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출은 언감생심입니다. 이제는 사채라도 끌어다 써야 할 상황이에요"
코스닥에 상장된 한 중견기업 대표는 최근 자금 상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하소연했다.
그는 "은행들이 자본을 끌어 안고만 있지, 시장에 풀 생각은 없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시중은행들의 예금 규모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증가했음에도 대출에는 여전히 인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자금 사정에 곤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은 지난 2월 말 기준 78.0%에 달하고 있다.
4월 들어서는 52.1%로 감소했지만 이는 정부가 신용보증기관의 보증을 늘리고, 은행들이 대출 만기를 연장했기 때문이다. 신규 대출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2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총수신은 693조원으로 전년 동기(605조) 대비 14.55% 급증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4년 동안 은행 수신이 10.07%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비약적으로 늘어난 셈이다.
수신 규모는 큰 폭으로 늘고 있지만 은행에서 대출 받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예금은행의 총여신은 927조원(2월말 기준) 수준으로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지난해 10월(913조) 이후 1.5% 증가하는데 그쳤다.
지난해까지 84~86%대에 머물던 예대율도 지난 1월(89.5%)과 2월(88.6%)에는 90%에 육박할 정도로 높아졌다.
은행들이 신규 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은 역마진 우려 때문이다. 조달 비용이 상승한 데 비해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는 크게 떨어지면서 대출을 해도 남는 게 없는 상황이다. 또 경기침체 국면이 지속되고 있어 기업들의 부실 규모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금 차입 여건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CD금리까지 떨어지니 대출을 늘리기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은행이 대출을 옥죄면서 중소기업들은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S중공업 대표이사인 J씨는 "은행이 중소기업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과 신용등급에 따라 대출 규모 및 가부를 결정하고 있어 중소기업 간에 대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페인트를 제조하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보증기관의 보증서나 확실한 담보는 내놓기 전에는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고 있다"며 "은행이 업체마다 대출이자를 상이하게 정하고 있어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업체는 정부 지원방안의 혜택을 못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소기업 사장은 "자기 집을 담보로 회사 운전자금을 대출받는 중소기업 사장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은행에 자금만 지원할 게 아니라 대출에 적극적인 은행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대출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 자금의 집행 및 흐름, 용처 등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용식 우리금융연구소 연구원은 "은행에 대출 실적을 배당하고 신용보증을 확대하는 등의 강압적인 대책만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며 "은행 자율성을 인정하면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당근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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