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디폴트, 기업들 ‘초조’vs'다행' 명암 엇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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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2-2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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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동유럽발 2차금융위기 '쓰나미'>

우크라이나, 헝가리, 라트비아 등 동유럽에 진출한 기업들 중 충격파가 큰 곳은 수출기업들이다. 실제 수출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현대·기아차는 동유럽으로 가는 수출 물량이 지난해 1월보다 64%나 줄어든 6126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가동한 현대차 체코공장의 동유럽 전략 기지인 탓에 현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11억 유로가 투입되어 연산 20만대를 생산하는 이곳에서는 현재 준중형 해치백 ‘i30’를 만들고 있다. 당초 2011년까지 연산 30만대로 생산능력을 늘일 계획이었지만, 동유럽 국가들의 부도 위기로 계획 수정까지 고려되는 상황이다.

기아차 역시 2007년 4월 유럽 공략을 목표로 슬로바키아에 10억 유로를 투입해 연산 30만대 규모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유럽 전략형 모델인 해치백 ‘씨드’를 생산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이 이달 초 동유럽을 방문한 것 역시 사전에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며 “현재는 현지 상황에 맞춰 탄력적인 생산체제를 운영하는 등 시장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슬로바키아와 헝가리에 생산 공장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 역시 동유럽 디폴트 영향권이다.삼성전자는 지난해 동유럽 TV시장에서 3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1위를 달리고 있다. 전 세계 TV 판매량 가운데 동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남짓이지만, 주요 신흥시장으로서 판매고 확대에 큰 역할을 해온 동유럽 시장이 빠르게 얼어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사업 역시 전략 수정이 필요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동유럽 시장에서 노키아에 이어 점유율 2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 등 고사양 단말기와 신흥시장을 겨냥한 저가 단말기를 앞세워 2억대 판매와 세계 시장 점유율 20%를 차지하겠다는 삼성전자의 올해 목표에도 다소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직까지 동유럽 생산 공장은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으며, 판매고 역시 별다른 영향이 없지만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동유럽 시장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폴란드에 생산 공장을 갖고 있는 LG 전자는 동유럽 시장 비중이 적어 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유럽 전체에서 동유럽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고 동유럽이 생산기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금융위기에 큰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LG전자 관계자는 “폴란드에 LCD TV와 냉장고 공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생산한 제품은 대부분 서유럽으로 수출하기 때문에 금융위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루마니아에 스테인리스 가공 공장을 둔 삼성물산은 최근 동유럽 경제위기로 판매 실적이 떨어지는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삼성물산은 타개책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해 판매처를 다각화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동유럽 지역의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글로벌 네트워크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동유럽 공장 때문에 전체가 떨어졌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위기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실적이 떨어지는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서유럽 진출 교두보 삼은 기업들 “휴∼”

직접 수출을 하지 않거나 동유럽을 서유럽 진출 전초기지로 삼고 있는 기업들은 그나마 안도하는 분위기다.

두산그룹은 벨기에 쪽에 생산법인과 지사를 두고 있는 두산인프라코어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미 지난해 금융위기로 실적이 줄어들 대로 준 상황이어서 더이상 타격을 받을 것이 없는 상황이다.

포스코는 ‘감산·투자·상생’을 모토로 철강경기가 회복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 3~4년 후를 대비키로 했다. 능력 확대,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기반 마련, 제품 개발 등 장기적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동유럽 쪽에 사업장이 없어서 별 다른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있지 않다. 다만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STX그룹 역시 동유럽에 사업장이 없기 때문에 대비책을 세우지는 않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좀 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동유럽에 직접적인 사업기반이 없는 동부그룹의 경우 “동유럽 금융위기가 새로운 변수라기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금융위기에 준해 대비하고 있는 정도”라며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비상경영체제로 대비하고 있어서 동유럽금융위기에는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유가 급등으로 3개월마다 경영계획을 수정했던 대한항공은 “이번 사태로 인해 특별히 대비하고 있는 것은 없지만, 외환 동향을 지켜볼 계획”이라며 “현재로서는 조 회장이 신년사를 통해 밝힌 ‘수익성 중심의 사업운영’을 위해 최대한 노력할 뿐”이라고 밝혔다.

◆어려움 겪어도 발 빼기는 힘들 듯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경영환경이 악화되면서 투자, 채용 등 주요 사업계획을 확정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상황이 워낙 급변하고 있어서 현재 추이를 지켜볼 뿐 구체적인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세계그룹과 롯데그룹도 동유럽 시장과 별 관련이 없어 중국, 미국 등을 위주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전반적인 금융위기가 지속되면 기존 계획을 상황에 맞게 수정해 유연성 있게 대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롯데도 비슷한 입장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백화점, 호텔 등 글로벌 사업과 최근 인수한 두산주류에 더욱 치중하겠다”며 “특히 수익성 강화를 위해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CJ그룹이나 GS그룹 역시 동유럽 쪽 진출 사업이 없어 현재의 경영전략에 매진한다는 방침이다.

GS 그룹은 “2010년을 목표로 중기 비전 달성을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할 것이다”며 “올해는 작년보다 10% 가량 늘어난 2조 3000억 원을 투자해 에너지, 유통 및 건설 등 주력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CJ 그룹은 환율이 조기에 안정되지 않고, 내수침체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시나리오 경영을 펴기로 했다. 올해는 사업성과 수익성을 낼 수 있는 투자에 주력해 지출은 줄이고 현금은 최대한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동유럽을 전략기지로 삼은 기업들 역시 철수라는 초강수를 두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랜 기간 인지도를 넓혀온 데다, 시장이 회복될 시점에 대비해 진영을 재정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선택에 비해 들인 공이 크다는 것도 발을 빼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산업부 종합.김훈기 기자 bo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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