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신분에 허드렛일로 지친 인턴들이 뽑기가 무섭게 은행을 등지고 있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인턴 채용을 늘렸지만 채용 후 사후 관리에는 실패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장기 인턴의 정규직 전환율을 높이는 등 인턴들의 근로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지만 정작 인턴 채용 확대를 종용해왔던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 자존심 상처 입고 떠나는 인턴들 =한 시중은행의 인턴 600명 중 30% 이상이 채용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는 등 인턴들의 이탈률이 높아지고 있다.
홍헌호 시민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추진 중인 일자리 나누기(잡셰어링)는 시작부터 잘못됐다"며 "금융기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인턴을 뽑으니 제대로 운용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오치화 금융산업노동조합 정책부장은 "은행들이 인턴을 채용한 후 방치하다보니 인턴들은 더 나은 미래와 자기 발전을 위한 노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은행을 떠나는 인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무조건 인턴 채용 규모를 늘리는 것보다는 채용한 인턴들의 신분을 보장하고 재원을 마련해 정규직 고용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홍 연구위원은 "낮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금융권 인턴을 선호하는 것은 해당 영업점에서 경험을 쌓은 후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장기 인턴의 경우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면 취업 기회를 상실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뜩이나 줄어들고 있는 금융권 일자리를 인턴들로 채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그럼에도 채용을 했다면 정규직 전환율을 높이는 것이 인턴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노력 여하에 따라 미래가 보장되는 인턴이라면 몰라도 현재의 인턴 고용 형태는 청년실업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인턴의 신분 보장을 강화와 함께 정규직 고용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정부, 채용 후 근무여건 "나 몰라라" = 현행 인턴 제도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6일 7개 금융협회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진 위원장은 "현재 시행 중인 인턴 제도가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필요할 경우 관련 협회와 공조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금융위 은행과 관계자는 "금융 공기업을 제외한 일반 은행의 경우 노사와 주주가 있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제도 개선을 지시하기는 힘들다"며 "인턴 제도 개선을 위한 방안을 구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은행연합회를 통해 인턴의 정규직 전환 및 채용시 우대 조치 등을 유도할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일자리를 줬으니 허드렛일에 동원되는 것쯤은 감수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금융위 대변인실 관계자는 "최근 인턴들이 단순 업무에 시달린다고 불만을 표하는 것은 배가 덜 고파서 그러는 것"이라며 "일을 배울 때는 청소도 할 수 있고 밥을 지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에서 정규직 행원 한 사람을 키우는데 1억원 정도가 소요되는 만큼 인턴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 것"이라며 "인턴 기간을 거친 후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것은 안일한 발상"이라고 일축했다.
관련 협회도 손을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금융위원장이 인턴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공동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지만 협회는 모르는 일"이라며 "인턴들을 대상으로 통신연수 강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개별 은행의 인턴 제도에 대해서는 간섭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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