인가.
"생각해 보겠다. 머릿속으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 경제·금융 현안보다는 비경제적인 것에 중점을 둔다는 보도도 있던데 맞는 것도 있지만 100% 맞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 김석동 전 재경부 차관이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주위에 기자와 국회의원이 없으니 세상이 이렇게 기분 좋을 수 없더라'고 했다. 당분간은 기사가 안 되도록 하겠다.
문화적인 것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상품의 경쟁력이란 기술경쟁력도 중요하지만 디자인 등도 제대로 돼야 한다. 프랑스에선 넥타이가 100불이 넘어도 사람들이 돈 내고 산다. 일본 음식이 세계적인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우리나라 음식이 더 그렇다. 일본은 '가장 일본적인 것이 가장 경쟁력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다"
-환율 관련해서 할 말은.
"요즘 명동에 가보면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있다는 보도가 많이 나온다. 환율 덕분에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쇼핑오고 있는 것이다.
(예전 일을 생각하며) 나는 고환율론 자가 아니다. 경제 기초 여건에 맞게 가자는 거였다. 우리 환율이 왜곡되지 않게 경제에 맞춰 가자는 취지였다. 우리나라는 경상수지 유지가 중요하다. 경상수지는 이론적으로 균형이 최고다. 궁극적으로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면 파산이다"
-작년에 골프를 못쳤는데.
"지난해 한때는 제주 같은 곳이 주말 부킹률이 30%밖에 안 된다고 한다. 지금은 주중에도 100%라고 한다. 일본 관광객 때문이다. (이와 관련) 신년 업무보고에서 대통령에게 '골프를 해야 소비 분위기가 풀릴 것 같다'고 말했다. 작년에는 워낙 바빠서 골프칠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차관들에게는 시간이 된다면 치라고 했다"
-IMF가 우리나라 경제 회복을 V자로 예상했는데.
"경제 성장률은 전년도 기준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올해 -4%를 기록한 뒤 내년에 +4.2%라는데 왜 그게 +8.2%포인트 오르는 것이냐. 전년 기준이니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한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나는 경제 전망을 좀 비관적으로 본다. 작년에 이미 대통령께 한국 경제가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리먼 사태는 월스트리트의 실수다. 사태가 터지기 얼마 전에도 성과급 파티를 했다. 미국에서 시장경제와 원칙주의가 싸움을 했고 그 와중에 리먼이 희생됐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재정 지출로 1%포인트 경기 부양효과 있을까.
"탄력성이 떨어질 것이다. 같은 재정지출을 해도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난다. 얼마 부양효과가 있을 것이라고는 (1%포인트 발표 이후) 따로 보고받은 것은 없다. 최근 경기예측에 맞는 건 없다. 한국은행 수백 명이 365일 일해도 틀리지 않느냐"
-재임 중 감세 조치와 관련해서 할말은.
"감세에 대해 대선 이전부터 대통령과 나는 같은 생각이었다. 우리나라는 다른 경쟁국에 비해 세금 부담이 심하다. 원래부터 생각하던 것이어서 취임하자마자 재정부 관료들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작년의 감세는 경기에 상관없이 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이 미국, 일본보다 과도하다. 미국의 조세부담률이 17%, 일본이 15%대다. 선진국이 될수록 조세부담률이 높아야 하는데 우리는 반대로 이들 나라보다 조세부담률이 더 높다. 경쟁하게 하려면 경쟁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경제를 위해 세금을 줄여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되 국가는 빚을 지느냐, 세금을 많이 거둬 국가는 재정 건전성이 좋아지되 기업은 힘들게 하느냐의 문제였다. 어느 것이 좋다고 볼 수는 없지만 선택해야 했고, 세금을 낮췄다.
감세 대신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건 향후 5년 뒤를 보느냐 10년 뒤를 보느냐의 문제다. 세금을 깎아주면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진다. 내 세금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면 내년 여름휴가는 어디로 가야지 생각한다. 소비의 수준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재정지출을 중심으로 하면 지원받는 계층이 대부분 저소득이다 보니 소비 패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즉 동태적, 장기적으로 보면 감세가 파워 있고, 정태적, 단기적으로 보면 재정지출이 파워 있는 것이다.
작년 세계잉여금이 15조원이 넘었고, 올해도 초과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4년 동안 그래왔다. G20 회의 때 내가 다른 재무 장관들에게 '난 재정흑자가 고민'이라고 하니 다들 어이없어하더라. 모두들 재정적자에 대해 고민이었다. 세계 경제에 비상이 걸렸는데 작년 감세하지 않고 계속 이렇게 남겼다면 국민한테 많은 욕을 먹을 것이 분명하다.
재정건전성 걱정이 많은데 재정건전성은 경제의 목적이 아니라 경제를 잘 이끌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난 사무관 때부터 사무를 심플하게 정리하고, 복잡한 것을 심플하게 하는 데 자신 있었다. 내가 이렇게 감세에 대해 (심플한 논리로) 대통령께 보고하자 재정학 박사인 총리께서도 '그래 맞아'라고 하셨다"
-작년 추진하다 못한 상속·증여세 감면은 이뤄질 것으로 보나.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이런 경제 상태에서 상속세를 많이 매기면 안 된다. 영국병의 핵심은 노조가 아닌 70%의 상속세에 있었다.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는 상속세가 없다. 그래서 시민권이 자주 바뀐다. 다들 캐나다로 가지 많은 상속세를 감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소득세보다 상속세 많이 부과하는 나라는 미국, 일본, 우리나라뿐이다. 나는 부자도 아니고 살아온 환경이 부자를 잘 봐줘야 할 이유도 없다. 내가 왜 부자를 위해서 감세정책을 하겠나. 경제가 잘되고 감세를 통해 경제가 잘된다고 믿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다"
김한나 기자 hanna@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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